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만 보다 끝나는 '초·중 AI교육'…고교 땐 수능에 밀려 뒷전으로

입력 2022-09-26 18:23   수정 2022-10-05 16:22

지난 23일 경기 고양시 백신중. 정보교과 수업을 받기 위해 1학년 학생 26명이 실습실에 모였다. 학생들은 먼저 컴퓨팅 사고력 국제대회인 ‘비버챌린지’ 기출 문제를 풀었다. 놀이하듯 퍼즐 문제를 푼 뒤 컴퓨터를 켜고 코딩프로그램 ‘스크래치’를 활용해 기초적인 프로그래밍을 했다. 명령어에 따라 캐릭터의 움직임을 만들다 보니 45분이 훌쩍 지나갔다. 최서현 군은 “코딩은 중학교 와서 처음 해봤는데 선생님이 차근차근 단계를 알려주기 때문에 어렵지 않고 재미있다”며 “정보 수업을 1주일에 두 번밖에 하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고학력 학부모들 “정보 수업 늘려달라”
수업을 마친 정웅열 정보교사는 “정보교육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했다. 이 학교 학생들은 1학년 때 68시간의 정보 수업을 몰아서 듣는다. 1주일에 두 시간꼴이다. 2~3학년은 수업이 없다.

정 교사는 “학교 행사, 공휴일 등을 제외하면 수업 시간은 더 줄어든다”며 “이 정도 수업시간으론 해외 학생들이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기초 수준의 교육밖에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영국과 중국 학생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배우는 컴퓨터 언어인 파이선 학습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코딩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이 따로 모여 방과후 교실에서 배우는 게 고작이다. 한국정보교사연합회장을 맡고 있는 정 교사는 “백신중은 인공지능(AI) 교육 선도학교로 지정돼 그나마 상황이 나은 것”이라며 “교사와 인프라가 부족한 지방에선 정보 수업을 제대로 구성하지 못하는 학교도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고학력이거나 해외 경험이 많은 학부모는 AI·소프트웨어(SW) 교육의 중요성을 알기 때문에 정보 수업에 관심이 많다”며 “학교에서 학부모 대상 설문조사를 해보면 꼭 가르쳤으면 하는 과목에 정보가 항상 1위로 나온다”고 했다.
수능에 나오지 않는데…고교에선 외면
이처럼 몇 년 전부터 학부모, 학생, 정보교사를 중심으로 정보교육 시수 확대 요구가 꾸준히 제기돼왔지만 대다수 학교는 초등학교 17시간, 중학교 34시간의 필수 시간만 편성하고 있다. 100~200시간을 배우는 미국 영국 호주 이스라엘 등에 비하면 ‘맛보기’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다.

정보 수업을 늘리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은 다른 과목과 충돌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연간 필수 수업 시간이 초등학교 655시간, 중학교 842시간으로 정해진 상황에서 정보 수업을 늘리려면 수요가 높은 국어 영어 수학 외에 다른 수업 시간을 줄여야 한다. 이 과정에서 수업 시간을 축소해야 하는 과목의 교사들이 반발하는 일이 잦다 보니 필수시간만 배정하는 것이다. 사립학교에서 이런 갈등이 특히 심하다는 게 정보교사들의 설명이다.

지난 8월 교육부가 2025년부터 정보교과 수업 시간을 초등학교 34시간, 중학교 68시간으로 늘리겠다고 발표했지만, 수업시수를 어떻게 확보하느냐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고교에선 AI·SW를 가르치지 않는 학교가 대부분이다. 모든 고교 교육과정이 입시에 맞춰진 상황에서 정보 과목은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학생, 학부모들이 시간 낭비로 여기는 탓이다.

미국은 고교 졸업 요건과 대학 입학 요건에 SW 교육 이수를 지속해서 확대하고 있다. 공립고교의 절반 이상이 컴퓨터과학 관련 기초 교육과정을 운영하며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네바다주 아칸소주는 컴퓨터과학을 고교 필수 졸업 요건으로 채택했다. 캘리포니아주 애리조나주 텍사스주 워싱턴주 등 21개 주는 대학 입학 요건으로 컴퓨터과학 수업 이수를 요구할 수 있게 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처럼 고교 교육과정에 필수과목으로 정보 과목을 두고, 대학 입시에도 연계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서정연 서강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영국은 2014년부터 교과과정을 개정해 정보 과목이 영어 수학 레벨로 올라갔고 11년간 필수로 가르친다”며 “영국만큼은 아니더라도 초3부터 고1까지 8년 정도는 매주 한 시간 이상 교육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양=최만수/최예린 기자 beb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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