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머지않아 닥칠 미래"…日 '부의 회춘' 비책 뭐길래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입력 2022-12-28 07:11   수정 2022-12-28 17:02

이 기사는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글로벌마켓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임금 인상이 역대 일본 정부의 과제였다면 '부의 회춘'과 '부의 이전'은 기시다 내각에서 나름 새롭게 시도되는 정책이다. 부의 회춘이란 한마디로 고령 자산가들의 재산을 젊은 중산층으로 이전시키는 것이다.


2000조엔이 넘는 일본의 가계 금융자산 가운데 60%인 1200조엔을 60세 이상 고령자가 갖고 있다. 이들의 자산을 젊은 세대로 넘겨서 소비 진작과 경제활성화를 유도한다는 것이다.



급여가 지난 30년간 오르지 않았다는 통계 때문에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가난하다'라고 오해를 하기 쉽다. 세계에서 백만장자가 두 번째로 많은 도시가 도쿄라는데서 보듯 일본은 부자가 많은 나라다.

일본인의 급여가 30년간 오르지 않은 것은 급여가 상대적으로 낮은 비정규직 근로자가 크게 늘면서 평균치가 제자리걸음을 한데 따른 일종의 착시현상이다. 대기업 관리자급과 고령자층의 급여와 소득 수준은 한국보다 높은 편이다.



이들 고소득, 고령자 층의 부를 아래로 흘러내리게 만든다는게 기시다 내각의 정책이다. 파이를 키우는데 주력했던 아베노믹스와 기시다 총리의 '새로운 자본주의'의 가장 큰 차이이기도 하다.



더 이상 투자 리스크를 떠 안을 필요가 없는 고령자들은 돈이 남고, 기꺼이 리스크를 떠 안으려는 젊은 세대는 투자할 돈이 없는 괴리를 해소하고, 돈 쓸 데가 상대적으로 적은 고령자의 재산을 돈 들어갈 데가 많은 육아세대로 이전시켜야 소비가 늘어난다는 논리다.


대표적인 대책이 생전증여 제도의 확대다. 일본은 부모가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줄 경우 매년 110만엔까지 증여세가 면제된다. 이런 식으로 증여세를 전부 면제받으면 부익부 빈익빈 해소라는 상속세의 취지가 훼손된다. 이 때문에 부모가 사망하면 사망일로부터 3년 이내에 받은 증여는 사망 후 물려받은 재산과 합쳐서 상속세의 대상이 된다.



일본 정부는 이 기간을 7년으로 늘리기로 했다. 2027년부터 단계적으로 늘려 2031년 최종적으로 시행된다. 한때 10년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자산가들의 반발을 의식해서 기간이 다소 줄었다. 참고로 독일은 10년, 프랑스는 15년까지 소급해서 상속세를 매긴다.

상속세와 증여세를 한꺼번에 얻어맞지 않고 미리 조금씩 재산을 물려주려면 적어도 죽기 7년 전에는 증여를 완료해야 한다는 얘기다. 자신이 죽을 날을 미리 아는 사람은 없으니 실제로는 고령의 자산가들이 훨씬 더 일찌감치 증여를 시작할 것으로 일본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기왕 물려줄 재산, 자녀들이 한창 돈 필요할 때 미리미리 물려주라는 뜻이다.



60세 이상의 부모가 주택구입 등으로 부채가 많은 40대 이하 자녀에게 손주의 교육비는 1500만엔까지, 육아 비용은 1000만엔까지 비과세로 증여할 수 있는 특례제도도 연장하기로 했다. 원래는 내년 3월 종료될 예정이었지만 3년 더 운영할 방침이다.



젊은 육아세대들에 직접 돈을 꽂아주겠다는 정책도 내놨다. 지난 1일 일본 정부는 2030년까지 30~40대 육아세대의 소득을 지금보다 44% 늘리겠다고 밝혔다. 명목 경제성장률이 1% 정도를 유지하는 일본 정부의 시나리오대로라면 육아세대의 소득은 2019년에 비해 14% 늘어난다. 이를 30%포인트 더 높여 44%로 늘리겠다는 취지다.



내각부는 2030년 시점에서 ▲여성의 정규직 비율이 북유럽 국가 수준으로 높아지고 ▲육아수당 같은 현금 지원과 보육 서비스와 같은 현물 지급을 지금보다 2배 늘리면 30~40대 육아세대의 소득이 44% 늘어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를 위해 일본 정부는 육아수당과 같은 어린이 예산을 지금보다 2배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부유층의 세금을 더 많이 걷어서 분배에 활용하는 대책도 등장했다. 부의 이전 정책이다. '타워맨션 절세'를 막는게 대표적이다. 타워맨션은 20층 이상의 고급 아파트를 말한다.

2013년 준공한 도쿄도의 43층짜리 타워맨션의 23층, 67㎡ 아파트 한 채의 시가는 1억1900만엔이다. 그런데 상속세를 부과할 때 기준으로 삼는 평가금액은 3720만엔에 불과하다. 과세대상 재산을 8000만엔 이상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아파트의 시가는 입지와 브랜드, 방향, 층수 등 다양한 요소를 반영해서 결정된다. 반면 상속세 평가금액은 토지의 가격만을 놓고 매기기 때문에 생기는 괴리다. 일본 자산시장의 그늘④에서는 고령의 자산가들이 상속할 때가 되면 주식을 팔아서 부동산을 사는 추세를 소개했다. 부동산이 주식보다 상속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타워맨션은 '타워맨션 절세'라는 말을 만들어 낼 정도로 상속세 절세 수단으로 선호된다. 타워맨션 절세를 막으면 부유층으로부터 더 많은 세금을 걷어서 젊은 육아세대 지원을 늘릴 수 있다는게 일본 정부의 계산이다.

금융소득과세를 개선해 '1억엔의 벽'을 부수는 작업도 밀어붙이고 나섰다. 일본 정부는 연 소득이 30억엔이 넘는 초부유층을 대상으로 3억3000만엔을 공제한 금액에 대해 22.5%의 세율을 적용할 방침이다.



1억엔의 벽이란 세금부담이 소득 1억엔까지는 점점 높아지다가 1억엔을 넘으면 오히려 줄어드는 현상을 말한다. 월급쟁이들이 내는 급여소득세는 누진세 방식이어서 연봉이 높을 수록 세율이 최대 55%까지 오른다.

반면 주식의 매각차익이나 배당에 붙는 금융소득의 세율은 일률적으로 20%(소득세15%+주민세 5%)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1년에 10억원 이상을 버는 사람들 정도면 급여보다 금융소득의 비중이 더 크기 때문이다.

재무성에 따르면 소득이 5000만~1억엔 이하인 사람의 세금부담률은 27.9%이다. 50억엔~100억엔 소득자의 부담률은 16.1%로 5000만~1억엔 이하인 사람들보다 10%포인트 이상 낮았다. 소득이 100만엔~1500만엔인 사람의 평균 세율(15.5%)과 비슷했다.



기시다 총리는 작년 취임 초기 "금융소득과세를 개선해 '1억엔의 벽'을 타파하겠다"고 밝혔다. 발언 직후 주가가 폭락하면서 '기시다 쇼크'라는 불명예를 얻자 "당분간 금융소득세 개선은 검토하지 않는다"고 물러섰다.

이로부터 1년 만에 소득이 30억엔이 넘는 초부유층을 대상으로 범위를 좁혀 세금을 더 떼기로 했다. 200~300명 정도가 적용대상이 될 전망이다.

일본은 상속세와 증여세 최고 세율이 55%로 매우 높은 나라다. 덕분에 주요국 가운데 빈부격차가 가장 덜하다. 그런 일본이 부의 이전과 부의 회춘에 이처럼 공을 들이는 건 멈춰버린 성장 엔진을 어떻게든 다시 돌리기 위해서다.

파이의 크기는 커지지 않았는데 나눌 몫을 두 배로 늘리기 위한 대책이기도 하다. 경제가 이미 성숙화 단계에 접어들었고, 고령화가 일본 못지 않은 수준으로 진행된 한국도 머지 않아 고민할 문제라는 지적이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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