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걸리던 'OTT 심의' 폐지…이제 나오자마자 본다

입력 2023-02-28 18:21   수정 2023-03-01 00:43


영국의 해리 왕자는 작년 말 세계 호사가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른 인물 중 한 명이었다. 그와 아내 메건 이야기를 담은 6부작 다큐멘터리 ‘해리와 메건’이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를 통해 12월 8일 전 세계에 동시 공개됐기 때문이다. 이 다큐멘터리에는 영국 왕실의 비밀을 폭로한 해리 부부의 인터뷰가 담겨 큰 이슈가 됐다.

하지만 한국에선 볼 수 없었다. 외신으로 간추린 내용만 접할 수 있었을 뿐이다. 국내에 공개된 것은 그로부터 28일 후인 올해 1월 4일이다. 국내 OTT에 방영하려면 사전에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의 심의를 받아 ‘18세 이상 관람가’와 같은 등급을 받아야 해서다. 한 달이 지나 공개된 이 작품은 국내 시청자에게 관심을 받지 못했다. 한물 간 이슈가 됐으니 당연한 일이다.

앞으로는 이런 국내외 OTT 방영 시차가 사라진다. OTT 콘텐츠에 대한 영등위의 사전 심의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한국 시청자도 미국 드라마를 미국인과 같은 시점에 감상할 수 있다는 얘기다.
석 달 걸리던 사전 심의 사라져

영등위는 3월 28일부터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티빙 등 OTT 업체가 자체적으로 영상 등급을 분류할 수 있는 ‘OTT 자체 등급 분류 제도’를 시행한다고 28일 밝혔다.

영등위가 수많은 OTT 콘텐츠를 하나하나 살펴보는 대신 OTT 업체가 자율적으로 판단하는 방식이다. 지금은 미국 드라마 ‘털사 킹’을 티빙에 방영하기 전 영등위의 심의를 받아 ‘18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는 방식이지만, 앞으론 티빙이 알아서 등급을 매긴 뒤 방영하는 식으로 바뀐다는 얘기다.

영등위는 이처럼 업체에 자율심의권을 주고, 사후 모니터링만 한다. 누가 봐도 ‘19금’ 콘텐츠를 업체가 ‘15금’으로 낮춰 방영하면 해당 콘텐츠 상영을 취소하는 등 페널티를 준다. 미국 등 해외에서 쓰는 방식이다.


영등위가 사전 심의에서 사후 관리로 정책을 180도 전환한 배경에는 ‘OTT 콘텐츠 홍수’가 자리 잡고 있다. 2015년 4339건이던 비디오물 등급 분류 건수가 2021년 1만6167건으로 6년 만에 3.7배나 늘어났다. 넷플릭스 티빙 웨이브 등 OTT 업체들이 잇따라 서비스를 시작한 여파다.

심의 기간은 갈수록 길어졌다. 과거엔 아무리 길어도 2주 안에 심의를 마쳤지만, 2년 전 나온 ‘오징어 게임’은 21일이나 걸렸다. 연말 등 작품이 쏟아지는 시기에 내놓는 작품 중엔 3개월 걸린 것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디즈니플러스는 심의 때문에 아예 방영을 포기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일본에서 방영된 인기 애니메이션 ‘블리치: 천년혈전 편’이 그랬다. ‘원피스’ ‘나루토’와 함께 ‘소년만화 3대장’으로 불리는 인기작이지만, 심의가 길어지자 방영 타이밍을 놓쳤다고 판단해 접었다.
자체 등급 분류로 시청자, 업체 편익

자율심의의 최대 수혜자는 한국 시청자다. 미국 드라마를 미국 시청자와 같은 시간에 볼 수 있는 것은 기본이다. K팝 콘서트 실황처럼 최대한 빨리 봐야 효용이 커지는 콘텐츠도 곧바로 TV에 나온다.

OTT 업체는 하릴없이 기다리거나 ‘꼼수’를 쓰지 않아도 된다. 쿠팡플레이는 2021년 ‘SNL코리아 시즌 1’을 뜬금없이 지상파 DMB 채널 QBS에 선공개했다. OTT용으로 만든 콘텐츠를 다른 방송 채널에서, 그것도 보는 사람이 거의 없는 새벽 3시에 틀었다. ‘방송 채널을 통해 한 번 방영한 작품을 OTT로 재방송할 때는 사후 심의만 거치면 된다’는 규정을 활용한 것이다.

한 OTT 업체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심의 기간이 워낙 긴 탓에 꼼수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며 “앞으론 이런 쓸데없는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채윤희 영등위 위원장은 “OTT 업체들은 원하는 시기에 콘텐츠를 내놓을 수 있고 시청자들도 다른 나라 시청자와 똑같이 콘텐츠를 즐기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청소년 보호에 구멍이 뚫릴 수 있다는 우려도 높다. 노승오 영등위 정책사업본부장은 이에 대해 “전문가로 구성한 모니터링단을 통해 업체들이 적정 등급을 매기는지 꼼꼼하게 살펴볼 것”이라며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을 받아야 할 작품을 그보다 낮게 매긴 게 발견되면 직권으로 등급을 변경하거나 취소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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