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암호화폐거래소 바이낸스가 부실 재정으로 파산 위기에 몰린 경쟁사 FTX 인수를 철회했다. FTX 인수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지 19시간 만이다. 거래량 기준 세계 4위 거래소이던 FTX가 하루아침에 붕괴할 위험에 처하면서 암호화폐 시장은 대혼란에 빠졌다. 주요 코인 가격이 일제히 폭락하며 세계 암호화폐 시가총액은 이틀 만에 280조원(19.5%) 증발했다.
자산 인출을 중단한 FTX에 발이 묶인 투자자들은 속만 태우고 있다. 암호화폐 분석업체 크립토퀀트에 따르면 FTX에 묶여 있는 자산은 6억9543만달러(약 9620억원)에 달한다. 이 중에는 국내 투자자 자금도 포함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지난 9일 자오창펑 바이낸스 최고경영자(CEO)는 유동성 경색이 발생한 FTX를 인수하기 위해 구속력 없는 투자의향서(LOI)에 서명했다고 발표했다. FTX와 그 모회사 격인 헤지펀드 알라메다리서치의 부실한 재무구조가 드러나면서 투자자들이 FTX에 예치한 자산을 무더기 인출하는 ‘코인런’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FTX와 알라메다 보유 자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던 FTX 자체 발행 토큰 FTT 가격은 나흘 새 24달러에서 2달러로 폭락했다.
바이낸스가 발을 빼면서 FTX는 파산 위기에 몰렸다. FTX와 알라메다의 창업자인 샘 뱅크먼프리드는 출금 요청에 대응하려면 최대 80억달러가 필요하며, 당장 40억달러를 조달하지 못하면 파산 신청을 할 수밖에 없다고 투자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뱅크먼프리드는 이날 직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다음주 중 자금 조달에 나설 것”이라며 “잠재적 투자자로 (암호화폐 트론 창업자인) 저스틴 선과 논의하고 있다”고 했다.
FTX와 알라메다에 투자했거나 대출해준 기관들도 줄줄이 손실이 불가피하다. FTX 투자자 명단에는 블랙록, 세쿼이아캐피털, 소프트뱅크그룹, 캐나다교원연금 등 유수 기관이 즐비하다. 세쿼이아는 이날 FTX에 넣은 투자금 1억5000만달러를 이미 손실로 처리했다. 회수 가망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업계에선 ‘암호화폐업계의 JP모간’이란 별칭까지 얻으며 스타로 떠올랐던 뱅크먼프리드가 한순간에 몰락하면서 시장에 대한 불신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일이 암호화폐 시장의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빈난새/박진우 기자 binthe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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