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다가 2021년 기준으로 건강보험엔 9조5720억원의 재정이 투입됐다. 공무원연금(3조2400억원)과 군인연금(1조6140억원)보다 국고 지원액이 훨씬 많다. 그런데도 건강보험은 기금이 아니어서 국회나 재정당국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한국의 건보료는 사실상 세금과 마찬가지인데 세금(건보료)을 어떻게 걷고 쓰는지에 대해선 의료계 이해당사자의 목소리만 반영되는 비정상적 구조”라며 “건보 재정도 국회의 견제를 받을 수 있도록 기금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건강보험이 기금이 아니다 보니 국가재정수지에 포함되지 않고, 그 결과 한국의 복지 지출이 실제보다 ‘과소평가’된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지난해 정부 예산 558조원 중 보건·복지·고용 분야 지출은 199조원으로 총지출의 35.8%였다. 여기엔 건강보험 지출 79조원 중 약 10조원(건강보험 정부 지원금 9조5500억원 등)가량만 반영됐다. 나머지 69조원가량을 더하면 보건·복지·고용 분야 지출은 268조원, 총지출의 42.85%로 늘어난다.
기금화에 대한 반대도 만만찮다. 주무부처인 복지부는 건강보험이 기금화되면 국회의 정치적 의사결정과 지역·직역·이익단체의 영향으로 당사자 간 자율 운영이 어려워진다며 반대하고 있다. 민주당 등 야권은 올해 말 종료(일몰)되는 국고 지원을 무기한 늘리고,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 지원 비율도 높여야 한다는 법안을 발의했다. 40여 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는 건강보험 기금화 방안에 대해 “가뜩이나 낮은 보장률이 더 약화되고 보험료는 대폭 인상될 것”이라고 반발했다.
복지부가 건강보험 개혁에 미온적이란 비판도 있다. 복지부는 지난 8월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참여한 건강보험 재정개혁추진단을 발족하면서 10월에 건보 지출 절감 방안을 발표하겠다고 했지만 아직까지 감감무소식이다.
도병욱/곽용희 기자 dodo@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