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파타고니아 파격 기부'가 나올 수 없는 이유 [조웅규 변호사의 품격있는 상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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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2-09-29 07:00   수정 2022-09-29 07:08

한국에서 '파타고니아 파격 기부'가 나올 수 없는 이유 [조웅규 변호사의 품격있는 상속]

‘조웅규 변호사의 품격있는 상속’은 상속?자산관리와 관련된 핵심 내용을 살펴봅니다. ‘완벽한 상속’을 계획하는 이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들을 유형별로 들여다봅니다.
법무법인 바른의 상속 및 자산관리 전문가인 조웅규 변호사가 풍부한 사례를 바탕으로 상속분쟁 동향, 분쟁 방지를 위해 고려해야 할 점, 분쟁 발생 시 대응법 등을 제시할 예정입니다. 상속 준비 단계에서의 효과적인 자산관리 방안도 모색해 봅니다.
[편집자 주]


파타고니아(Patagonia)는 칠레의 푸에르토몬트와 아르헨티나의 콜로라도강의 남쪽 지역으로, 한반도 면적의 다섯 배 정도에 달한다. 암벽 등반을 사랑하는 환경주의자인 이본 쉬나드는 대자연의 신비를 보여주는 파타고니아의 이름을 따서 ‘파타고니아’라는 아웃도어 브랜드를 만들었고, 4조 2000억원 가치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평소 자연 보전과 직원 복지를 최우선 가치로 삼았던 그가 최근 기업 전체를 기부했다고 알려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자연에서 얻은 자원을 투자자들의 부로 바꾸는 대신 모든 자원의 원천인 지구가 파타고니아의 유일한 주주”라는 그의 말에 따라 보유한 주식 전부를 환경단체에 기부한 것이다. 4조 2000억원 규모의 통 큰 기부다.

그렇다면 이본 쉬나드 회장이 기부한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는 매각돼 그에 상당하는 현금을 기부하는 것일까. 아니면 계속 운영되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파타고니아는 계속해서 영리기업으로 운영된다.

이본 쉬나드 회장은 파타고니아 주식 중 98%에 해당하는 의결권 없는 주식을 환경단체 홀드패스트 컬렉티브에, 나머지 2%에 해당하는 의결권 있는 주식을 ‘파타고니아 목적 신탁(Patagonia Purpose Trust)’에 출연했다. 이본 쉬나드 회장은 목적 신탁에 출연한 2%의 주식을 통해 파타고니아의 지속가능 경영을 추진할 대표를 선출하고 감독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목적 신탁은 이를 운영할 기관이 필요한데, 이 기관이 운영자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즉, 파타고니아라는 기업은 매년 일정한 금액을 98%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환경단체에 배당하지만, 계속해서 영리기업으로 운영하고 전체 기업의 의사를 결정할 의결권 있는 주식 2%는 여전히 이본 쉬나드 회장 또는 그가 임명한 사람이 통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결국 이본 쉬나드 회장은 4조 2000억원을 지구를 위해 기부한 위대한 기부천사가 됨과 동시에 기업의 영속성을 보장받게 됐다.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통해 기업을 계속해서 경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만약 그가 주식을 자녀들에게 상속했다면, 2025년 이후 미국에서 납부하게 될 연방세 등의 상속세는 2조 2400억원에 달했을 것이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면서 기업을 여러 대에 걸쳐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기업으로 슈바르츠 그룹, 칼짜이즈 그룹, 보쉬 그룹 등이 거론돼 왔다. 위 기업들은 재단법인을 통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면서 상속세도 크게 절감하는 방식으로 기업의 영속성을 확보했다. 이는 ‘기업의 승계’라는 사익을 목적으로 하는 재단이 허용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미국에선 공익 목적 재단만 허용하고 사익 목적 재단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파타고니아가 독일 기업들과 유사한 방식으로 기업의 영속성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신탁이 사익 목적 재단의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재단의 이사진을 통해 재단에 출연한 주식의 의결권을 이용해 기업을 경영하는 것처럼, 신탁의 기관(수탁자)을 통해 수탁받은 주식의 의결권을 이용해 기업을 경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파타고니아의 기부 사례는 4조 2000억원 상당의 통 큰 기부로 알려졌지만, 한편으로는 가장 적은 비용으로 기업의 영속성을 확보한 사례로도 평가될 수 있다.

기업은 부를 창출하고 지속해서 세금을 납부하며 일자리를 마련하는 국민경제의 핵심적인 구성요소다. 기업을 성공적으로 경영하는 것은 절대 쉽지 않다. 성공하면 큰 부를 쌓지만, 실패하면 돌이키기 어려운 타격을 입게 되기 때문이다. 어려움 끝에 기업을 성장시키더라도, 창업주들이 사망하면 기업은 큰 위기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 창업주가 보유한 주식이 상속되는 과정에서 최대 60%의 상속세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상속세 납부를 위해 영업용 자산을 매각하거나 경영권 확보에 필요한 주식을 처분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기도 한다. 창업주가 사망했다는 이유만으로 멀쩡하던 기업이 그 가치를 유지하면서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이처럼 기업승계는 기업의 생애주기에서 매우 중요한 지점이므로, 철저하게 대비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국내 기업가들도 이본 쉬나드 회장처럼 주식을 기부해 공익에 기여하고 상속세 부담도 줄이는 방식의 기업승계를 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현행 법률에 의하면, 한국에서는 파타고니아가 나올 수 없다. 오히려 수원교차로 사건에서처럼, 기부했다가 세금 폭탄을 맞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수원교차로의 창업주인 고(故) 황필상 박사는 장학사업을 하기 위해 수원교차로 주식의 90%인 180억원 상당의 주식을 구원장학재단에 출연했다. 주식의 배당금 등으로 아주대 등 국내 19개 대학 733명의 학생에게 장학금과 연구비를 지원했다. 그런데 과세당국은 세법상 특수관계에 있는 공익법인에 출연할 수 있는 출연한도인 5%를 초과해 주식을 출연했다는 이유로 구원장학재단에 140억원의 세금을 부과하고 황 박사에게도 연대납세 의무를 지웠다.

구원장학재단이 세금을 납부할 여력이 없으므로 결국 황 박사가 위 세금을 납부해야하는 처지가 됐다. 이 사건으로 좋은 취지로 공익재단에 기부하더라도 세금폭탄을 맞을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현행 세법에 의하면, 의결권 있는 주식의 5%(최대 20%) 이상을 공익재단법인에 출연할 경우 상속세 내지 증여세를 납부해야 한다.

의결권 없는 주식은 위와 같은 제한이 없지만, 상법상 의결권 없는 주식은 최대 25%까지만 발행할 수 있는 한계가 있다. 결국 우리나라에서는 파타고니아처럼 파격적인 기부를 통해 기업의 영속성을 확보하는 것이 제도상 불가능하다. “왜 한국에 파타고니아 같은 기업이 없느냐”는 비판을 듣는 기업인들이 억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에서 기업이 공익재단법인에 출연하는 기부를 엄격하게 규제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일부 대기업이 공익재단법인을 통해 세제혜택을 보고 승계에 유리하게 이용한 다음 공익을 위한 목적으로 운영하지 않은 사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창업주는 부의 대물림이 아니라 자신이 평생 일궈온 기업이 영속하기를 희망하기 때문에 기업을 승계하려 한다. 또한 자신이 축적한 기업의 가치를 사회에 환원하고자 하는 의지도 강하다.

일부 부도덕한 행위를 한 기업 때문에 전체 기업인들이 공익재단법인을 부정한 목적으로 이용할 것이라는 확증 편향은 경계해야 한다. 제도를 남용할 것에 대한 우려는 설립된 공익재단법인이 공익을 위해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를 사후에 엄격하게 관리, 감독함으로써 충분히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공익재단법인의 주식 취득 및 보유 등에 관한 엄격한 규제를 완화해 한국의 많은 기업이 파타고니아처럼 기부를 통한 사회적 책임과 기업의 영속성 보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조웅규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변호사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및 대학원 졸업(민법/신탁법)
제41기 사법연수원 수료
한국신탁학회 상임이사
중견기업연합회 기업승계 담당 변호사
상속신탁연구회 회장
Estate Planning Center 상속설계 본부장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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