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재정이 겹악재를 맞고 있다. 세계 최고 속도의 고령화로 재정 구조가 악화하는 가운데 고물가 여파로 지급액도 가파르게 늘게 됐다. 지난해 5%대 고물가가 올해 국민연금 급여액 인상으로 고스란히 이어지면서 연금 고갈 시기가 더 앞당겨질 전망이다. 국민연금 개혁이 시급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연금 재정에 영향을 미치는 물가변동률 등 거시경제 변수는 이전 추계 때보다 악화하고 있다. 국민연금 지급액은 물가에 연동돼 결정된다. 직전 추계 당시 전년도인 2017년의 물가인상률은 1.9%였다. 2016년 1.0%, 2015년 0.7%에 그치면서 연금 지급액은 소폭 증가에 머물렀다.
2021년 물가가 전년 대비 2.0%포인트 뛴 2.5%를 기록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전년의 두 배 이상인 5.1%에 달하면서 올해 연금 지급액도 치솟았다. 지출이 급증한 만큼 곧 이뤄질 5차 재정추계에서는 기금 고갈 시점이 더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연금 수급자가 600만 명을 넘어가는 상황에서 수급액 증가는 재정 안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월급에서 떼는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올해도 월소득의 9%(사업자 4.5%, 직장가입자 4.5%)로 1998년 이후 25년째 동결 상태다. 1988년 3%이던 보험료율은 1993년 6%, 1998년 9%로 오른 이후 지금까지 그대로다. 1997년 국민연금제도개선기획단이 보험료율을 12.65%까지 올리라고 권고했지만 당시 정부는 동결을 택했다. 2006년엔 정부가 보험료율을 12.9%로 인상하는 방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여야가 폐기하기도 했다. 이후 연금개혁은 지지부진하다.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도 1명 미만으로 곤두박질치는 등 거시경제적 변수는 지속적으로 악화하고 있다. 국민연금 운용 수익률도 최근 부진하다. 지난해 수익률은 10월 말 기준 -5.29%로 51조원가량 손실을 본 것으로 집계됐다.
이르면 다음달 나오는 5차 재정추계 결과에 따라 ‘더 오래 내고 늦게 받는’ 정도가 더 커질 수도 있다. 정부는 국회 연금특위 논의 결과 등을 반영해 이르면 상반기에 연금개혁안을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보험료 인상을 미룰수록 미래 세대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연구원에 따르면 보험료율 인상을 2030년으로 미루면 필요한 보험료율은 2040년엔 20.93%가 된다. 100만원을 벌면 20만원을 보험료로 내야 한다는 의미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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