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훈 칼럼] LG家 상속 분쟁에 대한 단상

입력 2023-03-15 19:00   수정 2023-03-16 22:44

동업을 끝까지 유지하는 일은 어렵다. 이익과 손실을 나눌 때나 사업 환경이 바뀔 때마다 어떤 형태로든 신뢰 테스트를 겪는다. 가장 큰 위협은 사업 방향성과 미래 비전에 대한 불화다. 권한과 책임이 비슷해도 생각과 의견이 다르면 동거 체제는 와해된다. 1947년 락희화학을 공동 창업한 고(故) 구인회·허만정 회장 가족들이 어떤 잡음도 없이 2004년에 이르러서야 LG와 GS로 분리된 것은 산업사에 길이 남을 ‘아름다운 동행과 이별’이었다.

창업 2세, 3세로 넘어가면 동업 유지가 훨씬 험난해진다. 창업주들은 형제보다 진한 우정과 피보다 진한 결의로 기업을 지켜왔다. 서로 못마땅한 점이 있어도 대업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는 절박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자식들의 관계는 완전히 다르다. 기업을 일으킬 때의 의기투합 경험이 없다. 공장에서 새우잠을 자고 라면을 나눠 먹던 시절의 추억도 없다. 창업자들에게 기업은 자신의 정신이요 분신이지만 2세, 3세에게 기업이란 다만 물질이요, 재산이며, 여차하면 경영권을 다퉈야 할 대상일 뿐이다. 애초에 상대에 대한 자제력과 배려심을 발휘할 이유가 없다.

지금 영풍그룹이 그런 종류의 시험에 빠져 있다. 영풍은 고 최기호·장병희 창업주가 1949년 세운 기업으로 재계 서열 30위 규모다. 고려아연 등 비철금속 계열사는 최윤범 회장(오너 3세) 가족들이 맡고 있고, 영풍 영풍문고 등은 장형진 회장(오너 2세) 쪽이 각각 경영하고 있다. 두 가족은 70여 년 동안 큰 문제 없이 합작 관계를 이어왔지만 지난해부터 파열음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양측이 고려아연 주식을 경쟁적으로 매입하면서 지분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얼마 전 조원태 회장 측 승리로 끝난 대한항공 경영권분쟁처럼 외부 기업들도 가세했다. 과거 경쟁이 과열돼 제3자가 어부지리로 득을 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1990년대 창업 2세들이 경영권 전쟁을 벌인 한농, 제일물산 경영권은 지분 경쟁에 백기사로 참여한 S사와 D사에 넘어갔다. 도와달라고 끌어들인 것이었는데, 비정한 배신이었다. 지분 경쟁에 자금력을 소진한 동업자들은 눈 뜨고 코 베인 신세가 됐다.

기업 상속이 이뤄지면 동업관계가 가족들로 확장된다. 계열사를 나누거나 지분을 쪼개 물려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지만 경영권은 피보다 더 진하다. 그동안 숱한 기업에서 형제·남매, 심지어 부모·자식 간에 지분 경쟁이 벌어진 것을 지켜봐온 터다.

경영권은 기업인들에게 절대적 의미를 갖는 재산이다. 일반인의 1호 재산이 집이라면 기업인의 1호 재산은 경영권이다. 어떤 기업 경영권을 쥐고 있느냐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가장 잘 보여준다. 재벌가 거의 모든 구성원이 기업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다. 경영권은 욕망의 정점이다. 이것이 그들에겐 정글의 영역표시이자 새들이 결사적으로 지키려는 둥지요 보금자리다. 그저 돈이 많은 사람과 기업 경영자에 대한 사회적 명예와 예우는 확연지차다. 기업인들은 본능적으로 자신과 기업을 동일시한다. 기업 경영을 통해 인생과 세계에 대한 자신의 철학과 믿음을 구현하려고 한다. 경영권을 방어하겠다는 것은 자신의 인격과 정체성을 지키겠다는 전쟁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인화(人和)의 LG’에 가족 간 상속 분쟁이 일어난 것에 전혀 놀라워하거나 실망할 필요가 없다. 구본무 회장 직계 유족들이 구광모 LG 회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기업인 가문의 본성에 충실한 것이다. 돈은 본질이 아니다. 경영 참여 없이 배당만 받을 수 있는 지분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5년 전에 확립되고 이제 안정기에 접어든 리더십을 뿌리째 흔드는 것은 무리한 시도라는 시각이 많다.

구 회장 측은 외부에 가족간 갈등이 알려진 것이 무척 부담스럽겠지만, 이런 종류의 싸움엔 중간이 없다. 동업은 반드시 청산된다. 이제 어색한 동거 체제, 부자연스러운 동업을 정리할 시점이 왔다고 볼 수도 있다. 마음이 멀어진 양측이 그룹 지분을 공동 소유하는 것은 자연스럽지도, 영원하지도 않다. 경영권을 방어하는 전쟁터는 법원이 아니다. 관건은 그동안의 준비와 능력과 성과, 그리고 시장의 선택에 달려 있다. 모든 면에서 구 회장이 유리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성의를 다한 대화와 배려는 필요하다. 구 회장을 양자로 입적하고 후계자로 길러낸 구본무 회장의 유지(遺旨)를 생각해서라도 서로 원색적 언사만은 자제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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