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알 만한 연예인 고객 수두룩…수천만원짜리 '짝퉁' 불티 [안혜원의 명품의세계]

입력 2022-10-29 17:34   수정 2022-10-29 19:14


"정품을 분해해 똑같이 만들었습니다."
"정품 만드는 공장에서 동일한 원단으로 똑같이 디자인했습니다. 개런티 카드와 상품 일련번호도 동일하게 제작했어요."

'#레플리카' '#모티프' '#스타일(st)' 같은 해시태그만으로도 수십만건의 게시물이 검색되는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이처럼 명품을 대놓고 베낀 위조상품(짝퉁) 거래가 빈번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특S급' '미러(mirror)급' 등으로 더욱 교묘해진 짝퉁이 판을 칩니다. 명품 수요가 늘고 소비 비중도 커지면서 온라인 짝퉁 거래도 덩달아 증가한 것입니다.

팬데믹 기간 국내 명품 시장 규모는 부쩍 커졌습니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명품 시장은 지난해 141억 달러(약 20조원) 규모로 세계 7위를 기록했습니다. 명품 시장이 성장하면서 가품을 파는 소위 짝퉁 시장도 따라 커졌습니다. 관세청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적발된 짝퉁 명품 가방 수는 1866건, 합계 금액은 4670억원에 달합니다. 물론 적발된 것만 이렇고 실제 가품 시장 규모는 수천억~수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올 초 불거진 유튜버 겸 인플루언서 프리지아(본명 송지아)의 가품 논란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프리지아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솔로지옥'에 출연하면서 유튜브 구독자가 50만명에서 190만명으로 급증하는 등 단박에 연예계 샛별로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그가 유튜브 채널과 인스타그램에서 선보인 명품이 일부 가짜라는 의혹이 제기됐고, 스스로 이를 인정하면서 활동 정지 수순에 이르게 됐습니다.

이 시기 송지아 기사에 "짝퉁 한 번 안 사본 사람 있느냐"는 댓글이 심심찮게 달리는 것은 한국 사회가 그만큼 짝퉁에 무감각하다는 점을 잘 보여줍니다. 고가 명품을 사면서 SNS '플렉스'(재력이나 귀중품을 과시하는 행위)를 하는 이들이 많이 늘어난 만큼 짝퉁을 구매하며 비슷한 과시 심리를 느끼는 사람도 늘어난 것입니다.

여기에 짝퉁 판매자들이 "정품과 거의 유사한 제품을 훨씬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다"고 광고하는 탓에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추구 심리가 작동하기도 합니다.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는 이모 씨(31)는 "쇼핑몰 홍보를 위해 SNS에 사진을 많이 찍어 올리는 편인데 명품을 걸치고 찍으면 팔로어(구독자)들이 관심을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며 "사진 한 번 찍는데 1000만원 넘는 가방을 덜컥 사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20만~30만원에 가품을 사 촬영한 적 있다. 효과는 1000만원급"이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블로그나 SNS 등을 통해 개인 간 거래하는 소셜커머스가 확대되면서 짝퉁 시장은 더 빠르게 몸집을 불렸습니다. '정품 퀄(리티) 상품'만 취급한다는 한 인스타그램 계정은 팔로어가 1만명 가까이 됩니다. 판매 정보는 비공개라 문의는 1대 1로만 받는다는 이곳에선 1000만원 넘는 에르메스 가방을 70만원대에 살 수 있습니다. 계정 주인은 "98% 동일하게 맞춤 제작 가능하다. 주문이 많으니 얼른 예약해야 가방을 받아볼 수 있다"며 구매를 부추겼습니다.

올해 들어서는 엔데믹(전염병의 풍토병화) 전환으로 야외 활동이 늘면서 짝퉁 시장도 오프라인으로 나오는 추세입니다. 관광업계의 손님맞이가 시작되는 가운데 과거 남대문시장이나 이태원 등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지역 일대 뒷골목에서 암암리에 거래되던 가짜 명품이 거리로 나왔습니다.

서울 중구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2번 출구 인근에는 밤 시간이 되면 국내 최대 짝퉁시장으로 알려진 '새빛시장'이 문을 엽니다. 정품의 10%도 안되는 가격이 대부분이라 조악한 품질을 보이지만 구매는 활발하다는 게 현지 상인들 이야기입니다.

짝퉁 구매는 돈 없는 이만 하는 게 아닙니다. 2020년 10월 1억1000만원짜리 에르메스 짝퉁 가방을 1300만원에 판매해 서울본부세관에 붙잡힌 남매는 충격을 준 적 있습니다. 짝퉁 가격만 1000만원이 넘었지만 의사·대학교수 등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전문직이나 부유층들은 소형차 한 대 값을 주고 선뜻 짝퉁을 구매했습니다. 이 남매가 제작한 가품 규모만 정품 시가 290억원 상당이었으니까요.


이처럼 청담·압구정 등 강남 일대에선 수백만~수천만원대로 비싼 '특S급 가품'이 기승입니다. '아는 사람만 아는' 이러한 짝퉁 거래는 은밀한 방판(방문판매)으로 이뤄지곤 합니다. 이들이 짝퉁을 사는 이유는 해당 제품이 VIP에게만 판매하는 등 구매가 까다롭고, 대기가 길어 돈이 있어도 사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구하기 어려운 컬러나 소재일수록 이런 현상은 더 심해집니다.

이 일대에서 가품 매장을 운영하는 업자 최모 씨(54)는 "강남 사모님들이나 이름을 알 만한 연예인들이 고객"이라고 자랑합니다. 그는 "에르메스·샤넬 등 초고가 명품을 즐겨매는 부유층들은 짝퉁 구매도 망설이지 않는다. 정품은 집에 모셔두고 가품을 편하게 들고 다니는 식"이라며 "가품이라도 워낙 비싼 제품이니 퀄리티(질)가 좋다"고 전했습니다.

짝퉁을 구매할 수 있는 통로가 다양해지고 그 방법도 점차 쉬워지면서 나타나는 부작용이 많지만 처벌은 부실합니다. 현행 상표법(제230조)은 "상표권 또는 전용사용권의 침해 행위를 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처벌이 집행유예나 벌금 수준에 그치는 데다, 위조품 판매 수익보다 추징금이 낮다 보니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위조품 판매자만 처벌 대상이고 구매자는 처벌하지 않는 점도 문제로 지적됩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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