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가 막힐 노릇"…미술계 금기 깨버린 괴짜 화가, 전설이 됐다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입력 2023-02-11 09:35   수정 2023-04-27 16:29


“미친 거 아냐? 당신은 상도덕도 없어?”

1564년 베네치아의 자선단체 ‘산 로코’의 건물. 이곳에 모인 당대 최고의 화가들이 일제히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그도 그럴만했습니다. 원래대로였다면 이날은 건물 천장에 그림을 그릴 작가를 뽑는 날. 화가들은 각자 스케치한 작품을 보여주며 작품 구상을 발표하고, 자선단체는 그중 하나를 골라 일감을 주기로 돼 있었지요. 쉽게 비유하면, 화가들이 신사업을 따내기 위해 설계도를 갖고 ‘경쟁 프레젠테이션(PT)’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경쟁 PT를 하러 와보니 기가 막힐 일이 벌어져 있었습니다. 어떤 정신 나간 작자가 아예 완성본을 만들어 와서 몰래 천장에 달아놓은 겁니다. 그리고 그 작자가 하는 말. “이미 설치까지 했으니까 공짜로 드릴게요. 다른 분들은 이제 집에 가시면 됩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화가들은 “저 그림을 뜯어버리자”고 소리쳤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이 자선단체의 규칙이 ‘누가 기부한 물건은 거절하지 않고 받는다’였기 때문입니다.

이 황당한 일을 벌인 화가의 이름은 틴토레토(1518~1594). ‘꼼수’까지 써가며 일감을 따와 온갖 욕을 자초했으면서, 돈까지 안 받은 건 무슨 심보였을까요? 오늘 ‘그때 그 사람들’에서는 베네치아 화파의 거장이자 당시 미술계의 ‘왕따’였던 틴토레토의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어린 틴토레토, 거장에게 찍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르네상스 미술가’ 하면 우리는 보통 이 사람들을 떠올립니다. 모두 피렌체를 기반으로 활동한 작가들이지요. 하지만 당시 이탈리아 땅에는 이들 못지않은 거장들이 있었으니, 베네치아를 기반으로 활동한 ‘베네치아 화파’였습니다.

16세기 베네치아는 지중해 무역을 지배하는 세계 최고의 부자 나라 중 하나였습니다. 사람과 물건이 오가는 곳엔 돈이 모이고, 돈이 있는 곳에서 예술은 꽃을 피우는 법. 해상 무역으로 쌓아 올린 막대한 부, 지중해의 화사한 풍광, 다양한 문화권과의 교류, 향락적인 분위기 덕분에 당시 베네치아는 그야말로 ‘컬러풀’ 했습니다. 선과 묘사를 중시했던 피렌체 미술과 달리, 베네치아의 거장들이 화려하고 풍부한 색채 표현에 집중한 것도 이런 영향 때문이었지요.

그러니 1518년 베네치아에서 염색공의 아들로 태어난 틴토레토가 색채에 매료된 것도 당연합니다. 다만 옷감에 물을 들였던 아버지와 달리 틴토레토는 그림을 그리는 데 관심이 많았습니다. 도우라는 염색은 안 돕고, 여기저기 그림만 그려대던 틴토레토. “그래, 그러면 제대로 배워 봐라.” 틴토레토가 15세 무렵, 아버지는 그를 당시 최고의 거장 티치아노(1488~1576)의 아틀리에로 보냅니다. 당시 티치아노의 별명은 ‘회화의 군주(왕)’. 베네치아는 물론 전 유럽을 통틀어 최고의 화가로 평가받는 거장이었죠.

하지만 틴토레토는 불과 2주도 안 돼 화실에서 쫓겨납니다. “티치아노가 제자의 재능을 질투했다”, “틴토레토의 성격이 너무 이상했다” 등 해석이 분분합니다만, 여러 정황을 보면 그냥 둘의 궁합이 안 맞았다고 생각하는 게 합리적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10대 소년이 거장에게 위협이 되면 얼마나 위협이 됐겠으며, 잘못하면 또 뭘 얼마나 잘못했겠습니까. 살다 보면 이렇게 궁합이 안 맞는 사람도 있는 법이지요.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싫어하는 인간도 많고요.

하지만 틴토레토에게는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화가가 되는 일반적인 방법은 이렇게 누군가의 화실에 제자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세계 최고 거장에게 찍히고 쫓겨난 틴토레토를 받아줄 화실은 이제 없었습니다. 사실상 시작도 하기 전에 화가 인생을 종친 거나 다름없는 상황입니다. 틴토레토가 파블로 피카소나 안토니 반 다이크처럼 누구에게 그림을 배우거나 연습할 필요가 없는 ‘타고난 천재’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틴토레토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가구를 만드는 장인들과 함께 일하며 그림을 배웠고, 시체를 해부해 가며 그림을 그리는 데 필요한 해부학을 공부했습니다. 빛과 공간 표현을 익히기 위해 밀랍으로 인형을 만들고 빛을 다르게 비추면서 명암을 공부했지요. 공부로 따지면, 선생님도 교과서도 문제집도 없이 수능 기출 문제만 가지고 공부를 한 겁니다. 보통 사람은 못 할 일이지만, 틴토레토는 ‘노력의 천재’였습니다. 덕분에 틴토레토는 뛰어난 그림 실력과 함께 그 누구와도 다른 독창적인 화풍을 얻게 됩니다.
‘근본 없는 마케팅’으로 대성공

그의 작품은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습니다. 작품 속 인물들의 움직임은 다소 과장돼 있고 원근법과 단축법도 독특했지만, 그래서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빛을 비추는 실험을 직접 하며 공부해서 그런지 명암 대비는 다소 불안정한 느낌을 주지만 강렬하고 신비롭습니다. 그래서 장 폴 사르트르는 “최초의 영화감독은 틴토레토”라는 평가를 남겼습니다. 그만큼 그림이 드라마틱하다는 거지요.

문제는 그가 당시 미술계에서 공공연한 ‘왕따’였다는 겁니다. 업계 최고 대가에게 찍혔고, 근본도 없는 틴토레토를 보는 다른 화가들의 시선이 고울 리 없습니다. 티치아노는 30살이나 어린 틴토레토가 뭐가 그리 맘에 안 들었는지 틈만 나면 틴토레토의 욕을 하고 뒤로 손을 써서 일감 수주를 방해했습니다. 틴토레토가 티치아노에 대해 항상 좋은 말만 했던 걸 감안하면 졸렬하지요. “어차피 뭘 해도 욕을 먹는데, 어디 한번 내 맘대로 해보자.” 마침내 틴토레토는 ‘정면 돌파’를 결심하고 혁신적인 마케팅에 나섭니다.

① 공짜 마케팅. 지금도 화가들은 누군가에게 ‘공짜 그림’을 선물하는 걸 금기시합니다. 공짜로 그림을 뿌리기 시작하면 그림 가치가 확 떨어진다는 게 이유입니다. 하지만 틴토레토는 역발상을 했습니다. “일단 공짜로라도 그림을 그려서 유명해져야겠다. 돈을 좀 덜 벌어도, 명성과 영향력을 키우면 나머지는 따라올 거야.” 그래서 틴토레토의 초기 작품 중에선 공짜로 그려주거나 값을 확 깎아준 그림이 많습니다.

그림을 받은 이들은 훌륭한 품질에 감탄했습니다. 그리고 주변에 입소문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아직은 무명 화가지만, 분명히 곧 크게 될 거야.” 자랑할 만큼 잘 그린 작품이기도 하고, 틴토레토가 유명해질수록 그림은 더 비싸질 테니까요. 기사 처음에 언급한, 자선단체 ‘산 로코’ 건물 벽화를 공짜로 그린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습니다. 결국 일은 틴토레토의 뜻대로 돌아갔습니다. 훗날 틴토레토는 산 로코의 벽과 천장 그림을 사실상 독점하게 됩니다. 그가 여기에 그린 그림만 총 70여점에 이릅니다.

② 박리다매. 이처럼 돈을 버는 것보다 영향력을 키우는 데 집중했던 틴토레토. 아틀리에 경영에도 똑같은 철학을 적용합니다. 남들도 ‘공장식 아틀리에’를 운영하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틴토레토는 그 규모를 최대한 키웠습니다. 그리고 이익보다 매출액을 늘리는 데 몰두했지요. 엄청나게 빨리, 많이, 싸게 그린 겁니다. 이렇게 평생 그가 그린 그림 너비가 총 3500㎡에 달한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그래서 “틴토레토는 붓이 아니라 빗자루로 그린다”는 말도 나왔죠.

그래서 틴토레토의 그림 중에서는 다소 마무리가 거칠고 서민적인 그림이 많습니다. 너무 많이 그린 탓에 개중에는 수준이 좀 떨어지는 그림도 있습니다. 하지만 틴토레토의 의도는 적중했습니다. 이름값이 높아지면서 냉담하던 귀족들도 하나둘씩 틴토레토에게 초상화를 맡기기 시작한 거죠.

③ 맞춤형 서비스. 당시 틴토레토의 주요 경쟁자는 30살 많은 거장 티치아노와 10살 어린 젊은 화가 베로네세(1528~1588)였습니다. 둘 다 부드럽고 섬세한 귀족 취향의 그림을 그렸고, 그래서 귀족들의 주문이 쏟아졌지만, 작품 마감이 늦었죠. 틴토레토는 생각합니다. ‘내가 저 일을 좀 해야겠다. 어차피 이 사람들은 내가 뭘 해도 이유 없이 싫어하는데, 뭔 상관이야?’

그렇게 틴토레토는 경쟁자들의 고객을 가로채기 시작합니다. 티치아노·베로네세에게 주문을 넣어 놨지만 한참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접근해 “그들과 비슷한 느낌으로 더 싸게, 빠르게 그려주겠다”고 한 거지요. 고객 입장에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반면 고객을 뺏긴 입장에서는 머리끝까지 열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당시 베네치아 화가들이 모였다 하면 틴토레토를 욕한 것도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입니다.
미술계 왕따에서 위대한 전설로
하지만 틴토레토가 돈 때문에 이런 일을 벌인 건 아닙니다. 사업 규모는 컸지만, 화가 자신은 작업실과 집만 오가며 검소하게 살았습니다. 돈 욕심을 크게 내지도 않았습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두칼레 궁전에 있는 그의 대표작 ‘낙원’ 입니다. 그림 크기가 세로 9.1m, 가로 22.6m에 달하는 대작입니다. 작품에 감탄한 베네치아 당국은 “부르는 대로 값을 주겠다”고 했지만 화가는 “알아서 주면 된다”고 했습니다. 이만큼 중요한 장소에 이만한 대작을 걸었다는 것으로 충분히 만족한 거지요.

틴토레토를 움직인 건 ‘감동을 주는 위대한 화가가 되고 싶다’는 예술가의 열정이었습니다. 서민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화풍도, 과격한 마케팅도 왕따와 배척이라는 현실을 이겨내고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이었습니다. 염색공의 아들을 뜻하는 그의 별명 ‘틴토레토’부터가 그랬습니다. 그의 본명은 야코포 로부스티. 다른 화가들은 본명을 쓰거나 자신에게 귀족적인 별명을 붙이는 데 열중했지만, 틴토레토는 오히려 자신의 서민적인 배경을 더욱 강조했습니다.

그의 개성적이고 현대적인 예술은 엘 그레코와 카라바조, 루벤스 등 훗날 대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고, 오늘날 현대미술에까지 그 흔적을 남겼습니다. 다만 캔버스에 그린 그림보다 벽화를 훨씬 많이 남겼기 때문에, 베네치아를 방문하지 않으면 그의 작품을 직접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벽화를 뜯어올 수가 없으니까요. 베네치아에서 그의 그림으로 가장 유명한 장소는 자선기관 건물 ‘스쿠올라 디 산 로코’(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입니다. 천장에 몰래 공짜 그림을 그려준, 기사 첫 부분에 언급한 바로 그곳입니다.

수백 년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주로 가진 게 없는 이들이었습니다. 당장 오늘 밤 머물 곳이 없는 고아, 남편을 잃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과부, 지참금을 낼 돈이 없어 결혼하지 못하는 소녀들이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불안한 마음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틴토레토가 그린 천국과 성서 속 장면들을 올려다봤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지요. ‘지금 삶이 힘들지만, 착하고 성실하게 살면 언젠가 나도 복을 받을 거야.’

끊임없는 견제와 배척을 견디며 화가가 그토록 열심히 살았던 건 바로 이런 반응을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틴토레토라는 이름은 그렇게 전설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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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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