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동안 온라인 공간 한편에선 우리말 공방이 벌어졌다. 토박이말 ‘설’이 본의 아니게 오해를 샀고 그로 인해 상처받았다. “영국박물관이 트위터에 ‘Korean Lunar New Year(한국 음력설)’이라는 표현을 썼다가 중국 네티즌이 발끈하자 ‘Chinese New Year(중국설)’이라고 바꿨습니다.” 한 방송에서 전한 이 대목은 이번 사태가 얼마나 왜곡돼 있는지 잘 보여준다. 아이돌 그룹 뉴진스의 멤버 한 명도 구설에 올랐고, 이 과정에서 ‘중국설, 한국설, 음력설, 양력설’ 같은 말이 새삼 논란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우리가 명절로 쇠는 날, 즉 ‘설’이라고 부르는 날은 음력 1월 1일(이날을 ‘정월 초하루’라고도 한다) 하나뿐이다. 양력 1월 1일을 ‘설’이라고 하지 않는다. 설 자체가 음력을 기준으로 한 말이니 당연히 ‘음력설’은 군더더기에 지나지 않는다. ‘양력설’ 또한 적절치 않다. 양력 1월 1일은 한 해를 시작하는 ‘새해 첫날’일 뿐 ‘설’이라고 부르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설’ ‘오래된 설’로 구별하던 ‘신정’ ‘구정’도 이젠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 됐다. 모두 이중과세를 하던 시절 생겨난, 흘러간 말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은 ‘새해 첫날’(양력 1월 1일)과 ‘설’(음력 1월 1일)이 자리잡았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런 점에서 일각에서 설날을 습관적으로 ‘구정’이라 하는 것은 빨리 버려야 한다. 그만큼 몸에 익은 언어 습관은 오래간다. 지난 시절의 용어와 풀이를 올려놓고 있는 국어사전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존재 의미가 바랜 양력설·음력설, 신정·구정 같은 말은 풀이라도 바꿔야 하지 않을까. 영국박물관 사태는 우리가 스스로 빌미를 제공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설날이든 춘제든 의역하면 둘 다 ‘Lunar New Year’다. 이걸 한국 관점에서 말하면 ‘Korean Lunar New Year’이고, 중국인은 ‘Chinese Lunar New Year’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한국 언론에서 보도하듯 중국설, 한국설로 옮길 말이 아니다. 음력 1월 1일은 한국에선 ‘설날’이고 중국에선 ‘춘제’일 뿐이다. 언론에서 중국설, 한국설로 구별하니 이른바 ‘원조’를 찾게 되고 네것 내것을 따지는 빌미가 된 셈이다.
우리 명절 설날은 그냥 ‘설날’이라고 말하자. 영어로 적으면 ‘Seollal’이고, 굳이 의역하면 ‘Lunar New Year’다. 정리하면 ‘Seollal(설날)=Korean Lunar New Year’ ‘Chunjie(春節)=Chinese Lunar New Year’, 이렇게 구별된다.
참고로 ‘설날’을 영어로 적을 때 ‘Seollal(설랄)’이 되는 까닭은 국어의 유음화 현상 때문이다. 이는 ‘ㄹ’의 앞이나 뒤에서 ‘ㄴ’이 ‘ㄹ’에 동화돼 [ㄹ]로 발음되는 것을 말한다. 신라[실라] 대관령[대괄령] 한라산[할라산] 줄넘기[줄럼기] 물난리[물랄리] 같은 게 그런 예다. 표준발음법 제20항 규정으로, 자음동화 현상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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