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탁상행정' 비판 받는 일회용 컵 보증제

입력 2022-10-24 17:45   수정 2022-10-25 00:20

“이대로 시행되면 2002년 실패했던 컵 보증금제의 전철을 밟게 될 것입니다.”

소비자단체인 컨슈머워치가 24일 서울 여의도에서 개최한 ‘일회용 컵 보증금제 정책 간담회’에서 고장수 전국카페사장협동조합 이사장은 컵보증제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컵 보증제는 소비자가 커피숍 등에서 음료를 일회용 컵에 담아 구매할 때 보증금 300원을 내고 추후 컵을 반납할 때 보증금을 돌려받는 제도다. 환경부는 환경 보호를 명분으로 지난 6월 전국 카페 등에서 이 제도를 도입하려다 카페 점주 등의 반발에 부닥치자 오는 12월로 시행 시기를 미뤘다. 그나마 전국 도입도 아닌 세종과 제주에서 먼저 사업을 한 뒤 전국적으로 확대하겠다고 했다.

당시에도 취지는 좋지만 카페 점주 등 이해당사자들과의 충분한 협의 없이 밀어붙이는 바람에 논란이 많이 된 제도다. 컵 보증제에 드는 각종 비용을 카페 점주 등에게 떠넘겼다가 반발에 부닥쳤고 결국 정치권까지 나서 환경부에 시행을 미루도록 압박했었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단체마저 일회용 컵 보증제에 대한 우려를 드러낸 것이다.

이날 간담회에선 컵 보증제가 진짜 친환경적이냐는 의문이 쏟아졌다. 김범철 강원대 환경융합학부 명예교수는 간담회에서 “어떤 물건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히 평가하려면 사용할 때뿐 아니라 제조 과정, 운반, 처리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봐야 한다”며 “이번 정책에선 컵 세척과 수집, 운반, 별도 인력 채용 등 추가 투입되는 에너지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예컨대 스타벅스코리아 한 곳만 해도 최근 3년6개월간 1126만 개의 텀블러를 판매하고 국내 전체 판매량은 가늠조차 안 되는데, 텀블러는 폐기 과정에서 플라스틱보다 더 큰 환경 오염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일회용 컵을 텀블러로 대체하는 건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일 뿐이란 비판까지 나온다.

일회용 컵 보증제는 코로나19 이후 더 높아진 국민의 위생 의식과 동떨어진 ‘탁상행정’이란 지적도 있다. 일회용 컵을 수거한 뒤 보관·세척하는 과정이 깨끗하고 위생적으로 이뤄지는지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간담회에 참석한 한 패널은 “환경 정책은 선한 의도와 달리 실제 발생하는 부정적 효과를 제거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환경부가 ‘일회용 컵을 없애야 한다’는 명분에만 집착해 카페 점주와 소비자를 납득시킬 수 있는 촘촘한 시행 방안을 만들지 못한다면, 또다시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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