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터졌다" 펑!…'국가대표 사진 작품' 무더기로 나왔다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입력 2022-12-17 07:45   수정 2023-04-27 16:25


“1950년대 우리네 이야기다. 그때는 전쟁의 상처 위에서 다들 힘겹게 살았다. 봄이 되면 보릿고개를 넘기느라 먹고 입는 데 골몰하였다. (중략) 그러니 어울려 놀 만한 곳도, 마땅히 가지고 놀 것도 없었다.

마을 빈터에 뻥튀기 아저씨가 자리를 잡으면 우르르 몰려갔다. 뜨거운 화롯불을 밑에 놓고 튀기는 기구를 빙빙 돌리다가 열이 오르면 그물망으로 된 기다란 망태기를 붙들어 매었다. 아이들은 손으로 귀를 막고 눈을 감으며 한 발짝 물러섰다. 아저씨가 꼭 잠가 놓은 아가리를 쇠꼬챙이로 열어젖히면 '펑' 소리를 내며 터졌다. 흰 김이 물씬 피어올랐고, 아이들은 ‘앗 터졌다’ 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고는 흩어진 부스러기를 얻어먹으며 낄낄거렸다.”(김종욱 수필가, 매일신문 2016년 5월 5일자)

보기만 해도 미소가 절로 나오는 이 사진은 서울 삼청동 뮤지엄한미에서 오는 21일 개막하는 개관전 ‘한국사진사(史) 인사이드 아웃, 1929~1982’에 나와 있는 작품입니다. 지난 14일 폭설을 뚫고 전시를 미리 둘러봤는데, 작품들을 보자마자 “하루빨리 소개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가대표 사진작가들이 찍은 작품들이 총출동했거든요.

이 전시는 1929~1982년 한국 사진예술의 역사를 다룹니다. 1929년은 국내 최초로 사진 전시가 열린 해, 1982년은 처음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사진가 개인전이 열린 때입니다. 뮤지엄 관계자는 “처음에는 기록용 도구로만 취급받았던 사진이 예술로 인정받은 과정을 소개하는 의미”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때는 한반도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격동의 시대이기도 합니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분단과 ‘한강의 기적’을 아우르는 시기니까요.

그렇기에 이 전시에는 현대 한국을 살아냈던 ‘그때 그 사람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이번 주 기자코너에서는 그 중 20여점을 골라 소개하고, 그 시절로 시간 여행을 떠나 보겠습니다. 사진을 제공받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해서, 뮤지엄과 협의해 전시장에서 제가 직접 찍었습니다. 현장 상황 때문에 일부 잘리고 수평이 안 맞는 점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가난한 나라, 한국

이 작품은 한국 사진예술의 선구자인 정해창이 1929년 촬영한 여인의 초상입니다. 단아하면서도 기품있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흰 저고리를 입고 흰 두건을 두르게 해 매력을 극대화했지요. 박주석 명지대 교수가 지난해 출간한 ‘한국사진사’ 표지 작품일 정도로 초기 한국 사진예술을 상징하는 유명한 작품입니다.


정해창이 1929년 3월 광화문빌딩 2층에서 연 사진전은 한국 최초의 사진 전시입니다. 전시에서는 당시 나왔던 1920~1930년대 작품 다섯 점이 걸려 있는데, 한국의 전통적인 정서와 아름다움을 잘 담고 있는 작품들입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전후인 1930~1940년대는 본격적으로 사진이 예술 대접을 받기 시작한 시기입니다. 신문사들은 앞다퉈 공모전을 열었고, 새로운 작가들도 많이 등장했죠. 이때까지만 해도 한국은 가난한 개발도상국이었습니다. 김정래의 ‘한강철교 부근’(1930년대)을 보시죠. 웬 돛단배들이 떠다니네요. 장도선의 ‘새벽으로 향해서’(1940), 구왕삼의 군동(1945)도 인상적입니다.
전쟁과 죽음, 그래도 사랑

해방의 기쁨도 잠시. 1950년 6·25 전쟁이 터집니다.

사진가들은 리얼리즘 사진을 통해 전쟁의 참상을 렌즈에 생생히 담았습니다. 임인식의 ‘6.25전쟁-군번없는 학도병’(1950)에 당시 상황이 드러나 있습니다. 기껏해야 중고등학생 정도 돼 보이는 학생들이 군번도 받지 못하고 생지옥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표정에는 두려움이 섞여 있지만, 나라를 지키겠다는 결연함도 강하게 느껴집니다.

수많은 사람이 전쟁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명동의 호국의 꽃(1953)은 이런 비극을 사진 한 장으로 보여줍니다. 철모에는 구멍이 나 있고, 철모 주인이 흘린 피가 말라붙어 있습니다. 목숨 바쳐 나라를 지킨 호국영령에게 존경과 감사를 보냅니다.




임응식의 ‘전쟁고아’(1950)처럼, 수많은 고아가 생겨났습니다. 부모가 있는 아이들도 밥을 굶기가 예사였습니다. 최민식의 ‘소녀의 식사’(1965), ‘무의식의 표정’(1965)을 보면 아시겠지요. 일자리를 구하는 청년의 모습을 담은 임응식의 ‘구직’(1953)에서 볼 수 있듯 형편이 넉넉지 않은 건 모두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이형록의 ‘시장의 아침’(1957)과 ‘건설’(1957), 배동준의 ‘끝손질’(1976)처럼 억척스럽게 하루하루를 살아냈고, 전쟁의 폐허에서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습니다.



전시를 감상하다 보니, “이들이 그렇게 열심히 살 수 있었던 건 가족과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과 사랑 때문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품 속 아이들은 그야말로 어른들에게 웃음을 주는 미래의 희망 그 자체였습니다. 이해문의 ‘꽃피리’(1960), 한영수의 ‘아이들’(1961)에서 볼 수 있듯이 말입니다. ‘꽃피리’에 등장하는 아기는 지금 환갑을 넘기셨겠군요.


전시 마지막은 1982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임응식의 회고전에 나온 작품들입니다. 그 중 서울 명동의 풍경을 촬영한 명동점경(1976)이나 서양화가 남관의 모습을 촬영한 작품(1981)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그 몇십년 새 한국이 이룬 눈부신 발전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전시를 본 미술계의 한 관계자는 “마치 타임머신을 탄 기분”이라고 하더군요.
전시는 오는 21일 개막

제가 촬영한 사진 소개는 여기까지입니다. 이 작품들이 걸려 있는 뮤지엄한미 삼청은 한미약품이 최근 문을 연 곳입니다. 일종의 사회 공헌 사업인데, 한미약품은 2003년 한국 최초의 사진 전문 미술관인 한미사진미술관을 개관하는 등 ‘사진에 진심’인 걸로 유명하죠. 민현식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과 사진을 보관하는 저온 수장고 등도 훌륭하고 아름다운데, 이와 관련된 기사는 기자코너와 별도로 다음 주 중에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전시에는 사진 총 200여점과 관련 기록물 100여점이 나와 있습니다. 관람료는 24~65세 성인 6000원, 초등학생부터 24세 미만까지는 5000원, 미취학 아동과 만 65세 이상, 장애인과 국가유공자는 무료입니다. 전시는 내년 4월 16일까지 열리는데, 개막이 다음 주 수요일(21일)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지난주 기자코너에서 합스부르크 왕가(막시밀리안 1세의 아들과 며느리) 이야기를 다루겠다고 말씀드렸지만, 전시 개막 전 시의성 있게 기사를 작성하고자 주제를 변경했습니다.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예고했던 주제는 다음 주에 소개하겠습니다.
*별도 소장처 표기가 없는 작품은 모두 뮤지엄한미 소장품입니다.
*(12월 18일 오후 11시 수정) 노인이 회전목마를 타고 있는 두 번째 사진 작품은 신현국의 '동심' 입니다. 당초 김종헌의 1967년작 '욕구'로 잘못 표기돼 있었기에 바로잡습니다.
<svg version="1.1" xmlns="http://www.w3.org/2000/svg" xmlns:xlink="http://www.w3.org/1999/xlink" x="0" y="0" viewBox="0 0 27.4 20" class="svg-quote" xml:space="preserve" style="fill:#666; display:block; width:28px; height:20px; margin-bottom:10px"><path class="st0" d="M0,12.9C0,0.2,12.4,0,12.4,0C6.7,3.2,7.8,6.2,7.5,8.5c2.8,0.4,5,2.9,5,5.9c0,3.6-2.9,5.7-5.9,5.7 C3.2,20,0,17.4,0,12.9z M14.8,12.9C14.8,0.2,27.2,0,27.2,0c-5.7,3.2-4.6,6.2-4.8,8.5c2.8,0.4,5,2.9,5,5.9c0,3.6-2.9,5.7-5.9,5.7 C18,20,14.8,17.4,14.8,12.9z"></path></svg><그때 그 사람들>은 미술과 고고학 등 과거 사람들이 남긴 흥미로운 것들에 대해 다루는 코너입니다. 토요일마다 연재되는 기사로, 이번 기사는 21회째입니다. 쉽고 재미있게 쓰겠습니다.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시면 토요일마다 연재되는 기사를 놓치지 않고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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