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1호 아일랜드홀…그린 앞 바람 못 읽으면 정타 맞아도 '스플래시'

입력 2022-09-29 18:13   수정 2022-09-30 00:45


“아이고, 이게 뭔가요. 아름답기는 한데, 쫄려서 못 치겠네요.”

우정힐스CC가 충남 천안에 문을 연 30년 전(1993년), 13번홀(파3) 티박스에 올라선 ‘주말 골퍼’ 10명 중 8~9명은 이랬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볼 수 없었던 ‘국내 1호 아일랜드홀’이었기 때문이다. 호수처럼 큰 워터해저드에 섬처럼 떠 있는 그린에 공을 올리려다 보니, 팔에 힘이 들어가 ‘뒤땅’을 친 싱글 골퍼도 부지기수였단다. 국내 최고 남자 골프대회로 꼽히는 ‘한국오픈’에서 수많은 프로를 나락에 떨어뜨린 홀이기도 하다.

이런 얘기를 들어서였을까. 그동안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아일랜드홀과 마주했지만, 이렇게 부담감을 느낀 적은 별로 없었다. ‘힘 빼고 툭~’을 되뇌며 그립을 감쌌다.
‘국대 골프장’의 ‘국대 홀’
우정힐스CC는 ‘국가대표 골프장’으로 불리는 명문 코스다. 코오롱그룹을 키운 고(故) 이동찬 회장이 대한골프협회(KGA) 회장을 맡았던 1993년에 문을 열었다. 얼마나 아꼈던지, 골프장 이름에 자신의 아호 ‘우정(牛汀·물가의 소)’을 붙였다. 실제 이 회장은 “명문은 만들어가는 것”이라며 직원들에게 꽃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세심하게 다루라고 독려했다고 한다.

그가 우정힐스CC를 가꾸는 데 열과 성을 다한 이유 중에는 ‘어려움을 딛고 얻은 자식’이란 것도 있다. 이 골프장 근처에 3·1운동 발상지인 아우내장터가 있는 데다 독립기념관도 바로 옆에 있기 때문이었다. “순국선열이 잠든 곳에 ‘부자들의 놀이터’를 둬선 안 된다”는 반대에 부딪혀 좌초 위기를 맞은 것. 결국 일본 스타일을 완전히 배제한다는 조건으로 건축 허가가 났다. 이 조건으로 인해 우정힐스CC에는 벚나무가 한 그루도 없었다. 하지만 ‘벚꽃=일본 나무’란 선입견이 옅어지면서 5년 전 4번홀(파3)에 벚나무를 심었다.

코스 설계는 세계 5대 골프장 설계자로 꼽히는 페리 오 다이에게 맡겼다. 어렵게 만들기로 유명한 설계가다. 프로골퍼들도 쩔쩔맬 정도다. 지난 6월 한국오픈 우승자인 김민규(21)의 최종 스코어는 4언더파였다. 메이저대회인 만큼 코리안투어 대표 선수가 모두 도전했지만 4라운드 동안 언더파를 기록한 이는 6명뿐이었다.

그러니 수많은 주말 골퍼가 우정힐스CC에서 마음을 다친다. 100㎜가 넘는 일반러프는 물론 80㎜ 길이의 세미러프에 빠져도 곧바로 한 타씩 더해진다. 차경남 총지배인은 “다른 골프장보다 5~10타 정도 더 치는 게 정상”이라며 “점수로 받은 상처를 달래라고 이렇게 멋진 풍경을 만든 것”이라며 웃었다.
‘골프 신’ 도움 필요한 ‘스플래시 홀’
13번홀은 레드티 기준 78m, 화이트티 기준 150m다. 웬만한 여성 골퍼는 짧은 아이언으로 그린에 올릴 수 있는 거리다.

문제는 그린 주변 러프 구역이 작다는 데 있다. 미스샷이 나면 그대로 호수행(行)이다. 3개의 벙커가 그린을 둘러싸고 있지만, 면적은 작다. 처음 설계에는 이 벙커들도 없었다. ‘굿샷=확실한 보상, 미스샷=철저한 응징’이란 다이의 설계 철학을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 정서에 너무 가혹하다”는 이 회장의 의견을 받아들여 벙커를 넣은 지금의 모습이 됐다.

평소라면 레드티에서 9번 아이언을 잡으면 되는 거리였지만, 이날 아이언 샷은 ‘꽝’이었다. 그래서 4번 우드를 들고 시니어티로 갔다. 130m에 앞바람. 평소 자신 있는 거리. 스위트 스폿에 맞을 때 나는 타구음이 귀를 감쌌다. ‘온 그린’을 확신했지만, 결과는 해저드. 그린 주변을 휘감은 돌발적인 바람에 힘을 잃은 공은 그린 문턱에 떨어진 뒤 물로 직행했다. 공이 빠진 자리에는 왕관 모양의 예쁜 물보라가 피어났다. 이 홀에 ‘스플래시(splash)’란 별명을 지은 사람도 티샷을 물에 빠뜨렸나 보다.

1벌타를 받고 드롭한 뒤 어프로치샷으로 온 그린, 투 퍼트로 홀 아웃했다. 결과는 더블보기. 낙담한 표정을 봤는지, 차 총지배인이 위로를 건넸다. “10여 년 전 일본 최고 골퍼 이시카와 료 아세요? 2009년 초청 선수로 한국오픈에 왔는데, 이 홀에서 1·2·3라운드 모두 샷을 물에 빠뜨려 더블보기를 했습니다. 끝나고도 ‘내가 왜 그랬나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올해 한국오픈 최종 라운드 결과를 찾아보니 67명 중 딱 한 명(김민수)만 이 홀에서 버디를 했다. 한국 골프의 간판 김비오(32)가 이 홀에서 더블보기를 기록하며 우승 경쟁에서 밀려났다.

오거스타GC에 ‘아멘 코너’가 있다면 우정힐스는 ‘실(seal) 코너’가 있다. 하늘에서 보면 바다표범(seal)을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깊은 벙커와 그린 옆 절벽으로 골퍼들을 시험에 들게 하는 16번홀(파3)과 길고(화이트티 기준 410m) 좁은 17번홀(파4), 워터해저드를 피해 전략적으로 공략해야 하는 18번홀(파5)로 구성됐다.

정회원 430명, 주중회원 300명으로 비회원은 회원의 초대를 받거나 회원의 보증이 있어야 칠 수 있다.

천안=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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