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 그림엽서 같은 홀…전략 없이 덤볐다간 '물 아니면 모래行'

입력 2022-11-03 17:55   수정 2022-11-04 00:42


경북 상주의 ‘가을 길’은 풍요롭다. 길가엔 감나무가 줄지어 늘어서 있고, 길 안쪽엔 포도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지금은 곶감과 포도 산지로 유명하지만 상주는 본래 영남의 중심이었다. 경주와 상주의 앞글자로 ‘경상도’란 이름을 만들었을 정도다. 선조들은 넉넉하고 풍요로운 상주를 고대 중국의 중심지였던 낙양에 빗대기도 했다.

블루원상주CC는 이런 상주를 내려다볼 수 있는 백화산 자락에 터를 잡은 골프장이다. 골프팬이라면 SBS골프채널에서 한 번쯤은 봤을 ‘고교동창 골프최강전’이 열리는 그곳이다. 단풍으로 물든 블루원상주CC는 TV 화면으로 볼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빽빽한 잔디와 아름드리나무, 아기자기하게 가꾼 연못, 알프스 산장 같은 숙소들을 휴대폰에 담으니 그림엽서가 따로 없었다.

동코스 2번홀(파4)은 이런 블루원상주CC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홀이다. ‘경상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홀’로 불리는 이 홀은 2019년 골프매거진으로부터 ‘대한민국 10대 홀’에 뽑히기도 했다.
대한민국 정중앙에 있는 골프장
이 홀이 시그니처홀이 된 건 단지 아름답기 때문만은 아니다. 일단 길다. 화이트티 373m, 레드티 303m다. 큼지막한 호수가 있는 오른쪽으로 티샷이 밀리면 파 세이브는 물건너 간다. 그린은 워터 해저드 너머에 섬처럼 자리 잡고 있다. 짧게 말하면 ‘우(右) 도그레그 아일랜드홀’이다.

티잉 구역이 언덕배기에 설치된 덕분에 홀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다. 윤재연 블루원 대표(부회장)는 “전략을 잘 짜야 파 세이브를 할 수 있는 홀”이라고 했다.

“홀이 어떻게 생겼는지 찬찬히 살펴보세요. 호수 폭이 오른쪽으로 갈수록 넓어지잖아요. 그러니 티샷이 오른쪽으로 가거나 너무 짧으면 세컨드샷 거리가 길어집니다. 그렇다고 최단거리로 보내려다가는 벙커에 빠지기 십상이죠. 정확도가 떨어지면 왼쪽 페어웨이에 떨군 뒤 세컨드샷을 끊어가는 것도 방법이에요.”

블루원상주CC는 2008년 ‘상주 오렌지’란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국내에서 골프장을 가장 많이 시공한 오렌지엔지니어링이 이름을 걸고 지었다. 18홀 회원제 골프장으로 출발한 이곳은 2010년 태영건설이 인수한 뒤 대중제 골프장으로 바뀌었다.

이 골프장이 경상도를 넘어 ‘전국구 골프장’이 된 배경에는 고교동창 골프최강전이 있다. 2010년부터 지금까지 방송을 타면서 이름을 알렸다. 게다가 매년 이 대회에 출전하는 300여 개 고등학교의 아마추어 고수들이 낸 입소문 덕분에 수도권에서도 많은 골퍼가 1박2일로 찾는다고 한다. 윤 대표는 “블루원상주CC가 고교동창 골프최강전의 무대가 된 데는 ‘대한민국 정중앙에 있는 골프장’이란 점도 한몫했다”며 “전국 어디서든 2~3시간 안에 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략 없이 덤비면 철저한 응징
티잉 구역에서 맞은편에 있는 ‘알프스 산장’을 향해 드라이버를 휘둘렀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느낌이 찰졌다. 모든 게 뜻대로 됐을 때 나올 수 있는 거리(160m)가 나왔다. 공은 겨냥한 대로 페어웨이 왼쪽에 떨어졌다. ‘이렇게 잘 맞을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오른쪽으로 볼걸.’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다.

페어웨이 왼쪽에 떨어져 만만치 않은 세컨드샷 거리가 남았다. 그린까지는 약 150m. 물을 건너려면 캐리로 100m 이상 날려야 한다. 분명히 머릿속으론 ‘욕심부리면 안 돼. 해저드 폭이 가장 좁은 곳으로 60m만 보내자. 스리 온-원 퍼트가 현명한 전략이야’라고 생각했지만, 손엔 이미 5번 유틸리티가 들려 있었다. 드라이버처럼 한 번 더 정타가 나오면 투온이 가능한 상황.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긴 채로 두 번 연속 깨끗한 정타가 나온 적은 별로 없었다. 빗맞은 공은 해저드에 빠졌다. 벌타를 받고 해저드 건너 그린 근처에서 네 번째 샷을 쳤다. 4온 2퍼트. 더블 보기였다. 윤 대표는 달랐다. 드라이버를 오른쪽 벙커 옆에 떨군 뒤 한번 끊어가는 전략을 썼다. 3온 1퍼트. 그의 플레이를 보면서 나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 물만 나오면 힘이 들어가는 유리멘털, 3온을 노리지 않은 무전략에 대한 자책감이 밀려들었다.

호수를 끼고 도는 유려한 동코스를 지나면 완전히 다른 얼굴을 한 서코스를 만난다. 긴 전장에 백화산의 산세를 그대로 활용한 호쾌한 서코스는 거리와 방향 중 하나만 틀려도 파를 허락하지 않는다. 두 개의 아찔한 협곡을 건너야 하는 서코스 4번(파4)·5번(파5)홀은 길고도 탄도 높은 샷을 구사해야 ‘레귤러 온’을 할 수 있다. 국내 골프장에선 쉽사리 볼 수 없는 홀이다. 이국적인 풍경은 덤이다.


‘유한양행 홀’로 알려진 동코스 7번홀(파3)도 명물이다. 그린 옆 길게 가지를 드리운 수양버들은 유한양행 로고를 똑 닮았다. 홀인원 선물은 고가의 유한양행 건강기능식품이다.

서울 사는 골퍼들이 당일치기를 하기엔 만만치 않은 거리다. 골프장이 알프스 산장을 닮은 객실을 넉넉하게 만든 이유다.

상주=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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