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100년간 살아남은 '단 하루'의 이야기

입력 2022-11-25 18:35   수정 2022-11-25 23:51

“이 작품 속에 너무나 많은 수수께끼와 퀴즈를 감춰뒀기 때문에 앞으로 수세기 동안 대학교수들은 내가 의미하는 바를 말하느라 분주할 것이다. 이것이 나의 불멸을 보장하는 유일한 길이다.”

제임스 조이스는 1922년 출간된 소설 <율리시스> 서문에 이렇게 적었다. 그의 예언대로 이 작품은 어렵기로 유명하다. 이 책을 번역한 김종건 고려대 명예교수를 비롯한 ‘한국 제임스조이스 학회’ 회원들은 2002년부터 <율리시스> 읽기 모임을 시작해 2014년까지 매달 1회 4시간씩 이 소설을 나눠 읽으며 토론을 벌였을 정도다.

100년간 숱한 대학교수들을 괴롭혀온 소설은 정작 단 하루 동안 벌어진 이야기다. 주인공은 신문사 광고부 사원인 리오폴드 블룸. 소설은 아일랜드 더블린을 배경으로 1904년 6월 16일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블룸의 행적을 좇는다.

분량은 900쪽이 넘는다. 제목부터 대서사시의 기운을 풍긴다. 율리시스는 트로이전쟁 이후 귀향길에 10년간 바다를 떠돈 오디세우스의 라틴어식 이름이다.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오디세이>가 오디세우스의 방랑을 그렸다면, <율리시스>는 끝을 알 수 없는 블룸의 머릿속을 헤맨다. 이른바 ‘의식의 흐름’ 기법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과 성경, 더블린의 실제 장소 등이 뒤엉킨다. 형식도 종잡을 수 없다. 어느 대목은 시나리오 같고, 어느 대목은 시처럼 썼다. 쉼표나 마침표 하나 없이 약 4만 개의 단어가 이어지는 마지막 18장이 유명하다.

여러모로 파격적인 책이다. ‘너무 야해서 놀랐다’는 독자도 많다. 한때는 외설 시비로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다. 블룸의 머릿속 성적 욕망을 노골적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논쟁 끝에 판사가 금지령을 해제하며 “이 책이 독자에게 구토를 유발할 수는 있어도, 외설적이지는 않다”고 말한 일화도 유명하다.

조이스는 이런 소동에 개의치 않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율리시스>가 읽기에 적절하지 않다면, 인생은 살기에 적절하지 않은 겁니다.” 원래 인생이란 게 알 수 없다는 의미다. 깊이를 모를 바다처럼, 인생은 단 하루조차 간단하게 해석되지 않는다. 어떤 하루는 10년의 방랑만큼 고단하고 또 치열하다.

수수께끼처럼 알쏭달쏭한 매력 덕분일까. 더블린 사람들은 요즘도 6월 16일을 ‘블룸스데이’로 기념한다. 매년 이날이 되면 블룸이 방문한 작품 속 장소를 찾아가는 ‘성지순례’를 벌인다. 이 날짜에는 비밀이 있다. 조이스가 훗날의 아내 노라와 첫 데이트에 성공한 날이다. 수세기 동안 살아남을 단 하루는 사실 조이스의 사랑이 시작된 날이었다.

올해 <율리시스> 출간 100주년을 기념해 서울 청담동 소전북아트갤러리에서 내년 3월까지 율리시스 아트북 전시회가 열린다. 앙리 마티스가 삽화를 그린 1500부 한정판 <율리시스>도 만나볼 수 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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