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병원인가, 갤러리인가

입력 2022-11-13 17:18   수정 2022-11-14 00:13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갤러리 SP. 전시장 안으로 들어가면 소독약 냄새가 진하게 느껴진다. ‘삐익~삐익~.’ 응급실 바이털 사인 소리를 연상시키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전시장 곳곳엔 소화기내과, 피부과 등의 표지판이 붙어 있다. 병원인지 갤러리인지 헷갈리는 이곳은 지난 11일부터 열리고 있는 ‘아르스 롱가’ 전시회 현장이다.

전시장을 병원처럼 꾸민 것은 전시의 주제가 ‘예술과 의술의 만남’이어서다. 언뜻 생각하면 예술과 의술은 거리가 멀지만 사실 둘 사이에는 많은 공통점이 있다. 인간의 상처를 치유하고, 생명과 죽음을 깊이 고찰하기 때문이다. 전시 제목도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Ars Longa, Vita Brevis)’는 히포크라테스의 말에서 따왔다. 예술의 힘을 강조하는 데 많이 쓰는 격언이지만 사실 아르스(Ars)는 예술보다는 기술이나 의술에 가깝다. ‘아르스 롱가’는 예술의 영원함을 기리는 찬양이라기보다 오히려 배워야 할 의술이 많은데 시간이 부족하다는 의사 히포크라테스의 한탄이었다.

전시에서는 3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작가 25명이 각 분야에 맞는 공예 작품을 선보인다. 유방외과를 맡은 박지은 작가는 아크릴로 만든 작은 비즈(구멍이 뚫린 작은 구슬)를 일일이 실로 이어 붙여서 여성 유방 모양의 브로치를 만들었다. 여성의 신체는 숨겨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작품이다. 대다수 여성이 그렇듯 양쪽 유방의 크기를 다르게 제작했다. 세포연구실의 박소영 작가는 현미경으로 관찰한 세포의 모습을 본떠 보석 브로치를 제작했다. 세포들이 죽어가고, 분열하고, 새로 태어나는 모습을 작은 은구슬과 보석으로 재현했다.

아예 병원에서 가져온 재료로 만든 작품도 있다. 피부과의 이선용 작가는 병원에서 쓰는 실리콘과 거즈를 사용해 목걸이를 제작했다. 실제 살갗처럼 보이는 실리콘을 이리저리 엮은 이 작품의 이름은 ‘피부를 입다’. 피부가 외부로부터 인간을 보호해주는 동시에 촉감에 기반해 사람 간 관계를 매개한다는 점에서 착안한 작품이다. 이미리 작가는 불량 의료용품, 바늘, 용기 등을 가져다 종이와 엮어서 허공에 매달았다. 옛사람들이 서낭당에서 병을 치료해달라고 기도하며 매다는 소원지를 연상시킨다.

모두 실제로 귀걸이, 목걸이, 브로치로 쓸 수 있지만 마냥 예쁘기만 한 장신구는 아니다. 전시를 기획한 구혜원 푸른문화재단 이사장은 “공예는 새로운 창작 아이디어와 미(美)를 고루 갖춘 엄연한 예술작품”이라고 했다. 전시는 이달 25일까지.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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