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퓌신(Capucines)’은 프랑스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의 상징적인 가방이다. 이름은 창업자 루이 비통이 1854년 첫 매장을 낸 파리의 카퓌신 거리에서 따왔다. 가방 바닥에 네 개의 금속 장식이 박혀 있어 창업자의 첫 직업인 트렁크 메이커를 연상시킨다. 디자인과 이름 자체로 루이 비통의 창업 철학을 계승하는 가방이다.
루이비통은 4년째 여섯 명의 세계적인 예술가와 협업해 매년 한정판 ‘아르티 카퓌신(Arty Capucines)’을 공개하고 있다. 올해는 파리에서 지난 19일부터 닷새 동안 연 제1회 ‘아트바젤 파리(Paris+Par Art Basel)’에서 처음으로 대규모 전시회를 했다. 제프 쿤스가 디자인한 반 고흐 실크 스카프, 신디 셔먼이 만든 여행용 트렁크, 구사마 아요이의 밀랍 인형 등 1988년부터 루이비통이 예술가와 협업한 유산들과 함께 걸려 화제를 모았다. 올해 선정된 아티스트 중에는 국내 단색화의 대표 화가인 박서보도 있었다. 여섯 명의 예술가들이 루이비통과 협업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국 단색화의 거장 박서보는 자연에서 영감받은 그의 독창적인 그림 ‘묘법’(2016)을 카퓌신 가방에 녹여냈다. 그림을 고화질로 스캔한 뒤 붉은색 부르고뉴 가죽을 누르고 섬세하게 고무를 주입해 울퉁불퉁한 질감을 구현했다. 작가가 붓으로 그려낸 것처럼 섬세한 붓놀림으로 색을 입혔다.
미국의 조각가 케네디 얀코(34)는 금속에 페인트를 붓고 말리며 단단하면서도 유연한 디자인의 작품을 내놓는 것으로 유명하다. 자신의 예술 세계를 카퓌신 가방에 접목하면서 시각적인 것뿐만 아니라 가방의 기능에도 집중했다. 손잡이를 없애 클러치로 변형하거나 가방 안 작은 주머니에 특수 스트랩을 연결할 수 있게 했다. 가방 본체는 페인트를 흩뿌린 듯한 잔물결과 주름을 강조했고, 금 안료 등으로 특수처리해 낡은 듯 멋스러운 디자인을 창조해냈다.
프랑스 예술가 아멜리에 베르트랑(37)은 캔버스에 3차원의 공간을 그려내는 작가다. 시각적 왜곡과 다양한 색으로 팝아트와 구상의 중간쯤에 있는 회화가 대표 작품들이다. 그는 한여름 밤 분위기에서 영감을 받아 반짝이는 최초의 ‘야광 카퓌신’을 만들어냈다. 빛을 흡수해 다시 방출하는 특수 안료를 처리해 가방 손잡이와 표면, 가방끈을 연결하는 금속 부분, 봉제선까지 모두 빛을 낸다. 금속 체인에는 아연 도금을 특수 처리해 보는 각도에 따라 무지갯빛을 발산한다. 한 쌍의 큰 꽃과 체인을 걸어 시선을 사로잡는다.
스위스 태생의 이탈리아계 예술가 우고 론디노네(58)는 그의 전형적 예술적 모티브인 광대와 무지개를 이번 디자인에 접목했다. 슬픔과 기쁨, 상승과 하강 등 중의적 표현을 즐기는 그의 예술 세계가 가방 안에도 담겼다. 론디노네의 가방은 광대 옷 같은 조각 패턴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할리퀸 패턴’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가죽 본체에 1만5000개의 작은 구슬을 손으로 달았다. 가방마다 제작 기간이 100시간 이상 걸렸는데, 각 패턴 안에는 1988년 작가가 제작했던 꽃 조각이 들어 있다.
세계 최고의 현대 예술가 가운데 한 명인 다니엘 뷔렌(84)은 카퓌신 가방이 본래 갖고 있던 디자인 요소를 추상화했다. 기하학적 구상과 패턴의 예술로 상징되던 그가 이번 작업에선 가방의 형태를 추상화했다. 대칭으로 연결된 손잡이는 반원이었던 손잡이를 원형으로 만들었다.
파리=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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