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9000원 시대 막 내려"…지난해 책값 인상 '역대 최다'

입력 2023-01-11 09:45   수정 2023-04-27 13:52


"책이 죽어나가고/서점이 문을 닫았다/내가 잘 아는 작가 한분이/집에 있던 책을 들고 나와/천원짜리 한장을 얹어준다/천원어치만 읽어달란다/정가가 구천원인데"

'9000원짜리 시집'에 대한 서글픈 자화상이다. 2013년 출간된 정희성 시집 <그리운 나무>에 실린 시 '책' 중 일부다. 생애를 갈아넣어 쓴 시집이 1만원도 안 되는 가격에 팔리고, 작가들은 이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현실을 그렸다.

그런데 이 '9000원짜리 시집'은 이제 옛 풍경이 됐다. 원자재 인상 여파로 출판사들이 줄줄이 도서 정가를 올려서다. 시인들의 살림살이는 좀 나아질까.

11일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정가가 변경된 책은 총 7732종이다. 이 중에서 가격을 인상한 건 6222종이다. 2021년 정가를 인상한 책(3480종)의 약 2배다.

지난해 정가 변경 종 수, 인상 종 수 모두 2014년 도서정가제 전면 시행 이후 가장 많은 수준을 기록했다. 최근 1년간 정가를 올린 책이 3000종 안팎이었던 걸 감안하면 이례적인 수치다. 진흥원 측은 “종이값, 잉크 가격 등 원자재 인상 영향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도서정가제는 말 그대로 책에 정가를 정해두는 제도다. 출판사가 정한 책값을 서점이 10% 넘게 멋대로 할인해 팔지 못하도록 한다. 출판 생태계를 망가뜨리는 출혈 경쟁을 막기 위해서다. 다만, 출간 이후 12개월이 지난 책에 대해서는 출판사들이 정가를 낮추거나 높일 수 있다. 이 경우 진흥원에 반드시 변경 사실을 등록해야 한다.

출판사들이 12개월만 지나면 곧바로 정가를 올리는 건 아니다. 오히려 과거 정가를 변경하는 사례 중 4분의 1가량은 가격을 내렸다. 유튜브 등에 밀려 책 읽는 사람이 귀해지다 보니 출판사들이 섣불리 책값을 올리지 못했던 것이다.

최근 도서 정가 인상이 줄을 이었다는 건 그만큼 원자재 부담이 감당할 수준을 넘어섰다는 의미다. 종이 원료로 쓰이는 펄프 가격은 역대 최고가를 경신 중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미국 남부산 혼합활엽수펄프 가격은 2021년 12월에는 월 평균 t당 655달러 수준이었지만 지난해 12월에는 1030달러로 치솟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9000원짜리 시집'도 옛말이 됐다. ‘창비시선’ 시리즈의 정가는 1권당 9000원이었으나 지난해 4월부터 1만~1만1000원으로 인상했다. ‘문학과지성사 시인선’도 비슷한 시기 정가를 1권당 9000원에서 1만2000원으로 올렸다. 민음사 ‘민음의 시’는 기존에 1권당 1만원으로, 도서정가제가 허용하는 할인율 10%를 적용하면 9000원이었으나 지난해 6월부터 정가를 1권당 1만2000원으로 조정했다.

책값이 오르면 작가가 받는 원고료도 오를까. 정가의 일정 비율을 인세로 줄 경우에는 그렇다. 다만 통상 인세는 정가의 10% 안팎으로 책값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 한 출판계 관계자는 "최근 출판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정가를 올리는 상황"이라며 "종이값 등 원자재 부담이 잦아들고 출판 시장의 숨통이 트여야 작가들을 위한 처우 개선도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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