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 지사 "경기도를 반도체, AI 신산업의 메카로"

입력 2022-12-06 16:30   수정 2022-12-06 17:12


만난 사람 = 이관우 사회부장

김동연 경기지사(64)는 6·1 지방선거 최대 격전지 경기도에서 0.15%포인트 차로 신승(辛勝)했다. 녹록지 않은 상황은 취임 후에도 이어졌다. 78 대 78. 의석수가 똑같은 여야 동수 도의회를 맞닥뜨린 것이다. 10·29 참사로 38명의 도민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안전 이슈까지 터졌다.

공직에선 고수로 통했지만, 정치는 초보였다. 묵묵히 발을 디뎠다. 여·야·정 협의체를 출범시켜 협치의 돛을 올렸고, 조직개편안을 만들어 김동연식 정책을 펼칠 진용을 갖췄다. 취임 5개월을 넘기며 도 안팎에서 김 지사의 도정에 점차 자신감이 실리고 있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최근엔 ‘기회의 수도 경기도’를 비전으로 내걸었다.

투자유치에 성과가 나고 있습니다.

김 지사는 지난 5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경제부총리를 지낸 지사로서 경기도에 경제활력을 불어넣는 게 최우선 목표”라며 “경기도를 4차 산업, 신성장 산업의 메카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경기도를 바이오·미디어(북부), 인공지능(AI)·데이터(동부), 반도체(남부), 전기차 및 소부장(서부) 등 네 권역으로 나눠 도 차원의 신산업 클러스터를 구축하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네덜란드 ASML이 지난달 16일 화성에 둥지를 틀면서 글로벌 반도체 장비 빅4 기업(AMAT·ASML·램리서치·TEL)이 모두 경기도 에 거점을 두게 됐습니다. 반도체 일정을 연이어 소화하는 중이지요. 피터 베닝크 ASML 최고경영자를 만난 자리에선 아주 솔직한 대화를 나눴습니다. 종교 박해를 피해 네덜란드로 이주한 뒤 근세 기술 혁신에 꽃을 피운 ‘네덜란드 유대인’과 한국인의 혁신 DNA가 똑 닮았다고 얘기하니 놀라면서도 기뻐하더군요. ‘국내에서 생산되는 반도체 부가가치의 83%가 경기도에서 나오고 있다. 연구개발(R&D)을 하고, 미래 인재도 양성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조직개편안 내용은 무엇입니까.

“광역 지방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각각의 4차 산업을 담당하는 과를 신설하기로 했습니다. 미래성장산업국을 두고 그 산하에 반도체산업, 바이오산업, 첨단모빌리티산업, AI·빅데이터(디지털산업)과를 넣고 다른 조직에 있던 창업지원 및 규제혁신 두 개 과를 붙이는 방식입니다. 반도체든 바이오든 경기도와 일을 하려면 모든 절차를 이 조직에서 해결할 수 있습니다.”

기업인은 물론 각국 대사와도 만나고 있습니다. 지자체장으로 대사를 만나는 것은 이례적입니다.

“광역자치단체도 경제를 활성화하려면 훌륭한 글로벌 파트너를 필요로 합니다. 디지털 등 신산업의 영토는 결코 땅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공직 생활과 세계은행 근무, 아주대 총장 등을 지내며 많은 해외 인사와 교분을 쌓았습니다. 경기도의 미래를 위해 제가 가진 네트워크를 활용해 새로운 동맹을 만들고자 합니다. 영국, 독일, 캐나다 대사를 만났고, 최근에는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를 만나 기존의 안보동맹과 가치동맹을 넘어 ‘혁신동맹으로 가자’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기후변화 문제에 공동으로 대응하고,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대해 국내 기업들은 유예 기간이 필요한데 대사께서 ‘역할을 해달라’고 부탁했지요.”

기업이나 시설 유치를 놓고 갈등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광역지자체는 지자체들이 ‘윈윈’하는 게임을 만들어야 합니다. 각 시·군은 경쟁하는 동시에 협력관계입니다. 경기 남부 화성, 평택, 용인을 아우르는 거대한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한 게 대표적 사례겠지요. 갈등을 경쟁과 협력으로 전환하는 게 핵심입니다. 수원 군 공항 이전은 단순히 군사시설을 옮기는 게 아닙니다. 경기 남부에 물류와 인적 교류의 허브인 국제공항을 만들고, 주변을 국제도시로 조성하는 프로젝트입니다. 군 공항을 옮길 지역과 옮겨갈 지역은 물론 주변까지 연계해 발전하는 방향을 제시해 유치 경쟁을 유도할 생각입니다.”

사회 안전망에 대한 의식이 높아졌습니다.

“수원 세 모녀 사망 사건과 10·29 참사를 겪었습니다. 도가 진정성 있게 나서 아픈 도민의 마음을 진심으로 위로했다는 점에서 작은 성과를 거뒀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성장과 분배는 이념으로 대립해왔습니다. 이제까지 성장이라는 편익만 강조되고 양극화와 저출생, 자살률 1위와 같은 비용은 간과된 것입니다. 긴 안목으로는 취약계층 복지가 곧 지속 가능한 성장의 해법이고,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투자라는 점을 깨달아야겠지요. 이것이 기업 차원에서 나타난 게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이자 최근엔 소셜 임팩트입니다. 도 차원에선 내년 경제위기의 정점이 올 것이라고 보고, 복지 예산을 늘리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경제 상황이 더욱 나빠진다는 의미인가요.

“과거 경제위기와 전혀 다른 양태의 위기가 전개될 겁니다. 많은 전문가가 지정학적 전환기를 맞아 트리플 위기, 복합·장기 위기를 점치고 있습니다. 경기도는 건전재정을 강조하는 중앙정부와 달리 취약계층을 위한 민생재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노인일자리 사업입니다. 정부 예산 매칭률이 높은 사업인데 정부는 일자리 수를 9만 개에서 내년 8만 개로 줄이라고 했습니다. 도는 자체 예산으로 2만 개를 더 늘리기로 했습니다.”

정부의 경제정책에 문제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경제 분야에선 비전이 없고, 비상 대책이 없고, 리더십이 없는 ‘3불(不) 트리플 위기’가 빚어지고 있습니다. 경제위기 국면에서 대통령과 국무총리, 경제부총리 중 누가 보이나요. 무엇보다 경제주체들에게 시장의 어려움을 정확히 알리는 게 우선돼야 합니다. 메신저가 믿음을 주고, 정책의 일관성 및 예측 가능성을 전해야 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화물연대 파업도 결국은 물류대란 이전에 불통 대란입니다. 기업들과 재계에서도 ‘강 대 강’ 대치 전에 충분히 타결을 원했을 텐데 굉장히 불편할 것입니다.”

정부가 나름대로 기업 친화적 행보를 보이는 게 아닐까요.

“기업이 규제를 풀고 마음껏 할 수 있게끔 하는 건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다만 시장 과정에서의 불공정을 해결하기 위해선 기업을 규제할 필요도, 취약한 경제주체를 위해 힘을 보태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시장의 결과로 인한 불균형 문제는 복지나 교육 등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회복시켜 해결해야 합니다. 시장은 깨지기 쉬운 그릇이자 피우기 어려운 꽃이지요. 자유로운 경쟁과 창의를 일으키는 동시에 약점을 보완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희망은 무엇인가요.

“한국 경제엔 잠재력과 위기 극복의 DNA가 있습니다. 2017년 경제부총리 시절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이후 국제신용평가 3사(피치, S&P, 무디스) 본사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국가신용등급 강등 위기에서 ‘한국이 언제든 위기가 아닌 적이 있었나. 어려움을 딛고 일어선 게 한국 경제다’라고 설득했습니다. 3사 모두 신용등급을 내리지 않았죠. 지금도 어려운 과정에 있지만 세계 최고인 대한민국 국민의 잠재력을 감안하면 이겨낼 수 있다고 봅니다.”

지난 5개월의 성과와 소감은.

“중앙정부는 담론과 거시경제를 중심으로 움직입니다. 지방정부는 직접 주민과 접촉하는 미시적, 생활 정책을 합니다. 운 좋게 부총리까지 하며 토대를 갖추게 된 제 거시적 가치와 철학을 구체적인 정치를 통해 펼칠 수 있고, 주민의 삶을 바꾼다는 점이 큰 보람입니다. 경기도를 변화시켜서 대한민국을 변화시키겠습니다.”

정리=김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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