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행은 왜 '깜짝' 금융완화 축소에 나섰나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입력 2023-02-15 06:55   수정 2023-02-15 06:58

이 기사는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글로벌마켓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일본의 기준금리는 두 가지다. 기준금리를 두 가지로 운영하는 중앙은행은 흔치 않다. 중앙은행의 역할은 물가가 안정적으로 오르도록 통화량을 조절해 경제가 건실하게 성장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시장에 돈을 얼마나 공급할 지를 결정하는 수단이 기준금리다. 대부분의 중앙은행들은 만기가 1년 미만인 단기금리를 올리거나 내리는 방식으로 기준금리를 운영한다. 단기금리를 중앙은행이 결정하면 보다 만기가 긴 국채의 금리는 시장에서 점점 올라가는 형태로 결정된다.

만성 디플레이션(물가 침체)에 신음하는 일본은 이 원리가 통하지 않는다. 물가를 올리려면 시장에 돈을 많이 풀어야 한다. 일본의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은 돈을 많이 푸는 정도가 아니라 쏟아붓기 위해 단기금리를 아예 마이너스로 끌어내렸다. 그랬더니 장기금리도 꺾여 버리고 말았다.



이를 바로 잡기 위해 일본은행이 내놓은 대책이 장단기금리조작(수익률곡선통제·YCC)이다. 국채 수익률 곡선을 바로 세우기 위해 중앙은행이 단기금리 뿐 아니라 장기금리도 중앙은행이 잡아주는 방식이다.

일본의 기준금리가 단기(현재 연 -0.1%)와 장기(현재 연 0±0.5% 정도) 두가지로 구성되는 이유다. 최근 일본 금융시장에서 벌어지는 여러가지 혼란의 원인은 이 장단기금리조작에서 비롯된다. 장단기금리조작의 부작용이 터져나온다는 건 2013년 4월 이후 10년 동안 이어져 온 일본의 통화정책이 중대한 기로에 섰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난 12월20일 일본은행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앞두고 블룸버그통신이 실시한 조사에서 47명의 이코노미스트들은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일본은행이 금융정책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날 일본은행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10년 만에 처음으로 금융완화를 축소했다.

±0.25%였던 장기금리 변동폭 상한을 ±0.50%로 확대했다. 0.25%였던 장기금리가 0.5%로 오르면서 사실상 금리를 인상한 결과를 낳았다. 1월18일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앞두고는 반대로 일본은행이 ±0.5%인 변동폭을 추가로 확대할 것이란 전망이 적지 않았다.



금융시장도 장기금리가 인상될 것임을 기정사실화했다. 1월13일 뉴욕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엔화가치는 127엔대까지 올랐다. 2022년 5월 이래 7개월 만의 최고치였다. 1월13일 이후 일본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4일 연속 일본은행의 상한선인 0.5%를 넘었다.

하지만 일본은행은 시장의 예상과 엇나가기로 작심이라도 한 듯 대규모 금융정책을 모두 유지했다. 일본은행의 예측불가 행보는 글로벌 투기자금을 수싸움에서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지난해 말부터 올 초에 걸쳐 일본에서는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포함한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을 계속할 것"이라는 일본은행과 "일본은행이 조만간 기준금리를 올려서 금융완화 정책을 중단할 것이 확실하다"는 해외 자금의 끝장대결이 벌어지고 있다.



구로다 하루히코 총재는 12월20일 기자회견에서 깜짝 완화 축소를 결정한 이유를 "국채 수익률 곡선의 왜곡을 해소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채권의 금리는 만기가 길수록 높다. 돈을 오래 빌릴 수록 높은 이자를 쳐 주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일본은 세계적으로 드문 장단기금리조작을 7년째 실시하면서 이상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금융정책결정회의 전날인 12월19일 일본 국채의 만기별 수익률(금리) 곡선을 보자. 일본은행이 변동폭 상한을 0.25%로 정한 결과 장기금리의 기준이 되는 10년 만기 국채의 수익률은 0.25%에 묶여 있다.



반면 만기가 10년보다 짧은, 그래서 금리가 0.25%보다 낮아야 정상인 5~9년물의 수익률은 0.25%보다 높았다. 전반적인 국채 수익률이 0.25% 보다 높은 수준에서 형성된 반면 10년물 수익률만 0.25%로 움푹 꺼진 왜곡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일본의 국채 금리가 상승 압력을 받은 건 일본은행의 나홀로 금융완화 정책과 관계가 깊다.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지난해 상반기부터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공격적으로 인상했다. 채권 금리도 따라서 급등했다. 자연스럽게 일본 국채의 수익률도 상승 압력을 받았다.

그런데도 일본은행이 장기금리를 연 0±0.25%로 묶어두자 10년물만 움푹 꺼지는 왜곡 현상이 생겼다. 채권시장의 수익률 곡선이 찌그러지면 지방자치단체와 기업의 자금조달에 문제가 생긴다. 채권시장의 존재 이유가 망가지는 것이다.



가장 활발하게 발행되고 거래되는 10년 만기 채권이 특히 그렇다. 최근 지자체나 기업은 10년 만기 채권을 발행하는게 쉽지 않다. 채권을 발행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금리가 낮을 수록 유리하다. 이자를 조금만 줘도 되기 때문이다.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0.25%니 자사의 신용리스크를 얹어(가산금리) '1.0~1.5% 정도의 금리면 채권을 발행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한다. 채권을 사 주는 투자자의 생각은 다르다. 10년물 국채 수익률이 0.25%인 건 일본은행이 억지로 금리 상한선을 0.25%로 묶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은 "일본은행이 장기금리를 0.25%로 눌러놓지 않았다면 실제 금리는 0.3%를 넘을테니 이를 기준으로 발행금리를 결정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가산금리를 얹어서 수익률을 적어도 2% 이상 보장해 주지 않으면 채권을 사주지 않겠다고 요구하는 것이다.



구로다 총재는 작년 10월28일 금융정책결정회의 직후 기자회견에서 "조만간 금리를 올리거나 출구전략을 실시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단언했다. 그러고선 다음 회의인 12월20일 모두의 예상을 깨고 금리를 사실상 인상했다. 시장이 구로다 총재를 양치기 소년 취급하는 이유다.

일본은행이 장기금리의 상한폭을 추가로 확대하는 것은 물론이고 장단기금리조작 정책을 그만둘 것으로 확신하는 투자자도 적지 않다. 일본은행이 억지로 금리를 눌러놓던 역할을 그만두면 금리가 치솟을 것은 거의 확실하다.



채권 금리와 가격은 반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금리가 치솟으면 가격은 급락한다. 투자자 입장에선 가격이 떨어질 게 뻔한 채권에 투자할 리가 만무하다. 지자체도 기업도 채권을 발행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지난 17일 미쓰이스미토모신탁은행은 50억엔 규모로 발행하려던 10년 만기 은행채 발행을 연기했다. 미즈호은행의 계열 카드회사인 오리엔트코퍼레이션도 2년과 5년 만기 사채 발행을 미뤘다.



2022년 일본 기업의 회사채 발행 규모는 약 12조엔으로 2021년보다 20% 줄었다. 민간에 자금을 더 많이 공급하기 위해 실시한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이 반대로 민간 기업의 자금조달을 방해하고 있다.

구로다 총재가 예상을 깨고 장기금리 변동폭을 확대한 이유로 "국채 수익률 곡선 왜곡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을 내놓은 배경이다. 장기금리의 상한폭을 0.25%에서 0.5%로 늘리면 움푹 꺼진 10년물 수익률이 솟아 오르면서 국채 수익률 곡선이 정상적인 우상향의 모습을 회복할 것이라는 기대였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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