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다고요? 이건 아프리카의 비극입니다

입력 2022-12-04 17:37   수정 2022-12-05 01:41


비만과 성인병의 원흉 취급을 받는 설탕은 근대 초기만 해도 많은 국가에서 비싸고 귀한 사치품이었다. 설탕의 원료인 사탕수수가 열대·아열대 지역에서만 자라기 때문이다.

유럽인 대부분이 설탕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아프리카에서 노예들을 동원해 사탕수수를 대량으로 재배하기 시작하면서다. 16~18세기 유럽인과 미국인들은 사탕수수 부산물을 수입해 럼주를 만들었고, 이를 아프리카로 가져가 노예를 산 뒤 서인도제도에서 팔아 차익을 남기는 ‘삼각무역’으로 막대한 돈을 벌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아프리카인이 죽거나 다치고, 대대손손 착취당하는 노예로 전락했다.

엘 아나추이(78)가 술병 뚜껑으로 아프리카의 전통 예술품을 연상하는 조형 작품을 만드는 것은 관람객에게 이런 비극적인 역사를 상기시키기 위해서다. 가나에서 태어나 나이지리아에서 주로 활동해온 아나추이는 2015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평생공로상(황금사자상)을 받은 세계적인 작가다. 중형 작품 한 점 가격이 수십억원에 달한다.

서울 삼청동 바라캇컨템포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부유하는 빛’은 아나추이의 작품을 국내에서 만날 수 있는 드문 기회다. 그의 한국 전시는 2017년 이후 5년 만이다.

강렬한 붉은 색 병뚜껑으로 만든 ‘제너레이션 커밍(Generation Coming)’을 비롯한 그의 작품 대부분은 작가가 마을 주민들과 함께 제작한 것이다. 갤러리 관계자는 “아프리카 주민들이 수입 술 병뚜껑을 엮어 작품으로 만든다는 사실 자체가 삼각무역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전시장에 나온 신작 10여 점은 이전 작업보다 더욱 섬세해서 조형 작품이라기보다 회화에 가까운 인상을 준다. 나무 패널을 불로 지지고 그 위에 색을 입힌 목조 부조, 작가의 작품에서 따온 문양을 입힌 판화 작품에서는 아나추이의 다양한 작품 세계를 감상할 수 있다. 압권은 창에서 쏟아지는 자연광을 받아 갤러리 한쪽 벽 전체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뉴월드 심포니(New World Symphony)’다. 이화령 바라캇컨템포러리 이사는 “오전 10시와 오후 2시 무렵 작품이 가장 아름답게 빛난다”고 했다. 전시는 내년 1월 29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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