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호모 프로스펙투스와 빗나간 예측

입력 2022-12-29 17:38   수정 2022-12-30 00:11

1999년 12월 31일. 미국 뉴욕 맨해튼 타임스스퀘어에서 새해를 맞았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신년 행사로 꼽히는 ‘볼 드롭’ 행사를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오후 2시부터 줄을 섰다. 경계를 나눈 구역마다 경찰이 지키고 있었다. 자리를 이탈하면 다시 돌아오지 못했기에 한 자리에 10시간 가까이 서 있었다. 춥고 배고팠다. 행사장인 길거리로 피자를 배달해 먹는 이들도 있었다. 진풍경이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10, 9, 8, 7…3, 2, 1…해피 뉴 이어! 순식간에 반짝이는 볼이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하늘에선 무지개색 색종이들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21세기가 열리는 순간이었다.
전쟁이 무너뜨린 낙관론
이틀 뒤면 2023년 새해다. 공전하는 지구를 공유하는 생물체 가운데 오직 인간만이 새해를 선포한다. 시간을 측정하고, 미래를 생각한다. 마틴 셀리그만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심리학과 교수는 ‘전망하는 인간’이라는 뜻의 ‘호모 프로스펙투스(Homo Prospectus)’로 인간을 재정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혜로운 인간’이란 뜻의 ‘호모 사피엔스’만으로는 인간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인간을 지혜로운 존재로 만드는 본질적인 능력은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라고 했다.

하지만 올해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전망의 허망함을 느꼈다. 시계를 작년 이맘때로 돌려보자. 2년여간 팬데믹이 끝나고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인플레이션은 점차 잦아들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선진국 물가가 10% 안팎으로 뛰고, 미 중앙은행(Fed)이 네 차례 연속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밟을 것이라고 누가 예상했을까. 블라디미르 푸틴이 21세기의 유럽에서 20세기식 침략 전쟁을 일으키리라고, 참혹한 전쟁이 1년 가까이 이어지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내년 잿빛 전망은 틀리기를
전쟁은 모든 낙관적인 전망을 무너뜨렸다.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일 것”이라던 제롬 파월 Fed 의장부터 “증시가 완만한 상승세를 보일 것”이라던 뉴욕 월가(街)의 전망까지 모두 빗나갔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팩트셋에 따르면 월가 전략가들이 작년 이맘때 예측한 올해 연말 S&P500 평균값은 5264.51이다. 그러나 28일 종가 기준으로 S&P500은 3783.22에 머물러 있다. 격차가 39.1%에 이른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덮친 2008년 이후 14년 만에 가장 큰 수준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내년 증시 전망은 잊으라(Forget stock predictions for next year)’는 자조 섞인 제목의 칼럼을 싣기도 했다.

새해를 앞두고 내년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전망은 잿빛이다. 이코노미스트는 “퍼머크라이시스(perma-crisis·영구적 위기) 시대가 오고 있다”고 했다. 퍼머크라이시스는 ‘permanent(영구적인)’와 ‘crisis(위기)’를 합친 단어다. 불안정과 불안이 장기간에 걸쳐 지속된다는 뜻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과 경기침체, 미국 중국 러시아의 패권 경쟁으로 인한 정치 불안이 복잡하게 맞물려 위기가 계속될 것이란 경고다. 내년만큼은 허망해도 괜찮다. 잿빛 예측이 빗나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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