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제 등을 보지 못 한다 [장석주의 영감과 섬광]

입력 2023-02-21 17:44   수정 2023-04-26 12:17


어렸을 때는 자주 등짝을 얻어맞았다. 세세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잘못을 저질렀던 탓이다. 어머니의 매운 손바닥이 등짝을 내리칠 때 정신이 번쩍 들곤 했다. 내 등짝을 때리던 어머니도, 내 비행을 지켜보던 아버지도 다 세상을 떠나셨다. 부모와 함께한 양명한 날들은 흘러갔다. 생각해보면 등은 애꿎게 천대받는 자리다. 인생살이에서 이별과 생의 고적함을 견디는 등은 마치 빈 마을 같다. 오늘 나는 쓸쓸함과 이야기로 붐비고, 날개를 펼친 계절들이 날아와 죽는 당신의 등을 바라본다.
왜 모든 등은 쓸쓸할까?
사람들은 주로 타인의 앞쪽을 주시하는데, 그것은 앞쪽에서 얼굴 표정, 손짓, 몸짓 같은 주체의 정보가 발신되기 때문이다. 뒤쪽은 늘 외면당하기 일쑤다. 견갑골과 등판, 허리와 엉덩이로 구성된 뒷모습에서 가장 넓은 자리는 당연히 등의 몫이다. 등은 가슴과 배의 후면이고, 이 후면은 말과 몸짓들의 무덤이다.

손이 가 닿지 못하는 한에서 등은 존재의 가장 먼 곳이다. 나는 뒷모습에서 자주 슬픔을 체감하곤 했다. 등은 아무것도 은닉하지 않고 비밀을 다 누설한다. 은유적으로 말한다면 등은 식물의 영역, 달의 이면, 삭풍 부는 한대 지역이다.

거울 따위의 도구 없이는 제 등을 보지 못하는 게 사람이다. 등은 자기의 것이면서 안 보이는 것에 속한다. 우리가 기억하는 등은 대개는 타인의 것이다. 등은 존재의 공백이자 슬픔의 여백이다. 앞모습은 존재의 전면이어서 늘 당당하다.

반면 뒷모습은 어딘지 서글프다. 등은 눈이나 콧날, 입술, 턱, 뺨과 이마 따위보다 주목을 덜 받는다. 우리가 생의 날들에서 거두는 공훈은 앞쪽이 다 가져간다. 하지만 오만한 얼굴 표정, 험담과 권모술수, 사악한 웃음, 비굴함 따위는 다 앞모습에서 일어나는 사태다.

등이여, 서러워라! 떠난 자는 우리보다 먼저 저 너머 아름다운 세상에 가 있다. 등은 천상천하 유아독존하지 않는다. 등은 슬프지만 제 슬픔을 모르는 존재의 뒷면이다. 등은 끝난 사랑의 무덤이다. 헤어져 돌아가는 자의 등에는 작별의 손들이 숨어 있다. 나는 등에 관한 시 한 편을 꼭 쓰고자 애타던 시절이 있었지만 한 구절도 쓰지 못했다. 내 영혼이 순정하지 못한 탓이라고 여겼다.
뒷모습에 비친 '사랑의 이면'
등이나 뒷모습에 관한 시를 찾다가 우연히 박규리 시인의 ‘치자꽃 설화’를 읽었다. 출가한 정인을 찾았지만 뜻을 못 이루고 산중 암자를 떠나는 여인의 슬픈 곡절을 고갱이로 삼은 설화를 담담하게 들려주는 시다.

‘사랑하는 사람을 달래 보내고/ 돌아서 돌계단을 오르는 스님 눈가에/ 설운 눈물방울 쓸쓸히 피는 것을/ 종탑 뒤에 몰래 숨어 보고야 말았습니다.// 아무도 없는 법당 문 하나만 열어놓고/ 기도하는 소리가 빗물에 우는 듯 들렸습니다.// 밀어내던 가슴은 못이 되어 오히려/ 제 가슴을 아프게 뚫는 것인지/ 목탁 소리만 저 홀로 바닥을 뒹굴다/ 끊어질 듯 이어지곤 하였습니다.// 여자는 돌계단 밑 치자꽃 아래/ 한참을 앉았다 일어서더니/ 오늘따라 엷은 가랑비 듣는 소리와/ 짝을 찾는 쑥국새 울음소리 가득한 산길을/ 휘청이며 떠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멀어지는 여자의 젖은 어깨를 보며/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인 줄 알 것 같았습니다.// 한 번도 그 누구를 사랑한 적 없어서/ 한 번도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야말로/ 가장 가난한 줄도 알 것 같았습니다.// 떠난 사람보다 더 섧게만 보이는 잿빛 등도/ 저물도록 독경 소리 그치지 않는 산중도 그만 싫어,/ 나는 괜시리 내가 버림받는 여자가 되어/ 버릴수록 더 깊어지는 산길에 하염없이 앉았습니다.’ -박규리 시집 <이 환장할 봄날에>(창비, 2004)

속세와의 인연을 끊은 스님은 여인을 달래서 돌려보낸다. 치자꽃 그늘 아래 앉았던 여인은 산길을 말없이 휘청이며 내려간다. 이승에서 맺은 인연은 거기까지다. 헤어지는 자가 보이는 등은 이별의 최후통첩이다. 정인을 남기고 돌아선 여자의 ‘젖은 어깨’와 여인을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스님의 ‘잿빛 등’보다 더한 이별의 슬픔을 보여주는 것은 없다. 인연을 정리한 연인이 등을 돌리고 떠나는 장면은 애달프다. 그 뒷모습에서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인 줄 알았다’는 깨침이 이 시의 절정일 테다.

등에는 눈썹도 코도 입술도 없다. 그것은 혀가 잘린 입이고, 앙상한 관상수들만 서 있는 겨울의 정원이다. 하건만 등은 수수께끼와 사촌간이고, 생의 슬픔을 혼자 짊어진 누이 같다. 우리 생애 동안 등의 진실을 깨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돌아보면 모든 연애는 쉽지 않았다. 연애가 깨진 뒤 등을 보이며 떠난 이들을 기억한다. 등은 이별의 파국이 만드는 슬픔을 그대로 노출한다. 헤어지며 돌아선 자의 등은 이별의 슬픔을 먹고 자란다. 등의 슬픔은 사라지려 할 때만 존재하는 슬픔이다. 그러니 그 슬픔은 한시적이다.
'등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직립한 나무엔 딱히 등이랄 게 없다. 앞뒤 분간이 없는 까닭이다. 낮과 밤이 그러하듯 척추동물에겐 앞과 뒤의 분별이 뚜렷하다. 멀리 보는 눈과 말하는 입이 있는 앞모습은 표정이 다양하지만 뒷모습은 거의 무표정하다. 등은 이별의 증언자, 피해자의 침묵, 계절의 끝, 더는 소리를 내지 못하는 고악기다. 등의 존재감이 찰나를 드러내는 것은 헤어질 때다. 표정도 열광도 없는 침묵이 등의 전부이고, 또한 침묵은 등이 거머쥔 가시적인 진실의 전부일 테다.

등은 정직함이란 덕성으로 빛난다. 프랑스 작가 미셸 투르니에는 <뒷모습>이라는 책에서 ‘모든 것이 다 정면에 나타나 있다. 그 이면은? 뒤쪽은? 등 뒤는? 등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김화영 옮김, 현대문학)고 썼다. 평생 가족 부양의 짐을 짊어진 늙은 가장의 어깨와 등은 구부정하다! 단지 뒤쪽에 있다는 이유로 무시당하지만, 이 세상에서 굽은 등보다 더 정직한 걸 찾기는 어려운 일이다. 등은 외롭고 진실한 탓에 자주 무시당하는 잊힌 천사다. 등이 늘 쓸쓸하고 애틋한 것은 그런 탓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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