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금융,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질까 [한경 코알라]

입력 2023-01-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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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키디데스의 함정
제라드 버틀러 주연의 인기 영화 ‘300(2006)’과 그 후속작인 ‘300: 제국의 부활(2014)’의 배경은 페르시아 전쟁이 발발했던 고대 그리스 시대다. 페르시아 전쟁은 BC 490년부터 BC 449년까지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페르시아에 맞서 치른 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아테네는 군사적, 문화적 급성장을 일궈냈으며 고대 그리스의 황금시대를 열었다.

두 영화는 페르시아군과 그리스 연합군 사이에 테르모필레 지역과 살라미스 해협에서 벌어졌던 전투가 주요 배경이다. ‘300’에서는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의 정예군 300명과 그리스 연합군이 테르모필레의 협곡을 봉쇄하고 페르시아군의 진격을 지연시키는 내용이 주요 스토리다. 이어서 ‘300: 제국의 부활’에서는 스파르타 덕분에 준비할 시간을 번 아테네의 테미스토클레스가 이끄는 해군이 살라미스 해협에서 페르시아군을 물리치고 전쟁에서 승리하는 내용이 다뤄진다. 둘 다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스토리다.

페르시아 전쟁을 승리로 이끈 아테네는 이후 최고의 번영기를 맞는다. 페리클레스 시대를 맞이해 민주정치의 황금기를 주도하고 그리스 학문과 예술, 문화의 중심지가 된다. 그리스 문화와 역사의 상징인 파르테논 신전도 건축된다. 그러나 페르시아 전쟁의 수혜를 받지 못한 기존의 맹주 스파르타가 급부상하는 아테네에 불만을 품고 양 진영 사이에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발발한다.

30년간 계속된 전쟁은 결국 아테네의 패배로 끝나고 그리스 세계는 분열되고 몰락의 길을 걷는다. 외세인 페르시아 대제국에 맞서 승리했던 그리스 공동체가 내부 권력 다툼과 전쟁으로 멸망했다는 사실은 씁쓸함을 남긴다.

스파르타와 아테네는 왜 전쟁을 해야만 했을까. 기원전 5세기 아테네의 학자였던 투키디데스는 당시 아테네와 스파르타 진영 간 발생했던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시작과 전개 과정을 기술하면서, 전쟁의 필연적 원인을 “아테네의 부상(rise)과 이에 대한 스파르타의 두려움(fear)”으로 규정하였다.

저서 ‘결정의 본질(Essence of Decision)’로 유명한 미국의 국제정치학자 그레이엄 앨리슨은 2012년 8월 22일 파이낸셜타임즈지에 기고한 사설에서 “투키디데스 함정”이란 용어를 썼다.

앨리슨은 “투키디데스의 함정 프로젝트(Thucydides’s Trap Project)”로 명명된 연구를 통해 15세기 이후 신흥세력이 지배 세력에 도전했던 사례가 16개이며, 이 중 12개가 전쟁으로 연결되었다고 주장했다. 앨리슨이 밝혀낸 전쟁의 원인은 2500여 년 전 투키디데스가 결론지었던 바와 동일하다. 기존 지배 세력이 느끼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신흥세력의 자신감과 자부심에 찬 행동들과 충돌했기 때문이다.
전통 금융과 신흥 세력의 충돌
오늘날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한일간의 충돌, 미중간의 갈등처럼 국가간의 대립관계를 설명할 때 자주 사용된다. 헌데 국가간의 대립 외에도 이 표현이 잘 들어맞는 분야가 하나 있다. 바로 금융 산업이다.

전통 금융과 디지털 금융의 헤게모니 싸움은 이미 시작된지 오래다. 전통 금융을 가장 밑단에서부터 설명하면 그 근본에는 역시 중앙은행이 관장하는 화폐발행 및 유통 시스템이 있다. 각 국가의 중앙은행에 의해 발행되는 법정화폐는 시중은행을 통해 대출의 형태로 사용자들에게 전해진다. 만약 해외에서 미국 달러화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 달러화는 국채 매매나 시중은행들 간의 환거래를 통해 해외로 수출된다.

지금은 미국 달러화가 명실상부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는 시기다. 현재 국제무역에서 미국 달러화가 결제 수단으로 사용되는 비율은 80%가 넘는다. 달러화는 전 세계 어디서나 가장 안전한 자산이자 최후의 보루로 인정받는다. 미국 정부가 가치를 보증하는 그린백(Greenback)은 채무불이행의 위험이 없는 자산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달러화 패권을 등에 업고 성공가도를 달린 사람들이 바로 은행가들이다. 대형 은행들 사이에는 경쟁이 별로 없다. 현재 금융통화 시스템 안에서는 알아서 달러화에 대한 수요가 끊임없이 발생하기 때문에 굳이 서비스 혁신을 일으키지 않아도 된다. 돈의 수도꼭지 아래서 자신의 몫을 늘리는 방법을 찾으면서도 새로운 부를 창출하지는 않는 지대추구 행위가 만연한 이유다. 만약 방만한 경영으로 문제가 발생하면 자신들의 실패가 사회 전반에 끼칠 문제를 부각시키며 스스로 감당해야 할 손실을 사회에 전가하는 행태도 벌인다.

2022년 4월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비트코인 2022 컨퍼런스’에는 페이팔 공동창업자인 피터 틸이 기조 연설자로 등장했다. 그는 "비트코인을 가로막는 적들 중 1순위는 오마하 출신 소시오패스 할아버지"라며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을 비판했으며, 제이미 다이먼 JP모간 최고경영자(CEO), 래리 핑크 블랙록 CEO를 "금융권에서 장로처럼 권위적으로 정치"하는 구성원이라며 비판했다.

참고로 버핏은 2018년 비트코인을 "쥐약(Rat poison)"이라고 표현하면서 줄곧 비트코인의 존재가치를 격렬히 부정해온 인물이다. 제이미 다이먼 CEO도 비트코인을 "폰지사기와 다를게 없으며 가치없다"고 표현했고, 래리 핑크 CEO도 비트코인을 "자금 세탁의 지표"라고 말하기도 했다.

피터 틸이 이들을 비난한 이유는 무엇일까. 최악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면서 개혁과 혁신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JP모간은 2008년 이자 상환 능력이 없는 사람들, 즉 서브프라임 등급에게까지 부동산 담보대출을 마구잡이로 해줘서 거대한 거품경제를 양산하고, 결국 부동산 시장이 무너져 도산할 위험에 처하자 정부에게 대규모 구제금융을 받은 당사자다. 대형 은행이 망하면 그곳에 예금을 넣은 사람들에까지 피해가 확대되니 중앙은행이 나서서 살려준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 다음이다. 대공황 이후 발생한 최악의 금융위기에 책임을 지고 감옥에 간 사람은 당시 크레딧 스위스의 임원이었던 카림 세라겔딘 단 한명 뿐이었고, JP모간을 비롯한 주요 대형 은행들은 잘못을 반성하기는 커녕 경영진에 예년보다 더 많은 보너스를 두둑히 챙겨주며 자기들끼리 보너스 잔치를 벌여 큰 비난을 받았다.

워런 버핏은 자산 기준 미국 4대 대형 은행인 웰스파고에 오랫동안 투자한 것으로 유명하다. 2016년 웰스파고는 직원들이 고객 몰래 ‘유령 계좌’ 수백만개를 만들어 각종 수수료 명목 등으로 고객들의 돈을 빼낸 사실이 알려지면서 엄청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웰스파고 직원들은 고객들이 모르게 고객 명의의 별도 은행 계좌나 신용카드 계좌를 개설한 뒤, 고객들이 기존 계좌에 갖고 있던 돈을 이 유령 계좌로 일부 옮겼다. 직원들은 이 과정에서 가짜 이메일 주소를 개설하거나 가짜 비밀번호를 만들고, 때론 고객 몰래 고객 명의의 체크카드를 만들기도 했다.
떠오르는 해 비트코인
비트코인으로 대변되는 디지털 금융은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IT 혁신을 통해 탈물질화, 탈지역화된 개인대 개인(P2P) 금융 시스템을 말한다. 탈물질화는 기본적으로 특정 기관이 중앙에서 관리하는 시스템에서 탈중앙화된 P2P 시스템으로의 전환이다. 탈지역화는 국가별로 각기 다르게 정립된 금융규제 및 각종 제약에서 벗어난 범 지구적 단일 네트워크를 말한다.

생각해보면 전통 금융의 강자들이 왜 비트코인에 경기를 일으키는지 이해가 간다. 스파르타가 급부상하는 아테네에 대해 느꼈던 두려움(fear)을 이들도 똑같이 느끼는 것이다. 사실 금융은 이미 상당부분 디지털화한 상태다. 우리 일상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계좌를 관리하고 비대면 결제를 하면서 점점 더 현금이 필요 없는 상황에 익숙하지 않은가. 그러나 비트코인이 제시하는 디지털 금융은 이정도 얕은 단계의 디지털화가 아닌 완전히 새로운 것을 의미한다. 계층 화폐의 가장 정점에 있는 중앙은행의 신용과 발권력이 새로운 무언가로 교체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 아래에서 낙수효과를 누리던 대형 은행들의 헤게모니도 자연스럽게 퇴색하게 된다.

과연 은행없이 금융 거래가 가능할까? 은행은 이미 우리의 일상생활에 너무나 깊숙히 들어와 있어서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친구에게 돈을 보낼 때,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계산을 할 때, 직장에서 월급을 받을 때 모두 우리는 은행을 통해 돈을 주고받는다. 사람들이 각기 다른 은행을 쓰더라도 매끄럽게 돈이 왔다갔다 할 수 있는 것은 은행들끼리 쓰는 표준 네트워크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은행들끼리 쓰는것은 ‘한은 금융망 네트워크’라 부르며 각 나라별로 중앙은행과 시중은행 간 자유로운 거래가 가능하도록 별도 네트워크를 구축해놓고 있다. 참고로 한은 금융망을 통해 하루에 처리되는 결제 건수는 1만5000건 정도다.

국가간 송금의 경우 은행들은 SWIFT라는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다. SWIFT는 ‘Society for Worldwide Interbank Financial Telecommunication’의 약자로, 쉽게 말하면 각국의 중앙은행과 시중은행들이 서로 소통하기 위해 쓰는 카카오톡이나 지메일같은 통합 메신저라고 생각하면 된다. 각국의 은행들은 매일 4200만 건이 넘는 주문을 SWIFT를 통해 처리하고 있다.

비트코인 네트워크는 국가마다 별도로 존재하는 은행망이나 국제 송금에 필요한 SWIFT 네트워크를 사실상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다. 이 위에서 움직이는 돈은 은행이 따로 ‘처리’해주지 않아도 전 세계 어디에 있는 누구에게든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네트워크는 현재 일평균 30만 건의 거래를 처리하고 있다. 아직 SWIFT가 처리하는 일 거래 건수의 0.7% 정도에 불과한 수준이지만, 한은 금융망 결제 건수에 비하면 이미 20배가 넘는 규모다.

비트코인 네트워크에는 계층 화폐의 최정점에 비트코인이라는 자산이 있다. 중앙은행의 신용과 지급보증 능력이 최정점에 있는 전통 금융 네트워크와 다른 점이다. 아직 전 세계 어디에서나 최후의 안전자산으로 취급받는 미국 달러화가 지닌 파워에는 미치지 못해도, 자산으로서 비트코인은 이미 여러 개도국들의 법정화폐를 무릎 꿇렸다. 무리한 통화확장으로 자국 화폐가치를 한없이 떨어뜨려 국민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 몇몇 중앙은행보다 훨씬 더 나은 안전자산으로 자리매김했다. 불과 14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말이다.

앞으로도 미국 달러화가 대표하는 전통 금융과 비트코인이 대표하는 디지털 금융은 계속해서 마찰을 빚을 것이다. 그리스의 맹주 자리를 놓고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자존심 싸움을 벌였던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30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금융의 왕좌 자리를 놓고 달러와 은행, 그리고 비트코인과 테크 엘리트가 벌이는 전쟁은 과연 얼마나 이어질까. 그리고 종국에는 누가 이기게 될까. 지난 역사에서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져 전쟁의 소용돌이로 빨려들어갔던 국가들처럼 전통 금융의 앞날이 그리 밝아보이지만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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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크립토 투자 앱 샌드뱅크(Sandbank)의 공동 창업자 겸 COO이자 "웹3.0 사용설명서"의 저자이다. 가상자산의 주류 금융시장 편입을 믿고 다양한 가상자산 투자상품을 만들어 투자자에게 제공하는 샌드뱅크를 만들었다. 국내에 올바르고 성숙한 가상자산 투자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각종 매스컴에 출연하여 지식을 전파하고 있다.
▶이 글은 암호화폐 투자 뉴스레터 구독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기 위해 소개한 외부 필진 칼럼이며 한국경제신문의 입장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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