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새우빵·부지깽이라떼·호박에일…울릉도가 젊어졌다

입력 2023-02-02 17:25   수정 2023-02-09 19:20


울릉도엔 고릴라가 산다. 수직 암벽의 귀퉁이가 뾰족하게 솟아 있어 ‘송곳산’으로 부르는 추산(錐山) 이야기다. 봉우리는 머리, 기슭은 엉덩이 형상으로 중턱의 손모양까지 더하면 영락없이 커다란 고릴라가 바나나를 먹는 모습이다.

수만 년간 자리를 지켰던 검은 고릴라 앞에 6년 전 새하얀 우주선들이 내려앉았다. 희고 매끈한 건물 두 채는 하늘에서 보면 흰 꽃봉오리 같기도, 땅에서 보면 경건한 종교 건축물 같기도 하다. 김찬중 건축가가 코오롱그룹의 의뢰를 받아 완성한 코스모스 리조트는 단숨에 울릉도를 세계적 여행 명소로 바꿔놨다. 글로벌 건축 잡지와 평론가들로부터 아름다움을 인정받았고, 소셜미디어에선 사진이 수없이 올라왔다.


울릉도 여행을 결심한 사람들 중엔 오로지 코스모스 리조트 건축물을 보기 위해 왔다는 이도 많다. 콘크리트로 지었다고는 믿기지 않는 곡선의 외형, 원시의 자연 환경을 어디서든 감상할 수 있는 내부 구조를 간직하고 있다. 건축가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이 포물선을 그리며 자연스럽게 내려앉은 모습을 그려내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수만 년의 신비를 간직한 섬에 건축 역시 또 하나의 자연으로 어우러지기를 바랐다고 했다.
울릉도의 불가피한 매력…불확실성
코스모스 리조트는 하룻밤 묵는 비용이 1000만원대에 이르는 초럭셔리 리조트로 이름이 나있다. 하지만 특급 풀빌라인 ‘빌라 코스모스’(독채 4실) 이야기다. 일반 숙소 ‘빌라 테레’(8실)의 가격은 1박에 40만~50만원대다. 코스모스 리조트의 ‘불가피한’ 매력은 불확실성이다. 객실 수가 많지 않아 예약이 쉽지 않을뿐더러 예약했더라도 바닷길이 열리지 않아 낭패를 보는 상황도 많다.

아무도 도전하지 않던 섬에,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건축가의 철학은 지난 몇 년간 콘텐츠로도 이어지고 있다. 6년간 이 리조트는 현지 특산물인 오징어와 호박을 테마로 한 수제맥주, 명이나물과 섬쑥부지깽이를 활용한 파스타, 호박 아이스크림 등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메뉴들을 부지런히 연구했다.

송곳산에서 영감 받은 울릉도 고릴라 캐릭터 ‘울라’를 만들어 각종 굿즈를 제작하고, 아웃도어 미션 게임 ‘울릉도 시그널’을 개발해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여행자들에게 다가갔다.

관광객이 많지 않던 울릉도에 리조트 하나로 방문객이 크게 늘면서 라마다호텔 등도 최근 울릉도에 호텔을 짓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젊은 관광객 유입이 늘면서 울릉도민도 변화의 물살에 합류하고 있다.
그 섬엔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산다
요즘 울릉도는 젊어졌다. 울릉도는 섬 전체가 해수면에서 우뚝 치솟아 있는 덕분에 해안 인근의 동네 대부분이 환상적인 오션뷰를 자랑한다. 젊은 기획자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공간은 별로 없을 것.


저동항에서 7년째 카페를 운영하는 박경석 저동커피 대표(36)는 직원들과 같이 울릉도의 풍경과 이미지를 사진으로 찍는다. 울릉도 캐릭터가 담긴 굿즈와 아트 상품을 직접 개발하고, 수준 높은 커피를 함께 내놓는다.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각종 보드게임도 구비해놨다.

울릉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로컬 맥주’도 오는 4월부터 문을 연다. ‘울릉브루어리’를 만든 정성훈 대표(37)는 서울에서 거주하다 할머니가 살고 계신 울릉도로 돌아와 양조업에 뛰어들었다. 정 대표는 “맥주의 맛은 물이 좌우하는데 화산섬의 정화 기능과 청정 자연이 만난 고향이 맥주에 최적화된 곳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울릉도에서 맛볼 수 있는 먹거리들은 지역색이 강하다. 어렵게 섬을 찾은 사람들에게 잊을 수 없는 울릉도만의 맛을 알리고 싶다는 생각, 오랜 세월 자급자족의 생활을 해왔던 울릉도민의 DNA가 만난 때문일까. 울릉크루즈의 항구인 사동항 터미널의 카페 ‘미당’엔 울릉도산 홍감자로 만든 ‘홍감자빵’(사진)이 인기다.

‘카페 래우’는 울릉도 우산고로쇠물로 만든 ‘고로쇠에이드’, 섬쑥부지깽이 가루로 만든 ‘부지깽이 라테’, 쌉싸름한 전호나물을 넣은 ‘래우 그린와플’ 등을 직접 개발해 판매한다. 카페 매니저인 김세민 씨(27)는 인스타그램에 ‘댄스 쇼트폼’을 올리면서 울릉도의 유명 인물이 되기도 했다. 그는 “대학 때 댄스 동아리에서 활동했고 지금도 취미로 춤을 즐기고 있는데, 부모님이 운영하는 카페 래우가 항구 반대편 외진 곳에 있어 도움을 주고 싶어 만들었다”며 “눈 내리는 날, 날씨 맑은 날 등 재밌게 제작한 영상을 보고 찾아오는 사람이 많이 늘었다”고 했다.
사시사철 매력 만점
섬을 떠났던 ‘울릉도 키즈’들이 30~40대가 되어 섬으로 돌아오는 건 그들의 부모, 부모의 부모 세대를 보며 울릉도가 가진 자원이 얼마나 큰 가치를 지녔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울릉도엔 우리가 잘 모르는 지역 특산물이 많다. 육지에 있는 것들도 울릉도에서 자라면 조금씩 다른 맛과 향, 모양을 지닌다. 육지에서 자란 엉겅퀴는 가시가 많아 먹을 수 없지만, 울릉도에서 자란 엉겅퀴는 가시가 없고 부드러워 ‘엉겅퀴국’으로도 끓여 먹는 식이다.

울릉도에선 어쩐 일인지 식물이 정말 잘 자란다. 그래서 축복받은 섬이라고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전국에서 가장 공기가 맑고, 물이 깨끗한 울릉도. 봄의 울릉도엔 나물 향이 지천이다. 섬쑥부지깽이, 섬명이나물, 섬취나물, 섬전호나물 등이 경사진 땅을 비집고 올라온다. 봄나물 생산자인 김두순 씨는 “나리분지에서 4대째 살아온 남편을 따라 섬으로 시집온 지 30여 년째”라며 “농사는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자연이 도와주지 않으면 절대 불가능하다. 울릉도에서 자연의 힘으로 나도 함께 성장했다”고 했다.

여름엔 오징어가 제철이다. 밤에 잡아 아침에 들어오면 곧바로 내장을 빼고 말린다. 밤마다 동해에서 출발한 오징어 배들이 밤바다에 떠오르면 꽃이 피는 모양과 비슷해 ‘야화(夜花)’라고도 부른다. 울릉도 곳곳에 자생하는 대나무과의 조릿대는 오징어를 꿰어 말릴 때 요긴하게 쓰인다.

가을엔 부드럽고 연한 더덕이, 겨울엔 2월부터 채취하는 토종 ‘우산고로쇠물’이 있는데 더덕과 고로쇠물에 사포닌 성분이 많아 인삼향이 나는 게 특징이다. 울릉도민은 그래서 입버릇처럼 이런 얘길 한다. “눈 녹을 때부터 눈 내릴 때까지 우린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들이야, 이 얼마나 감사한 섬인지.”

울릉도=김보라/이선아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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