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10전11기'…한국 스타트업 이끄는 '연쇄' 창업가들 [긱스]

입력 2022-12-08 15:08   수정 2022-12-08 16:18

이 기사는 프리미엄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한경 긱스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국내 벤처업계에 '노정석'(비팩토리 대표)이란 이름은 꽤 알려져 있다. 창업의 정석, 미다스의 손, 스타트업 마스터 등 화려한 수식어도 따라붙는다. 그중에서도 그와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은 '연쇄 창업가'다. 창업만 일곱 번을 했고, 대부분 성공했다. 국내 스타트업 중에 처음으로 구글이 사들인 태터앤컴퍼니(블로그 개발업체), 글로벌 모바일 광고회사 탭조이가 인수한 파이브락스(게임 이용자 분석 업체) 등을 그가 세웠다. 2020년 일곱 번째 창업 아이템으로 택한 건 의외로 ‘화장품’이었다. "뷰티업계의 테슬라가 되겠다"는 그는 인공지능(AI)으로 화장품도 혁신할 수 있다고 믿는다.

국내 스타트업계에는 노 대표 같은 연쇄 창업가들이 적지 않다. 손대는 사업마다 '대박'을 터뜨리는 인물도 있고, 수많은 실패를 겪은 뒤 마침내 성공 가도에 오르는 사람도 있다. 성공한 창업자가 투자자로 변신해 '선순환 생태계'를 만들어가기도 한다. 한경 긱스(Geeks)가 국내 스타트업계를 이끌어온 대표적 연쇄 창업가들을 살펴봤다.
'7전8기형' 창업자들

동영상 앱 '아자르'로 대박을 터뜨린 안상일 하이퍼커넥트 대표는 이른바 '오뚝이형' 연쇄 창업가다. 그는 '7전8기'가 아니라 무려 '10전11기'였다. 김밥집, 옷가게, 검색엔진, 사진 스튜디오 등등 업종도 가리지 않았다.

서울대 창업동아리 회장 출신이기도 한 그는 대학생 시절인 2002년 정보기술(IT) 컨설팅 관련 회사를 세웠다가 투자 실패로 큰 손실을 봤다. 하지만 2007년 창업동아리 친구들과 인터넷 검색업체 레비서치를 다시 창업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법인도 세우며 사업을 확대해 나갔다. 그러나 2008년 닥친 글로벌 금융위기로 사업을 또다시 접어야만 했다.

그는 10번에 이르는 쓰라린 실패 뒤 2014년 하이퍼커넥트를 세웠다.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한 맞춤형 영상 채팅 앱 아자르는 글로벌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지난해 초 세계 최대 데이팅 앱 ‘틴더’를 운영하는 미국 매치그룹이 하이퍼커넥트를 2조원에 사들였다.


박현호 크몽 대표 역시 ‘10전11기’를 겪었다. 프리랜서 마켓 플랫폼 크몽으로 주목받고 있는 박 대표는 대학생 시절 온라인 쇼핑몰, PC방 관리 프로그램 등을 개발했다. 전자기기 쇼핑몰인 라밤바도 세웠다. 성장하던 사업은 '닷컴버블'이 터지며 와르르 무너졌다.

그러다 2011년 크몽의 초기 모델을 선보인다. 5000원에 다른 사람의 재능을 사고파는 방식으로 서비스를 하다가 캐리커처 그려주기, 연애 상담, 직장 상사 욕해주기 등 '말랑말랑'한 요소를 넣으며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지금의 크몽으로 자리 잡았다.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토스) 대표는 ‘8전9기’로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 신화를 썼다. 이 대표는 2011년 스마트폰 초음파통신을 이용해 오프라인 만남을 기록하는 SNS 울라블라를 내놨다. 지인 관계를 인증하는 서비스 수요가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페이스북이 비슷한 기능이 내놓으면서 사업을 접어야 했다.

2013년에는 모바일 투표 앱 다보트를 출시했다. 이마저도 카카오가 비슷한 기능을 카카오톡에 추가하면서 또다시 사업을 접었다. 이후 100개가 넘는 아이템 가운데 팀원 투표와 프로토타입(시제품) 개발 등을 통해 복잡한 인터넷쇼핑 결제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그래서 나온 서비스가 지금의 '토스'다.


전주훈 삼분의일 대표도 여러 차례 창업에 실패했다. 침대 매트리스 시장을 혁신하고 있는 삼분의일을 창업하게 된 계기도 “사업이 어려울 때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수면의 중요성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전 대표는 잇단 레스토랑사업 실패에 이어 2015년 가사도우미 플랫폼 홈클을 내놨으나 수익성 악화와 법률문제 등으로 사업을 접어야만 했다. '가성비' 좋은 매트리스 업체 삼분의일로 재기에 성공한 그는 최근 글로벌 화학회사 다우와 제품 공동개발 협약을 맺는 등 사업을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박성민 골라라 대표는 창업만 아홉 번을 했다. 2005년부터 인테리어 시공사, 분양 대행사 등 다양한 분야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신용불량자로 전락해 한동안 공사 현장을 전전하며 일용직 노동자로 생계를 꾸려나가기도 했다. 결국 여덟 번째 사업인 인테리어 중개 플랫폼 집닥을 성공시켰고, 지금은 동대문을 세계와 연결하겠다는 포부로 글로벌 패션 도매마켓 골라라를 운영하고 있다.
잇따라 성공 가도 달리기도
‘미다스의 손’을 가진 창업자들도 적지 않다.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이 대표적이다. 1세대 벤처 사업가 출신인 장 의장은 1997년 네오위즈를 설립했다. 2005년에는 검색엔진 업체 첫눈을 공동 창업한 뒤 네이버에 매각하는 데 성공했고, 2007년 크래프톤의 전신인 블루홀스튜디오를 설립했다. 크래프톤이 대형 게임사로 성장해 지난해 코스피에 상장했다.

장 의장은 산업계의 소프트웨어(SW) 인력 구인난 문제를 해소함과 동시에 청년 고용 창출에 기여하기 위해 카이스트 ‘SW사관학교 정글’과 '크래프톤 정글'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클라우드 컨설팅 기업 베스핀글로벌의 이한주 대표 역시 손대는 사업마다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이 대표는 1983년 아버지인 이해민 전 삼성전자 대표를 따라 미국으로 떠났다. 이후 1998년 웹 호스팅 업체 호스트웨이를 창업해 인터넷 서비스 업계에 첫발을 들였다. 이 대표는 인터넷 성장 흐름을 타고 2014년 호스트웨이를 미국 사모펀드에 5억달러를 받고 매각했다. 국내로 돌아와 스타트업을 돕는 액셀러레이터(AC) 스파크랩을 공동 창업했고, 베스핀글로벌을 세워 클라우드 시장의 혁신을 꾀하고 있다.


데이터 농업 스타트업 그린랩스는 금융·IT 전문가들이 모여 2017년 설립된 회사다. 신상훈 대표는 뱅크오브아메리카(BoA)와 메릴린치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했고, 데이팅 서비스 앱 ‘아만다’ 운영사 넥스트매치를 창업했다. 안동현·최성우 대표는 소셜커머스 업체 쿠차를 설립했다. 안 대표는 피키캐스트 대표도 역임했다. 지난해 매출 1000억원가량을 기록한 그린랩스는 올해 다섯 배 늘어난 5000억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상한다.


AI 기반 리워드 광고 플랫폼 기업 버즈빌의 이관우 대표는 네 번의 창업을 통해 엑시트(투자금 회수)도 여러 번 경험한 베테랑이다. 이토프(모바일 코드 솔루션), 포스트윙(저작권 관리 솔루션 개발업체), 데일리픽(맛집 전문 소셜커머스) 등을 창업해 네이버, 티몬 등 국내 IT 대기업에 잇따라 매각했다.
투자자로 변신해 후배 양성도

'한국 스타트업의 대부'로 불리는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는 지금껏 5개 회사를 세웠다. 그는 1990년대 후반 결제업체 이니시스와 보안회사 이니텍을 설립해 모두 코스닥에 상장시켰다. 엑시트에 성공한 그는 후배 양성에 본격적으로 나선다.

권 대표가 2010년 설립한 프라이머는 국내 최초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로 불린다. 스타일쉐어, 아이디어스, 번개장터, 라엘, 세탁특공대 등 200곳이 넘는 스타트업이 그의 손을 거쳐 빛을 봤다. 권 대표는 "인생에 한 번은 무조건 창업하라"고 말한다.


류중희 퓨처플레이 대표는 창업으로 수백억원 규모의 자금을 확보한 뒤 창업 전도사로 벤처판에 복귀했다. 류 대표는 얼굴인식 기술 회사인 올라웍스를 2006년 세운 뒤 인텔에 3100만달러에 판 경험이 있다. 회사 매각 후 젊은 인재들의 기술 창업을 돕기 위해 2013년 퓨처플레이를 설립했다.


내비게이션 서비스 '김기사'로 유명한 록앤올의 신명진·박종환·김원태 공동 창업자 역시 후배 양성에 힘쓰고 있다. 이들은 회사를 카카오에 매각한 뒤 2018년 액셀러레이터 김기사랩을 설립했다. 지난 4년 동안 투자한 스타트업이 40개가 넘는다. 핀테크 스타트업 빅쏠 등 일부 기업은 벌써 다른 기업에 인수되기도 했다.
연쇄 창업은 실리콘밸리 문화
연쇄 창업은 실리콘밸리를 키운 힘이기도 하다. 국내 벤처업계에서 활약하다가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하는 사례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김동신 센드버드 대표는 기업용 채팅 플랫폼으로 유니콘 기업을 키웠다. 그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뒤 엔씨소프트에서 근무하다가 2007년 게임업체 파프리카랩을 창업했다. 이후 2012년 일본 게임사인 그리에 파프리카랩을 매각하고, 2013년 센드버드를 실리콘밸리에서 세웠다.

처음 사업 아이템은 육아 정보 커뮤니티 운영이었다. 시행착오 끝에 지금의 사업 모델인 메시징 플랫폼으로 전환했다. 김 대표는 대학 재학 시절 e스포츠 게임단 ‘삼성 칸’에서 프로게이머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창수 올거나이즈 대표는 노정석 대표와 함께 파이브락스를 공동 창업한 인물이다. 올거나이즈는 이 대표가 2017년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한 자연어 이해 AI 솔루션 스타트업이다. AI봇 ‘알리’와 인지 검색 솔루션 등을 운영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기업용 온라인 협업툴 소프트웨어로 주목받고 있는 이주환 스윗테크놀로지 대표도 2015년 에듀테크 스타트업에 도전해 실패를 맛본 경험이 있다. 이후 2017년 스윗을 창업했다. 그는 슬랙을 오랜 기간 사용하면서 느낀 부족함을 바탕으로 서비스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2018년 말 첫 베타 버전을 선보였고, 2019년 3월 정식 버전을 출시한 뒤 빠르게 회사를 키워왔다.


하정우 베어로보틱스 대표는 한때 순두붓집 사장님이었다. 인텔을 거쳐 2011년부터 구글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했던 그는 2016년 "사람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고 싶다"는 생각에 실리콘밸리에서 순두붓집을 차린다. 하지만 하 대표는 식당 일이 너무 고되다는 것을 깨닫고, 서빙 같은 힘든 일을 대신 해주는 로봇을 개발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2017년 서빙 로봇 스타트업 베어로보틱스를 창업한 배경이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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