휴대폰도 없는 '은둔 문인'은 제주의 평론가에게 어떤 편지 썼나

입력 2022-09-21 18:15   수정 2022-09-22 00:43

편지는 한 사람만을 위한 호사스러운 문학이다. 글 쓰는 게 직업인 작가들의 편지는 그래서 독자들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 작가가 장정일(사진)이라면 더욱 그렇다. 스마트폰은커녕 2세대(2G) 휴대폰도 없는 탓에 ‘은둔의 문인’으로 불리는 작가여서다.

장정일은 한때 뉴스를 몰고 다니는 ‘존재감 있는’ 작가였다. 1987년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으로 당시 최연소로 김수영문학상을 받는 등 주요 일간지의 문화면을 장식하기도 했지만,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로 외설 시비에 휘말려 구속되는 등 신문 사회면에 실리기도 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선 서평 외에는 거의 작품을 내지 않았다. 방송 출연은 물론 사생활을 드러내는 글도 없었다.

그런 장 작가가 한영인 문학평론가와 함께 주고받은 편지를 묶어 <이 편지는 제주도로 가는데, 저는 못 가는군요>를 최근 출간했다. 두 사람은 2020년 여름 제주도에서 소설가 김유담의 소개로 처음 만났다. 제주에 사는 1984년생 문학평론가와 제주에 집을 빌려 잠시 머물던 1962년생 소설가. 낯설어하는 두 사람을 이어준 건 문학이었다. 서로의 집을 오가며 문학과 세상사에 대해 생각을 나누던 두 사람은 장 작가가 제주도를 떠난 뒤에도 메일을 주고받았다. 장 작가는 편지에 스물두 살 어린 한 평론가를 ‘한 형’이라고 부르며 깍듯하게 존댓말을 쓴다.

집에 발 디딜 틈조차 없이 책을 쌓아둔 장 작가는 “저희 집에 쌓인 책…. 아예 말을, 말고 싶다”고 하지만, 책이 지겨워서라기보다는 “꼭 필요할 때 읽어야 하는 책을 찾을 수 없는 게 괴로워서 한숨짓는 것”이라고 말한다. “형하고 저는 학연도, 지연도 없고 세대차마저 크군요. 하지만 우리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죠. 종이 위에 뭔가를 써야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고, 그로부터 행복을 느낀다는 거죠.”

김혜진의 소설 <9번의 일>, 장류진의 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 정지민의 여성학 서적 <우리는 서로를 구할 수 있을까>…. 두 사람의 편지에는 수많은 책과 작가가 등장한다. 본문까지 인용한 편지는 비평과 ‘뒷담화’를 오간다. “이 대화는 그래서 재밌어요. 매우 전술적이고요. 누군가가 진지한 비평을 펼칠 때 다른 누군가는 그 작가나 작품에 대해 헐뜯기로 응대할 수 있고, 누군가가 헐뜯기에 나섰을 때 다른 누군가는 그 작가나 작품을 진지한 비평으로 감쌀 수 있죠. 비평은 확실히 속 좁은 헐뜯기보다 더 광활한 이해를 갖고 있습니다.” 이들의 비평 대상은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K팝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든다. 이 과정에서 좀처럼 내비치지 않던 장 작가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몇 문장 더해진다.

당초 이들이 제주 애월읍 내 호프집에서 구상한 책의 큰 주제는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였다. 한 평론가는 “그동안 오간 편지들을 돌이켜보니 정작 사는 얘기보다는 읽고 쓴 것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며 “읽고 쓰는 일 자체가 곧 당신의 삶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두 사람은 23일 서울 청담동 소전서림에서 ‘문학은 좋은 삶을 말할 수 있는가’를 주제로 북토크를 연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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