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골프, '그들만의 리그'로 끝날까 'PGA 독점' 끝낼까 [조수영의 PGA vs LIV]

입력 2022-09-27 17:55   수정 2022-09-28 00:18

독점은 공급자 입장에선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다. 좋은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직원 복지에 힘쓸 필요도 없고, 소비자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더 좋은 서비스를 내놓을 필요도 없다. 골프가 그랬다. 오랜 기간 세계 남자 프로골프 시장에는 범접할 수 없는 ‘원톱’이 있었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다. 돈과 역사, 권위를 겸비한 PGA는 전 세계 모든 골퍼가 뛰고 싶어 하는 명실상부한 ‘꿈의 무대’였다. 유명 선수가 총출동하는 유일한 리그이다 보니, 골프 팬들에게 다른 대안은 없었다.

그렇게 PGA는 독점의 혜택을 마음껏 누렸다. 상금은 매번 ‘찔끔’ 올리는 데 그쳤고, 경기 방식도 언제나 그대로였다. 그래도 괜찮았다. DP월드투어(옛 유러피언투어)와 아시안투어 등에 비해 여전히 상금이 많기 때문에 선수들은 이탈하지 않았다. 그러니, 팬들도 다른 투어로 눈을 돌리지 않았다.


PGA투어가 쌓은 견고한 성이 흔들리기 시작한 건 사우디아라비아의 ‘오일머니’로 무장한 경쟁자가 모습을 드러낸 올해부터다. LIV골프는 올해 출범과 함께 세계랭킹 1위 더스틴 존슨(38·미국), 괴력의 장타자 브라이슨 디섐보(29·미국), ‘메이저 사냥꾼’ 브룩스 켑카(32·미국), 디오픈 챔피언이자 세계랭킹 2위 캐머런 스미스(29·호주) 등 ‘골프 최고수’들을 한 명씩 끌어들였다.

신생 리그에 한 방 맞은 PGA는 부랴부랴 선수들에게 영구 퇴출이란 ‘채찍’과 상금 증액이란 ‘당근’을 동시에 내놓으며 문단속에 나섰다. LIV는 올해 8회였던 대회 수를 내년에 13회로 늘리는 등 추격에 박차를 가한다는 전략이다. 전문가들은 ‘PGA 원맨쇼’였던 세계 남자 프로골프 시장이 수년 내 ‘PGA-LIV 라이벌 체제’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고 있다. 경쟁은 이렇게 직원(선수)에겐 ‘두둑한 지갑’을, 소비자에겐 ‘두 배로 늘어난 볼거리’를 안겨주고 있다.
54홀·샷건·노커트…“세상에 없던 투어”
변화의 출발은 2020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포뮬러1(FI)’ 레이싱 대회처럼 최고 기량의 선수 48명이 4명씩 12개 팀을 이루고, 54홀·샷건(모든 선수가 각 홀에서 동시에 시작하는 방식)·커트 탈락 없이 겨루는 ‘프리미어골프리그(PGL)’ 설립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 이 프로젝트에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가 돈을 대기로 하면서 속도가 붙었다. 조직위원회는 이듬해 ‘슈퍼골프리그(SGL)’로 이름을 바꾸고 본격적으로 선수 영입에 나섰다.

지난해 10월, SGL은 LIV골프로 다시 이름을 바꾸고, ‘백상어’ 그레그 노먼(67·호주)을 대표로 선임했다. 노먼은 PGA투어에서 20승을 올린 세계랭킹 1위 출신이다. 연이어 필 미컬슨(52·미국)이 합류했다. 미컬슨이 PGA투어의 수익 분배 방식에 문제가 있다며 “PGA투어는 역겨운 탐욕을 갖고 있다”고 발언한 직후였다. 그러자 전 세계 골프 팬의 입에 LIV가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LIV 군단은 점점 더 커지고, 세졌다. 존슨과 ‘유럽의 골프 강호’ 세르히오 가르시아(42·스페인), 리 웨스트우드(49·잉글랜드)가 합류했다. PGA는 애써 폄하했다. 떠나간 이들이 대부분 전성기가 지난 30대 후반~40대 초반 선수라는 점을 들었다.

LIV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일단 PGA에 비해 ‘짧고 굵은’ 경기 방식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나흘 동안 72홀을 도는 PGA보다 하루 적은 ‘3일 54홀’로 경기 구조를 짰다. 1번홀부터 순서대로 시작하는 PGA와 달리 1~18홀에서 모든 선수가 동시에 치는 방식으로 바꿨다. 하루 12시간 걸리는 PGA와 달리 LIV는 5시간이면 모든 경기가 끝난다. 그러니 박진감이 따라왔다. LIV는 중계화면의 왼쪽에 실시간으로 바뀌는 리더보드도 설치했다. LIV는 이런 변화에 대해 “혁신을 통해 기존의 질서를 깼다는 점에서 ‘골프계의 넷플릭스’로 불릴 만하지 않은가”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PGA 톱 랭커들을 끌어들인 마지막 퍼즐은 돈이었다. LIV가 미컬슨에게 건넨 ‘이적료’는 2억달러(약 2650억원)에 달했다. 존슨과 디섐보는 각각 1억2500만달러(약 1660억원)를 계약금으로 받았다. 켑카는 1억달러(약 1327억원), 헨리크 스텐손(46·스웨덴)은 5000만달러(약 664억원)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먼은 지난 8월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타이거 우즈에게 7억~8억달러(약 9300억원~1조6000억원)를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고 밝혔다. 이는 우즈가 PGA투어를 통해 평생 벌어들인 상금보다 많은 액수다.

계약금뿐 아니라 상금도 PGA를 크게 웃돈다. 샬 슈워츨(38·남아공)은 6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첫 대회 챔피언에 오르면서 475만달러(약 63억원)를 챙겼다. 이 대회 하나로 그가 거머쥔 돈은 최근 4년 동안 PGA에서 받은 상금(394만달러)을 뛰어넘었다. 커트탈락이 없다는 것도 선수들에겐 매력 포인트다. 48명 중 꼴찌를 해도 12만달러(약 1억6000만원)를 받는다. 근무시간이 짧은데도 돈을 더 주는 직장을 어느 누가 마다하겠는가. LIV로 옮긴 선수들이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갖기 위한 선택”이라고 말한 근거가 여기에 있다.
비상 걸린 PGA투어
LIV의 공세에 PGA는 강력하게 대응했다. 먼저 채찍. LIV로 옮긴 선수는 영구 퇴출하기로 했다. 이로 인해 LIV 선수들은 지난달 열린 PGA투어 플레이오프전인 페덱스컵에 출전하지 못했다.

두 번째는 당근. PGA는 경쟁력 있는 선수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최고의 영향력 선수 프로그램(PIP·Player Impact Program)’이란 제도를 도입했다. 5개 기준에 따라 PGA에 가장 많이 기여한 선수 10명에게 총 4000만달러(약 544억원)를 지급하는 프로젝트다. 지난해 첫 수혜자는 우즈였다. PIP 1등에 선정된 우즈는 800만달러(약 111억원)를 보너스로 받았다.

상금도 올렸다. 2021~2022 시즌 상금 총액을 당초 책정한 3억6700만달러(약 5101억원)에서 4억2700만달러(약 5935억원)로 늘렸다. LIV와 닮은 신생 시리즈도 만든다. PGA투어는 6월 “페덱스컵 가을 시리즈를 열 것”이라고 발표했다. 상위 50명의 골퍼가 2000만달러(약 278억원)를 두고 경쟁하는 대회다. 전문가들은 “이 모든 일이 LIV 때문에 일어났다”고 평가했다.

두터운 선수층을 갖추기 위해 PGA에 들어올 수 있는 문턱도 낮췄다. 이전까지 PGA에 진출하려면 2부인 콘페리투어 퀄리파잉(Q) 스쿨을 통과한 뒤 콘페리투어에서 1년 동안 뛰어 상금랭킹 상위 25명 안에 들어야 했다. 하지만 LIV의 공습이 시작되자 PGA는 한 번의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 PGA에서 뛸 수 있는 ‘매직 카드’를 주는 Q스쿨을 6월 부활시켰다.

내년부터 재개되는 스쿨에서 상위 5명이 투어 카드를 받을 수 있다. 김비오(32) 신상훈(24) 등 해외 진출을 노리는 많은 한국 선수가 내년 Q스쿨에 도전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2부인 콘페리투어의 승급 기준도 포인트 랭킹 25위에서 30위로 넓혔다. DP월드투어에도 문을 더 열었다. 내년부터 이 대회 최종 상위 10명에게 다음 시즌 PGA투어 출전권을 주기로 했다.
LIV의 본질은 ‘엘리트주의’
PGA를 지키는 골퍼들이 LIV를 비판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돈의 출처다. LIV에 돈을 대고 있는 PIF는 빈 살만 왕세자가 이끌고 있다. 2018년 미국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인 자말 카슈끄지를 살해한 배후자로 지목받는 바로 그 사람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국제사회에서 여성과 성소수자를 탄압한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PGA 수성파들이 “LIV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대외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스포츠 워싱’의 도구”라고 비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같은 이유로 7월 미국 포틀랜드에서 열린 LIV 대회장에서 9·11테러 피해자 가족들이 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골프업계에선 LIV의 문제점으로 폐쇄적인 엘리트주의를 꼽는다. 상위 48명에 들어가면 꼴찌를 해도 억대 상금을 받는 등 ‘그들만의 리그’란 이유에서다. 여기에는 LIV를 주도하는 인사들의 성향도 반영됐다는 후문이다. 노먼 대표는 오래전부터 소수 엘리트 선수들만의 투어를 주장해 왔다. 비록 좌초됐지만, 1994년에 40명의 선수가 300만달러(약 40억원)를 두고 경쟁하는 ‘월드골프투어(WGT)’를 추진하기도 했다.

미컬슨도 “PGA투어는 30명이 출전하는 소수정예로 진행돼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전기작가 앨런 시프넉의 책 <필 미컬슨>에는 유명하지 않은 선수들이 미컬슨을 평가한 대목이 나온다. “타이거는 최소한 우리 이름은 알았다. 필은 우리에게 전혀 관심이 없고 이름도 몰랐다.”

그동안 스포츠에서 ‘엘리트주의’를 추진한 사례는 여럿 있었다. 지난해 초 유럽 축구에서 시도했다가 ‘사흘 천하’로 끝난 유러피언 슈퍼리그(ESL)가 대표적이다. 미국 투자은행 JP모간의 후원으로 유럽 명문구단이 모여 별도의 단일 리그를 치른다는 구상이었다. 세계 프로축구단 가치 1~3위인 FC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필두로 스페인 라리가와 이탈리아 세리에A 각 3개, EPL 6개 구단으로 꾸렸다.

하지만 거센 역풍을 맞았다. 각 지역 팬들이 들고일어났고, 각국 총리도 반대 성명을 냈다. 각 지역의 탄탄한 하부리그에서 출발해 프리미엄리그로 올라가는 유럽 축구의 구조를 깨고 시장을 독점하려 한다는 의혹을 받았기 때문이다. 미국 자본에 대한 반감도 컸다. 결국 각 구단은 사흘 만에 ESL 참가를 철회했다.

골프는 다르다. 일단 팀 스포츠가 아닌 만큼 지역 연고가 없다. 높은 상금, 짧은 대회 일정만으로도 일류 선수들을 빨아들일 수 있었던 이유다.
LIV, PGA 대항마로 자리 잡을까
LIV의 창설 명분 중 하나는 ‘PGA 독점 타파’였다. 경쟁은 여러 긍정적인 효과를 불렀다. 일단 선수들이 받는 대우가 달라졌다. 이제 실력 있는 골퍼는 두둑한 현금을 받고 LIV로 옮기거나 상금을 대폭 증액한 PGA 중 하나를 고를 수 있게 됐다. 소비자 역시 PGA 외에 새로운 대안이 생겼다는 점에서 박수 칠 일이다.

그렇게 경쟁을 명분으로 문을 연 LIV는 정작 자기 대회에선 경쟁을 최소화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선택받은 48명에겐 최소한의 경쟁 유도 장치인 ‘커트 탈락’조차 없이 돈잔치를 벌인다는 이유에서다. 6월 런던 대회에서 최하위를 한 앤디 오글트리(24·미국)는 사흘간 24오버파를 쳤는데도 12만달러를 챙겼다. 형편없이 친 골퍼가 팀을 잘 만났다는 이유로 두둑한 팀 상금을 챙기는 것도 공정과는 거리가 멀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기존 투어를 지루해 하는 골프 팬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겠다”는 LIV의 목표가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LIV가 골프 팬들의 관심을 끄는 데는 성공했지만, 아직 PGA보다 더 재미있다는 인상은 심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빈약한 서사는 LIV의 최대 약점이다. 모든 선수가 동시에 출발해 동시에 끝내는 샷건 방식은 긴박감이 있지만, 역전 드라마 같은 얘깃거리는 나오기 힘들다. 짧은 역사는 LIV가 PGA를 넘을 수 없는 가장 큰 한계로 꼽힌다. 4월 마스터스 대회가 열릴 때면 전 세계 골프 팬의 눈은 오거스타내셔널GC로 향한다. 그 눈은 디오픈이 열리는 7월에 스코틀랜드로 옮겨간다. 골프업계 관계자는 “어떤 스포츠건 인기 있는 리그에는 실력 있는 선수들과 함께 오랜 역사가 빚어낸 다양한 스토리가 담겨 있다”며 “이제 막 시작한 LIV는 엄청난 약점을 안고 PGA에 맞서는 셈”이라고 말했다.

LIV가 또 하나의 주류 투어로 완벽하게 자리 잡을지, 아니면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날지는 미지수다. 일단 골프 팬들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고, 점차 몸집을 불려 나가고 있다. 올해 두 리그가 벌인 전쟁이 ‘국지전’이었다면, 내년에는 ‘전면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지방법원은 LIV 소속 선수 11명이 PGA투어를 상대로 제기한 반독점 소송에 대한 판결을 내년 9월 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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