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억 빚더미 앉았지만…그림 그려서 다 갚은 '이 남자'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입력 2023-02-25 07:50   수정 2023-04-27 16:30


99% 폭락.

처참한 투자 성적표를 본 화가는 눈앞이 깜깜해졌습니다. 지난 20년간 처자식 먹여 살려가며 틈틈이 모은 쌈짓돈 1억8000만원이 허무하게 증발해버린 겁니다. 좀 여유 있게 더 잘살아 보고 싶었을 뿐인데, 가족에겐 뭐라 말해야 할지, 앞으로 자식들 교육은 무슨 돈으로 시켜야 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다행히 화가는 돈을 꽤 잘 버는 편이었습니다. ‘수업료’ 냈다 치고, 이제부터 정신 차리면 됩니다. 하지만 잠시 후 기운을 되찾은 화가는 자신 있게 외쳤습니다. “다음 투자에 성공해서 갚으면 되겠네!”

이 못 말리는 ‘투자 중독자’는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얀 판 호이엔(1596~1656). 그림 실력으로는 렘브란트 뺨칠 정도의 거장이었지만 투자 실력은 형편없었던, 그래서 평생 빚에 시달렸던 ‘마이너스의 손’이었습니다. 오늘 ‘그때 그 사람들’에서는 호이엔의 작품과 삶에 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 참고문헌과 금액 환산 기준 등은 기사 끝부분에 첨부했습니다.
그림 시장을 이끈 ‘천재 엘리트 화가’

우리나라 미술 애호가들에게는 호이엔이라는 이름이 좀 낯설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국내에는 제대로 소개된 적이 잘 없고, 엉터리 정보도 많더군요. 하지만 유럽에서는 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풍경화가 중 한 명으로 꼽힙니다. 호이엔이 살아있을 당시엔 같은 시대 화가인 렘브란트(1606~1669)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호이엔은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습니다. 남들이 빨라야 10대 중반에 시작하는 수습생도 불과 열 살의 나이로 시작했고요. 호이엔의 아버지도 ‘영재 교육’에 열심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수습생은 길게 배울수록, 더 많은 수의 스승을 모실수록 교육비가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호이엔은 10년 넘는 기간 동안 6명 넘는 스승을 모셨습니다. 돈이 엄청나게 많이 들었겠지요. 그들 중에서도 호이엔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20세 때 만난 ‘풍경화가 1타 강사’ 에사이아스 반 데 벨데였습니다.



오랜 훈련을 마치고 마침내 풍경 화가로 본격 데뷔를 앞둔 호이엔. 이제 어떤 화가가 될지 선택해야 합니다. 당시 화가들은 둘 중 하나였습니다. 첫째는 오랫동안 시간을 들여 천천히 걸작을 그리는 ‘장인 유형’, 두번째는 빠르게 많이 그려서 많이 파는 ‘공장 유형’이었지요. 재능이 있는 화가들은 보통 장인이 되기를 택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안정적인 수익을 위해 공장 유형을 택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호이엔은 공장 유형을 택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선택은 대성공을 거뒀습니다. 당시 네덜란드는 유럽의 상업 중심지로 떠오르면서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었습니다. 집에 걸 그림을 사려는 사람들도 엄청나게 늘었지요. 수요는 급증하는데 공급이 못 받쳐주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호이엔이 빨리, 많이 그려내는 합리적인 가격의 작품들은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호이엔의 속도와 ‘가성비’는 스승 반 데 벨데에게서 배운 기술 덕분이었는데요, 그는 바탕을 얇게 칠하고 그 위에 몇 가지 색만 슬쩍슬쩍 칠해서 물감을 아끼고 그리는 시간도 최대한 줄였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호이엔의 그림이 아름다웠다는 겁니다. 이는 호이엔의 실력 덕분이었습니다. 그가 쓴 색을 하나하나 보면 대부분이 칙칙한 색이고, 어떤 색은 지저분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붓 터치도 하나씩 뜯어보면 큰 감동이 없고요. 하지만 호이엔은 그 별것 아닌 것들을 모아 이런 멋진 풍경을 만들어냈습니다.
투자는 번번이 ‘쪽박’…‘마이너스의 손’
이렇게 성공 가도를 걷던 호이엔은 1636년 어느 날 이상한 얘기를 듣습니다. 얼마 전 동방에서 들어온 튤립이라는 꽃이 있는데, 이 꽃을 사면 누구든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겁니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튤립에 무슨 가치가 있다고….” 피식 비웃고 넘어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갑니다. 친척 누구는 튤립 거래로 떼돈을 벌어 은퇴했다고 하고, 옆 동네 누구는 튤립을 판 돈으로 집을 몇 채나 샀다는 소문이 들립니다. 수습생 녀석들도 튤립 얘기뿐. “지금 안 사면 바보”라나요. 호이엔은 ‘벼락 거지’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화가로 살아온 지 20년은 된 것 같습니다. 하루종일 캔버스와 씨름하는 고단하고 단조로운 생활. 큰 불만은 없었지만, 좀 더 여유 있게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해가 바뀐 1637년 1월 27일. 호이엔은 큰맘 먹고 지인에게 튤립 뿌리 9개를 수천만 원에 샀습니다. 처음엔 불안했지만, 다음 날 아침부터 꾸준히 오르기 시작하는 가격에 절로 웃음이 나왔습니다. “가즈아~!” 그는 일주일 뒤인 2월 4일 1억원어치 튤립 뿌리를 ‘추가 매수’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전날인 2월 3일, 튤립 거래의 중심지였던 하를렘에서는 이미 시세 폭락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상투를 잡은 겁니다. 값비싼 투자 상품이었던 튤립은 한순간에 그저 흙 묻은 풀때기로 변해버렸습니다. 이게 바로 인류 역사상 최초의 거품 경제 현상인 ‘튤립 파동’입니다.

당시 네덜란드는 유럽의 모든 돈이 몰리는 곳. 돈이 많아지니 사람들은 이 돈을 넣을 투자처를 애타게 찾아 헤맸습니다. 이들의 눈에 들어온 게 얼마 전 동방에서 들어온 ‘신비의 꽃’ 튤립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튤립 모양에 이름을 붙이고 등급을 매기며 신나게 사고팔기를 반복했고, 튤립 값은 불과 몇 달 만에 10배, 100배로 뛰었습니다. 시세 폭등에 이끌린 사람들이 더 들어오면서 가격은 계속 뜁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느 날 깨달았습니다. “그저 꽃일 뿐인데 왜 이 돈을 주고 사야 하지?” 그리고 이어진 폭락.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야기 같네요.

사실 아직은 상황이 괜찮았습니다. 비록 큰 손해를 보긴 했지만, 호이엔은 여전히 안정적으로 고수익을 올리는 훌륭한 화가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튤립 파동 이후 변해버렸습니다. 튤립 가격이 오를 때의 그 짜릿함과 행복감에 중독돼 버린 거지요. 이제 그는 본격적으로 부동산 투기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또다시 큰 손해를 봅니다.
막대한 빚, 다 갚긴 했는데…
이후 그의 행보를 세 가지 포인트로 정리해 봤습니다.

①자기 자신에게 투자하라. 튤립 투자 실패와 부동산 투자 실패로 164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쪼들리기 시작한 호이엔. 그의 저력이 발휘됩니다. 그는 정말로 미친 듯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1652년 그는 거의 하루에 한 점꼴로 그림을 그리고 팔아서 3억원 넘는 연수익을 거뒀습니다.

결과적으로 호이엔의 삶을 통틀어 가장 성공적이었던 투자는 ‘자신에 대한 투자’였습니다. 이는 “역사상 최고의 투자는 자기 계발”이라는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의 말과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기 일에 대한 숙련도야말로 인플레이션을 방어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다. 숙련도에는 세금도 매기지 않는다. 당신이 정말 실력 있는 사람이라면 화폐 가치가 어떻게 되건 경제의 일정 부분을 가져갈 것이다.”

②끊임없이 변화하라. 호이엔의 방식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습니다. 다른 화가들의 모방에 약하다는 겁니다. 그가 아무리 그림을 잘 그린다 해도, ‘장인 유형’의 화가들이 몇 년을 바쳐 그린 작품만큼 완성도가 높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흐르면서 호이엔의 화풍을 베끼는 사람들이 늘었고, 이들은 비슷한 그림을 더 싼 값에 내놨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화풍을 끊임없이 바꿨습니다. 시골 마을을 그리다가 경쟁자가 늘어나면 강과 바다를 그렸고, 또 비슷한 작품이 시장에 늘어나면 호숫가 마을 풍경을 그리고…. 마치 글로벌 1등 기업이 후발 주자를 따돌리듯 새로운 주제와 기법을 발굴해냈습니다. ‘투자 중독’이긴 했지만, 그는 정말로 그림 그리는 일을 좋아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돈 벌려고 그린다’는 마인드로는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니까요.

③잘 하는 걸 하자. 확실히 호이엔은 그림에서만큼은 천재적인 수완을 발휘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투자에 대해서는 잘 몰랐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던 1656년, 그의 빚은 18억원에 달했습니다. 다행히도 이 빚은 그가 남긴 재산으로 다 갚을 수 있었습니다. 그가 사들인 집 6채는 총 15억6700만원에 팔렸고, 남긴 그림들과 물건이 2억4150만원에 팔렸거든요.

호이엔이 평생 남긴 그림은 확실히 기록된 것만 해도 1200점. 실제 그린 그림은 더 많을 겁니다. 이렇게 열심히 그린 덕분에 이자를 내고 ‘적자 인생’을 면할 수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호이엔의 그림은 그가 죽은 뒤 금세 유행에 뒤처진 작품이 됐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습니다. 시장에 그림이 너무 많이 풀린 탓에 사람들이 그의 그림을 하찮게 여기기 시작했거든요. 호이엔이 재평가된 건, 작품 하나하나의 완성도보다 독창성과 개성을 중시하는 20세기에 들어선 뒤였습니다.

호이엔의 그림은 두말할 것 없이 훌륭합니다. 죽은 뒤지만 어쨌거나 빚도 다 갚았고, 열심히 살아서 자식들도 나름대로 잘 키웠습니다. 하지만 그의 그림과 인생을 살피다 보면, ‘더 잘 될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아쉽다’는 생각이 자꾸만 듭니다. 그렇게 재능도 뛰어나고 성실했는데, 튤립 파동 때 정신을 차리고 다시 그림에만 집중했더라면…. 그랬다면 우리는 지금 렘브란트보다 호이엔을 더 높이 평가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독자 여러분 중에서도 지난 몇 년간 자산 상태가 많이 달라진 분이 적지 않으실 겁니다. 투자에 성공해 큰돈을 버셨다면 축하드립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주식으로 적잖은 손실을 봤거나, ‘영끌’해서 산 집값이 내려갔거나, 하다못해 ‘벼락 거지’가 되는 등 상황이 안 좋아진 분들이 더 많을 듯합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할 수 있는 것부터 열심히 하다 보면 길이 생기겠지요. 저도 이렇게 토요일 새벽에 기사를 마감하고 있습니다. 주말 잘 쉬시고, 돌아오는 한 주도 모두 힘내시길 바랍니다.


<i>*지금 호이엔에 대한 한국어 정보 중에서는 부정확한 게 많습니다. 이 기사 속 정보 대부분은 ‘네덜란드 예술 역사가 저널’(JHNA)에 게재된 ‘얀 판 호이엔 : 거장, 혁신가, 시장 리더’에서 따왔습니다. 원문은 1996~1997년 네덜란드 라이덴의 라켄할 시립미술관에서 열린 호이엔의 대규모 전시 도록에 실려 있었고, 에릭 얀 슬루이터 암스테르담대 명예교수가 작성했습니다. 그는 최고의 호이엔 전문가로 꼽히는 인물입니다. JHNA 홈페이지에서 영문으로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i>
<i>*옛날 돈의 가치를 지금 돈으로 계산하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17세기 네덜란드 화폐(길더) 가치를 얼마로 환산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연구자들마다 의견이 분분합니다. 적게는 3만원, 많게는 10만원이 넘는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 기사에서는 편의상 1길더=10만원으로 계산했습니다.</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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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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