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즈 트러스는 딸 이름도 ‘리버티’(자유)라고 지은 골수 보수당원이다. 레이건과 대처로 대표되는 신(新)자유주의 경제의 신봉자이고, 영국인을 세계에서 가장 근면한 사람들이라고 믿는 정치인이었다. 그래서 규제를 풀고 세금을 깎아주면 투자로 이어져 침체에 빠진 영국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고 확신했다. 총리에 오르자마자 10년 넘게 구상해온 대규모 감세안을 꺼내 들었다. 결과는 아는 바대로다. 영국 파운드와 국채 가격이 폭락하며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쳤고, 그는 ‘양상추 총리’라는 불명예를 안고 49일 만에 사퇴했다.트러스의 실패를 복기(復棋)하는 일은 한국에 대단히 중요하다. 벌써부터 일부 정치인이 영국 사례를 들며 감세안을 철회하라고 주장하고 있어서다. 결론부터 말하면 번지수를 짚어도 한참 잘못 짚었다.
한국 상황은 이와 다르다. 가파르게 늘긴 했지만 국가 채무 비율(49%)이 영국의 절반 수준이고, 감세를 추진하지만 역대 최대 지출 구조조정안도 함께 내놨다. 거기에다 국가 부채를 통제 가능한 수준으로 관리하겠다며 재정준칙 도입안(국가재정법 개정안)까지 마련한 터다. 야당 정치인들이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해묵은 ‘부자 감세’ 프레임으로 내년 예산안(18개 예산부속법안 포함)에 태클을 걸고 있다. 감세 혜택을 부자만 본다는 주장 자체도 어불성설이거니와, 문재인 정부가 세계 주요국이 감세에 나설 때 ‘나 홀로 증세’를 강행했던 점을 감안하면 감세는 당연한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러스의 실패를 ‘세계 부채 위기의 전주곡’으로 진단했다. 각국이 금리 인상기에 부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증세나 지출 구조조정 등 어려운 선택에 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자칫 고통을 피하겠다고 ‘구조조정 없는 감세’ 같은 꼼수를 부렸다가는 트러스류의 결말을 피할 수 없다는 경고다. 걱정되는 게 바로 이 대목이다. 한국에서도 감세와 구조조정에 반대하며 기초연금 확대, 양곡관리법 개정안, 아동수당 확대 등 ‘퍼주기 포퓰리즘’에 경도된 거대 야당이 버티고 있다. 유사 이래 고통 대신 모르핀을 선택한 나라들의 결말은 한결같았다. 한국은 트러스가 아니라 대처, 레이건의 길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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