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재건축 시동 건 은마아파트

입력 2022-10-20 17:32   수정 2022-10-21 00:33

경남 진주의 빈농 출신 사업가 정태수(1923~2018)가 20년 넘게 다니던 세무서를 그만두고 한보상사를 차린 것은 한국 나이로 쉰이던 1974년이었다. 처음엔 몰리브덴 광산을 인수해 운영하다 이듬해 주택건설업에 손을 댔다. 1976년 서울 강남 개발에 뛰어든 그는 양재천과 탄천의 유수지여서 비만 오면 물이 고이는 저습지 23만7900㎡를 헐값에 사들여 주거용지로 용도를 변경했다. 여기에 14층짜리 28개 동, 4424가구의 대단위 아파트를 지었다. 1979년 완공된 대치동 은마아파트다.

1970년대만 해도 강남은 인기 없는 땅이었다. 오죽하면 박정희 정부가 인구 분산을 위해 강북 명문고들을 강남으로 강제이주시켰을까. 1976년 경기고를 시작으로 도심에서 이전한 20여 개 학교 가운데 15개가 강남·서초·송파 등 강남권으로 옮겼다. 결과는 놀라웠다. 자녀를 좋은 학교에 보내려는 부모들로 인해 이 지역 고교생은 물론 초·중학생과 전입 인구가 급증했다. 강남 8학군이 형성된 배경이다.

특히 단대부속고, 중대부속고, 숙명여고, 진선여고 등이 있고, 멀지 않은 곳에 휘문·중동고와 경기여고 등이 있는 대치동은 ‘사교육 1번지’로 자리 잡았다. 그 중심이 은마아파트다.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 취업이 힘들었던 명문대 운동권 출신들이 임대료가 가장 쌌던 은마아파트 종합상가 학원에서 ‘1타강사’로 명성을 떨쳤다. 대치동 학원가에서는 주민들을 자가에 거주하는 대원족(대치동 원주민), 연어족(대원족의 자녀 세대로, 결혼 후 대치동으로 재입성한 사람), 대전족(대치동 전세족) 등으로 나눈다. 가구 수가 많고 전셋값이 상대적으로 낮은 은마아파트에 ‘대전족’이 많다고 한다.

서울의 대표적 노후 대단지 공동주택인 은마아파트가 재건축 추진 19년 만에 마침내 숙원을 풀게 됐다. 재건축 계획안이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통과해 최고 35층, 33개 동, 5778가구의 아파트 단지로 탈바꿈한다. ‘강남 재건축의 상징’으로 불리는 은마아파트의 재건축 시동으로 압구정동·여의도·목동 등 다른 지역의 재건축도 탄력받을지 주목된다.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분양가 상한제 등의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다.

서화동 논설위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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