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심시간에 문을 닫는 관공서가 늘어나고 있다. 점심시간 휴무제는 지자체장의 재량에 따라 시행할 수 있는데, 2023년 4월 1일부터 지방의회 조례로 정하게 된다. ‘민원처리법 시행령’이 바뀌기 때문이다. 이 바람에 3월 중 점심시간 휴무제를 서둘러 시행하려는 자자체가 늘었다. 공무원도 ‘정상적 점심시간’을 갖겠다는 요구, 일종의 휴식권 확보 차원에서 비롯됐다. 반면 민원인들의 불편이 커졌다. 점심시간은 시민 입장에서는 각종 행정 민원업무를 보기가 편하고 자연스러운데 이 시간에 문이 닫히면 업무시간에 짬을 내거나 휴가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무인발급기로 해결 가능한 행정서류가 많이 늘었지만 인감증명서나 여권처럼 기계로 안 되는 일도 많고, 고령자가 많은 지역도 있다. 공무원에게도 똑같은 점심시간 보장, 해줘야 하나.
유럽 등지의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을 보면 한국 행정이 얼마나 빠른지 알 수 있다. 프랑스 같은 곳에는 간단한 행정도 하세월로 길게 걸리는 경우가 많다. 최근 한국 풍토는 거의 ‘민원인은 왕’ 수준이어서 너무 많은 것을 공무원에게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점심시간도 보장해주지 않으면서 무슨 창의적 행정을 기대하겠나. 더구나 일선 지자체로 가면 창구 공무원의 급여는 여전히 열악하다. 월급도 적은 판에 점심도 제시간에 먹지 못하면 좋은 인재들은 공무원 근무를 기피할 것이다. 공직의 수준이 떨어지면 이용자인 국민 손해다. 근로 휴식권 같은 작은 권한은 당사자 요구가 없어도 시민사회가 확보해주자고 해야 정상이다.
그런데도 공무원도 똑같이 12시~1시 점심시간을 이용하겠다며 민원인 방문이 많은 이 시간에 관공서 문을 닫는다는 게 말이 되나. 점심식사를 못하게 하는 것도 아니고, 30분 일찍 시작하거나 그 정도 늦춰 하면 된다. 담당 업무가 있다지만 당번제로 점심시간을 조금씩 변형하면 된다. 무인 민원 발급기가 많이 보급되고는 있어도 인감증명서, 주민등록증, 여권, 본인서명사실확인서 같은 것은 창구에서 대면 업무로만 가능하다. 또 전국 각 지자체에는 고령자가 많은데 이들은 무인 발급기 이용에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민원인의 불편을 가중시키는 행정은 곤란하다.
전국 226개 기초 지자체(시·군·구) 가운데 점심시간 휴무제를 시행 중인 곳이 64곳에 달한다. 더 확대할 게 아니라 오히려 이런 곳의 점심시간 문 닫기를 중지해야 정상이다. 대구지역 8개 기초 지자체는 4월부터 점심시간 휴무제를 시범 시행한 뒤 10월 지속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가 도입을 아예 중단했다. 이게 바람직하다. 반대 여론에 귀를 기울인 것이다. 시간을 쪼개 점심시간에 행정 관련 용무를 처리하겠다는 게 민원인의 입장이다. 이들의 불편을 보완할 대책을 제대로 세우지 않고 휴무제를 하겠다는 것은 지나친 행정편의주의일 뿐이다.
민주화된 다원화 사회에는 요구도 많고 주장도 많다. 이른바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점점 사회로 진출하면서 공직도 예외가 아니다. ‘부패와 일탈에서 자유롭되 직업인으로서 정당한 기본 권리는 달라’는 요구로 볼 수 있다. 운영의 묘를 살리되 복합 경제 위기로 사회적 난제가 첩첩이 쌓인 상황도 공무원 스스로 잘 인지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공무원이 ‘복지’ ‘휴식권’ 등을 많이 외치면 정부 산하 공기업과 공공기관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사회적으로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공무원 노동조합 등에서 이런 주장을 특히 더 내놓고 있지만, 자칫 소탐대실할 가능성도 있다. 고령자 등 정보기술(IT)·인공지능(AI) 시대에 뒤떨어진 그룹을 배려하는 것도 공직의 주요한 덕목이다. 이런 주장이 공직사회에서 나오는 것보다 사회단체에서 먼저 나왔더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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