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불나방처럼 돌격한 나치군…'히틀러의 비밀무기'는 마약이었다"

입력 2022-12-30 18:00   수정 2023-01-13 00:31


1939년 9월 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이틀 뒤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에 전쟁을 선포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시작이었다. 히틀러는 당황했다. 1년 전 독일이 체코슬로바키아를 병합할 때처럼 서방이 말로만 겁주고 실질적인 대응은 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연합군은 장비나 전력 면에서 독일군을 앞섰다. 대포는 독일군이 7378문, 연합군은 1만4000문이었다. 전차와 전투기도 연합군이 더 많았다. 독일군이 앞선 것은 300만 명에 이르는 병력뿐이었다. 연합군은 100만 명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독일군이 전광석화 같은 전격전으로 열세를 뒤집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 숨겨진 비결이 하나 더 있다고 주장하는 책이 있다. 독일 기자 출신의 논픽션 작가이자 소설가 노르만 올러가 쓴 <마약 중독과 전쟁의 시대>다. 그는 전쟁 초기 독일군의 놀라운 저력은 ‘마약의 힘’에서 나왔다고 주장한다. 그가 5년 동안 독일과 미국의 기록보관소를 뒤지면서 쓴 이 책은 2015년 독일에서 출간됐고, 이듬해 영어로도 번역돼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1940년 5월 프랑스 침공을 앞두고 서부 전선의 독일 병사들에게 ‘페르비틴’이란 상표명이 붙은 약이 지급됐다. 일종의 각성제로 소개됐다. 당시 기록은 “페르비틴을 복용하면 즉각 특별한 피로감 없이 36~40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일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복용량은 하루 한 알로 정해졌고, 야간에는 예방 차원에서 짧은 간격으로 두 알을 먹으라고 지침이 내려왔다. 하지만 페르비틴의 정체는 메스암페타민, 미국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에 등장하기도 한 중독성이 강한 마약이다.

5월 11일 아침에 첫 전투가 있었다. 벨기에 수비군은 작은 국경 마을 마르텔랑주 근처의 언덕 벙커에 진을 쳤다. 앞에는 탁 트인 경사면이 수백m 펼쳐져 있었다.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방법은 정면 공격밖에 없었지만, 그건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약에 취한 독일 보병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불나방처럼 죽음을 향해 뛰어들었다. 무작정 돌격해오는 독일군에 벨기에 군인들을 겁을 먹었고, 후퇴하기로 했다. 여세를 몰아 독일군은 프랑스로 진격했다. 한 달여 만인 6월 14일 파리에 입성했고, 6월 말에는 프랑스 전 지역을 장악했다.

책은 전쟁 전부터 독일에 마약이 만연했다고 전한다. 영국과 프랑스는 해외 식민지를 통해 커피와 차 등 각성 효과가 있는 천연 자극제를 조달할 수 있었지만, 1차 세계대전 후 모든 식민지를 잃은 독일은 그럴 수 없었다. 전쟁 패배로 인한 상실감, 우울을 겪는 독일인들은 마약을 찾았다. 화학산업이 발달한 독일은 이를 스스로 만들어 조달할 수 있는 능력도 있었다. 1937년 페르비틴이 개발되고 나서는 베를린의 광고탑, 전철, 옴니버스, 도시 철도, 지하철 곳곳에 페르비틴 광고 포스터가 붙을 정도였다. 물론 마약이란 말은 없었다. 대신 순환기 장애, 무기력, 우울증 같은 증상을 완화해준다고 선전했다.

1944년 장기간 페르비틴에 노출되면서 여러 부작용이 나타났지만 독일군은 더 강한 마약으로 이를 극복하려고 했다. 그중 하나는 ‘D-IX’였다. 옥시코돈 5㎎, 코카인 5㎎, 메스암페타민 3㎎을 섞은 물질이다. 효과를 검증하기 위해 강제수용소 수감자들을 이용했다. 여러 용량의 마약을 먹인 채 밤낮없이 걷게 하는 비인간적인 실험을 자행했다.

책은 무척 흥미롭다. 소설가적 역량을 동원해 저자는 마약에 찌든 독일군과 히틀러의 모습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냈다. 하지만 놀라움의 연속인 이 책의 내용에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흥미로운 역사가 왜 그동안 대중에겐 잘 알려지지 않았을까. 책의 내용은 얼마나 신빙성이 있을까.

독일과 미국에서 이 책이 출간됐을 때도 비슷한 지적이 있었다. 독일군이 마약을 쓴 것은 맞지만 책은 이를 극적으로 과장했고, 부정확한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예컨대 마약이 전격전 승리에 상당히 기여했다거나, 전쟁 후반 히틀러의 실책이 마약 중독에서 비롯됐다는 서술 등은 명확히 입증되지 않은 저자의 추측에 가깝다고 역사학자들은 말한다.

다소 김이 새는 느낌이지만 아예 없었던 일은 아니다. 엄밀한 역사가 아니라는 점에만 주의한다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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