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아! 이태원

입력 2022-10-30 18:03   수정 2022-10-31 00:11

이태원(梨泰院)이라는 이름에는 묘한 슬픔이 배어 있다. 지명 유래부터 그렇다. 배나무(梨)가 많은 곳이고 옛 관리들 숙소인 원(院)이 있던 자리였지만, 임진왜란 때 왜군에게 겁탈당한 여인들의 아이들 보육원 자리여서 이태원(異態園)이라고도 했다. 조선에 귀화한 왜군 등 이타인(異他人)이 살던 동네에서 비롯됐다는 설까지 있다.

오래전부터 교통의 요충지였는데, 그게 또 다른 비극을 초래했다. 고려 시대에는 몽골군의 병참기지가 이곳에 있었다. 임진왜란 때는 왜군 보급기지였고, 임오군란 땐 청나라군 주둔지였다. 이후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이긴 일본의 군사기지가 들어섰고, 광복 후엔 주한미군기지로 변했다.

6·25 직후에는 피란민이 대거 몰려들었다. 이들이 세운 이태원 시장은 미군기지에서 나온 물자를 거래하며 상권을 형성했다. 외국인과 유흥시설이 몰린 번화가는 서울의 3대 클럽 지역으로 꼽혔다. 신중현과 윤복희 등 가수들은 미8군 무대와 이태원 클럽에서 밤새워 노래를 불렀다. 흑인 병사들은 박인수 노래의 ‘봄비’를 듣고 “고향 노래 같다”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한국 댄스 음악의 텃밭이 돼준 클럽 문나이트는 ‘K팝’의 성장 무대였다. 현진영과 구준엽, 강원래, 듀스, 서태지와 아이들 등 댄스 가수들이 이곳에서 꿈을 키웠다. 서울시 관광특구 1호여서 방문객이 연간 250만 명에 달했다. 그러나 미군기지가 평택으로 이전한 뒤로는 상권이 쪼그라들었다.

2020년에는 웹툰 원작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로 화제를 모았다. 청춘들의 유쾌한 반란과 창업 신화를 그린 이 드라마가 국내외에서 인기를 끈 덕분에 시장이 되살아나는 듯했지만, 곧이어 터진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로 매출이 전년보다 65%나 곤두박질쳤다. ‘이태원 클나쓰’라는 자조적인 신조어도 생겼다.

이제 거리두기도 끝나고 한숨 돌리나 싶더니 한밤중 150여 명이 숨지는 압사 사고가 터졌다. 희생자들이 생때같은 젊은이여서 더욱 가슴이 미어진다. 수세기에 걸친 질곡의 역사도 견뎌왔는데 21세기 도심에서 이렇게 참담한 사고라니! 바로 옆 이태원 공동묘지 자리에 있는 유관순 추모비마저 할 말을 잃고 서 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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