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몽골의 '창씨개명'…고유의 성(姓)을 잃다

입력 2023-03-06 10:00   수정 2023-03-06 16:01


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으로 제정러시아가 무너지고 얼마 뒤 ‘소련’이 등장했다. 세계 최초로 탄생한 사회주의 국가다. 이어 1921년 소련의 원조로 몽골에 세계 두 번째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섰다. 몽골 공산정부는 곧바로 ‘창씨개명’ 작업에 들어갔다. 조상 계보에 따른 충성심이 국가에 우선해선 안 된다는 명분하에 성씨(姓氏) 사용을 금지한 것이다. 이로 인해 몽골에선 전통적으로 써오던 성(姓)이 사라졌다. 대신에 ‘부친(또는 모친) 이름+본인 이름’ 형식의 새 이름 체계가 자리 잡았다. 나라글자마저 고유의 몽골문자를 잃고 러시아 키릴문자로 대체됐다.
성은 없고 이름만 나열해 쓰는 곳 많아
지난달 롭상남스라이 어용에르덴 몽골 총리가 4박5일 일정으로 한국을 다녀갔다. 영어권이나 중국, 일본 인명에 익숙한 한국인에게 몽골 사람 이름은 꽤 낯설어 보인다. 언론에서도 표기를 비롯해 크고 작은 혼란이 있었다. 몽골 이름을 접할 기회가 드문 데다 몽골어 표기법이 마련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거기다 몽골 인명에는 우리와 달리 성(姓)이 따로 없고 이름만 있다는 점도 표기에 어려움을 더했다. 누군가를 부를 때 통상 ‘성+직함’ 또는 ‘성+씨’를 쓰는 게 우리 언어관습이다. 가령 홍길동 사장을 ‘길동 사장’이라 하기보다 ‘홍 사장’으로 부르고 가리킨다. 의례적·공식적 표기에선 대개 그렇다. 그러다 보니 외래 인명을 접할 때 자연스레 성을 먼저 따지게 된다.

하지만 아시아권에서 성과 이름을 구별하는 게 의외로 쉽지 않다. 한국처럼 성과 이름이 명확히 구별되는 나라는 중국, 일본, 베트남 정도를 빼곤 별로 없다. 가령 몽골과 마찬가지로 미얀마와 말레이시아는 따로 성이 없다. 사전 정보가 없으면 나열되는 이름 중 무엇으로 불러야 할지 곤혹스러워질 때가 많다. 베트남은 ‘성+중간이름+이름’ 식으로 구성되는데, 이들은 우리처럼 성이 아니라 이름으로 호칭한다는 것도 독특하다. 영어식으로 성이 뒤에 오는 나라도 있다. 태국이 그런 경우인데, 이들은 호칭할 때 성이 아니라 이름을 쓴다. 예를 들어, 푸미폰 아둔야뎃 전 국왕은 ‘이름+성’의 구조다. 호칭할 때는 성으로 하지 않고 푸미폰 국왕 식으로 이름을 취한다.
몽골에선 끝에 오는 이름이 본인 이름
롭상남스라이 어용에르덴 총리의 경우 롭상남스라이는 할아버지 이름이고 어용에르덴이 본인 이름이다(위키피디아). 최기호 전 몽골 울란바타르대 총장(전 상명대 국어교육과 교수)은 “몽골 인명에는 따로 성이 없다 보니 호칭이나 지칭어로 쓸 때는 이름(given name)을 부르면 된다”며 “어용에르덴의 경우 간단히 ‘어유나(Oyuna)’로 줄여 쓰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몽골 이름을 한글로 옮기는 일도 간단치 않다. 우리 외래어 표기법엔 별도의 몽골어 표기규정이 없다. 따라서 같은 키릴문자를 쓰는 러시아 문자의 한글표기법을 준용해서 쓰는 게 일반적이다. 또 실제 발음으로 인정할 수 있는 자료(인터넷 동영상 등 발음에 관한 정보)의 발음 정보도 참고한다. 국어와 외래어 등 전반적인 어문정책을 관장하는 국립국어원에서 그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점에서 롭상남스라이 어용에르덴 총리의 경우도 추후 국어원의 감수를 거치면 보다 정확한 표기가 제시될 것으로 보인다.

몽골은 역사적으로 비슷한 시기에, 일제에 의해 창씨개명 등 혹독한 말글 탄압을 받은 우리나라와 동병상련의 역사를 겪은 셈이다. 몽골 정부는 2000년대 들어 본래 쓰던 성씨를 되살리려고 국민에게 부족명을 사용할 것을 권장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민이 부족 이름 추적에 실패했다. 최기호 전 총장은 “애초 몽골은 우리나라처럼 다양한 성씨가 있었으나 사회주의 정책에 따라 지금은 성을 다 잃어버렸다”며 “우리가 일제에 36년간 핍박받은 데 비해 몽골은 소련이 해체되기 전까지 70여 년을 지배받았으니 그 영향이 우리보다 훨씬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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