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쌍방울 흑역사

입력 2022-09-25 17:45   수정 2022-09-26 00:34

한 세대 전만 해도 첫 월급으로 부모님께 빨간 내의를 사드리는 게 관례였다. “그간 고생 많으셨습니다”라며 선물을 건네면 “돈도 없는데 뭘 이런 걸…”이라며 흐뭇하게 웃으시던 부모님 모습이 액자처럼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장년층이 적지 않을 터다. 그런 내의의 대표 브랜드가 쌍방울이다.

쌍방울은 1950년대 이봉녕·이창녕 두 형제가 전북 익산에서 시작한 ‘형제상회’에서 출발했다. 양말·속옷 도매상을 하다가 1964년 쌍방울(돌림자 녕(寧)이 령(鈴·방울)으로 발음되는 데 착안)이란 상표로 내의를 만들었다. 쌍방울은 이후 무역과 패션, 전자, 리조트 분야까지 사세를 확장하며 호남 대표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한때 프로야구팀(쌍방울 레이더스)까지 두고 재개 51위까지 올랐다. 그러나 지나친 의욕이 독(毒)이 됐다. 외환위기 직전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다가 자금난으로 1998년 공중 분해됐다. 쌍방울은 이후 애드에셋, 대한전선 등으로 넘어갔다가 2010년 현 오너인 김성태 씨에게 인수됐다.

지금은 회장직에서 물러난 상태지만 김 전 회장은 인수합병(M&A)을 통해 쌍방울 사업구조를 상전벽해 수준으로 바꿔놓았다. 동종 업체인 비비안뿐 아니라 △광림(특장차·크레인·소방차 제조·판매업체) △디모아(소프트웨어 유통사) △아이오케이컴퍼니(영화·방송 프로그램 제작 및 투자) △SBW생명과학(모바일 광학부품 제조업체) △미래산업(반도체 장비업체) 등을 인수하거나 설립했다. 불발되긴 했지만 이스타항공, 쌍용자동차 인수전에도 참여했다. 최근 업력 75년의 글로벌 1위 섬유기업 라이크라 인수에도 나서 새삼 자금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쌍방울은 최근 정치권에서도 ‘핫이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선거법 위반사건 변호사비 20억원을 대납하고, 이 대표의 측근(이화영 킨텍스 대표)에게 법인카드로 수억원의 뇌물을 제공한 혐의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어서다. 또 대장동 특혜 의혹 등에도 연루돼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주가 조작 등으로 처벌받은 김 전 회장의 과거 이력도 재부각되고 있다. 쌍방울은 현재 본사와 계열사들이 압수수색을 당하고 전·현직 경영진이 모두 국외 도피하는 등 한마디로 아수라장이다. 한때 사랑받았던 ‘국민 내의’ 기업이 이번에도 주인을 잘못 만난 듯싶다.

박수진 논설위원 ps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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