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공원에 솟은 은빛 기둥…"여기 있는 72개국 작품 중 최고 명작"

입력 2023-02-15 17:52   수정 2023-04-29 19:43

“이곳에 설치된 72개국 191명의 조각가 작품 가운데 최고 명작입니다.”

1988년 9월 미국 방송사 NBC는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 세워진 조각상 하나를 카메라에 담으며 이렇게 평가했다. 찬사의 주인공은 한국의 조각가 문신(1923~1995)이 제작한 ‘올림픽 1988’(사진). 당시 정부가 올림픽 개최를 기념해 지구촌 각국의 유명 조각가에게 의뢰한 조각 가운데 하나였다. 국내외 관심이 문신의 작품에만 집중되자 기분이 상한 프랑스 대표 조각가 세자르 발다치니가 개막식에 불참한 사건은 유명하다.

‘올림픽 1988’은 35년째 한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하철 한성백제역 2번 출구 주변의 남4문에서 바로 보인다. 약간씩 어긋나게 겹친 스테인리스 스틸 반구(半球) 55개가 하늘을 향해 힘차게 뻗어 오르는 모습이다. 높이 25m, 무게 54t의 덩치를 자랑한다. 워낙 크고 무거워서 30~40명의 사람이 100일 넘게 작업하며 세웠다고 한다.

문신의 거대한 조각은 어찌하여 그토록 많은 사람에게 칭송을 받았을까. 프랑스 평론가 피에르 레스타이는 “우주와 생명의 음률을 시각화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문신의 작품은 대부분 좌우가 똑같다. 그는 대칭성(시머트리)이야말로 자연과 생명의 근원이라고 생각하고 조각을 통해 표현했다. ‘올림픽 1988’도 그랬다. 두 줄의 기둥이 좌우대칭을 이루며 용처럼 솟구친다. 그 주위를 4분의 1씩 잘려 나간 구 4개가 감싸고 있다. 완벽하게 이뤄진 균형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모를 안정감이 느껴진다. 문신은 작품 속에 ‘남북 화합’의 의미도 담았다. 그는 “올림픽이란 국가적 경사를 맞이해 남북이 화합하면서 통일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리기를 기원한다”고 했다.

‘한국 조각의 자존심’을 톡톡히 세워준 문신의 작품은 하마터면 한국인 이름으로 제작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프랑스 정부가 파리에 머물던 문신에게 끈질기게 귀화를 요청하면서다. 이 소식을 들은 박정희 대통령은 문신과 같은 마산 출신인 청와대 경호실장을 파리로 보내 문신을 데려왔다.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살던 문신은 곧바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문신의 작품은 의외로 쉽게 볼 수 있다. 서울 강남의 대법원과 코엑스, 강북의 충정로 프레이저플레이스 등 곳곳에 설치돼 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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