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훈의 랜드마크vs랜드마크] 프리츠커상과 아가칸 건축상

입력 2023-04-05 18:11   수정 2023-04-30 13:51


지난달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의 2023년도 수상자가 발표됐다. 우리나라 용산에 있는 아모레퍼시픽 본사 건물을 설계한 영국의 데이비드 치퍼필드다. 애플사옥을 설계한 노만 포스터 사무실에서 근무한 그의 경력이 보여주듯, 그의 건축은 과장되지 않고 절제되면서 단아한 모습이다. 그러나 그가 독립한 이후 그의 건축은 지역의 역사나 문화적 특성을 잘 반영하며 시류에 따르지 않는 창의적인 건축물을 만들어내는 건축가로 알려졌다. 그의 절제된 건축언어가 문화적 맥락과 잘 어우러지는 점이 이번 수상의 이유이기도 하다.

프리츠커상은 하이야트 재단에서 1978년 제정한 건축상이다. 1967년 아틀란타에 하얏트 호텔을 지으면서 중앙에 큰 아트리움을 설치하였고, 건축주인 프리츠커씨는 그 내부공간의 아름다움에 감동하였으며, 그는 이와같이 인간에게 큰 감동을 주는 건축을 한 건축가에게 건축상을 주고자 프리츠커상을 만들게 된다(또한 하얏트 호텔은 아트리움을 호텔의 트레이드 마크로 사용한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을 설계한 프랭크 게리,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를 설계한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 일본의 안도 다다오 등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그들의 면면을 보면 공통적으로 사람들에게 공간적으로 형태적으로 감동을 주는 건축물을 설계한 건축가라는 걸 알 수 있다.
아모레 사옥 설계자가 받은 프리츠커
프리츠커 상이 2014년에 일본의 시게루반, 2016년에 칠레의 알레한드로 아라베나를 수상자로 선정하면서 상의 성격이 변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게루반은 재난으로 집을 잃은 사람을 위해, 종이 튜브를 이용하여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임시주거를 디자인했다. 인도주의 입장에서 실험적 건축물의 해결 방안을 찾는 작업을 인정해준 것이다. 아라베나는 저소득층을 위한 주거를 위해, 건물의 반만 지어주고 나머지 반은 거주자가 살아가면서 쉽게 증축해 쓸 수 있도록 건물의 구조체만 만들어주는 설계를 제안하여 성공한 점을 인정받았다. 건축물이 인간에게 단순한 감동을 부여하는 것에서 벗어나 삶에 보다 깊숙이 관여하는 것에 의미를 두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프리츠커상 외에 상금이 크고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건축상은 많이 있으나 성격이 확연히 다른 건축상으로는 아가칸 상이 있다. 1977년 제정돼 3년마다 주제가 다른 6개의 작품을 선정하여 시상하며, 커뮤니티 개선 및 개발, 역사 보존, 재사용 및 지역 보존 분야 등에서 건축적 우수성을 보여준 작품들에 상을 준다.

아가칸 상은 프리츠커상과 같이 순수한 건축적 성과품인 건축물에 대해 상을 준다기보다는 건축을 통해 주변 환경을 개선하고,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며, 프로젝트를 통해 사람들의 삶에 보람을 갖도록 해준 과정에 시상한다. 따라서 준공 때의 일시적인 감동을 중시하기 보다는 일상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가를 살핀다. 그래서 건축가만 수상하는 것이 아니라 건축주, 시공자, 의사결정자 등이 함께 수상을 하는 점도 다르다.

아가칸 상으로 2022년에 수상한 작품 들 중에서, 인도네시아 바뉴왕이 공항터미널은 언뜻 보기에 지방의 작은 공항터미널 건물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그 공항이 일반적인 건축양식을 따르지 않고, 벽이 없이 지붕만 있는 건물로 디자인하여 토속적인 지역 기후에 잘 어울리도록 설계하였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란의 아르고 현대미술관 및 문화센터는 원래 폐허화된 공장이었던 것을 리모델링하여 미술관이며 지역주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재생해낸 것을 높이 평가했다. 방글라데시의 어반 리버 스페이스는 자주 범람하는 강과 제방의 생태적 훼손과 환경적 위험을 불식시키기 위해, 현지 재료인 벽돌을 사용하여 지역민들이 직접 참여하며, 벽을 쌓고 바닥을 포장하여 주변환경의 개선을 이루어낸 것이 인정되었다. 하나같이 건축물의 순수한 형태적 우수성을 인정하기 보다는 그 내면에 숨겨진 프로젝트의 성취과정을 살피는 것을 볼 수 있다.

아가칸은 주변 환경과 삶 개선 평가
그런데 재미있는 사건은 2004년 아가칸 상을 받은 경험이 있는 아프리카 오지 부르키나 파소 출신의 디에베도 프란시스 케레가 2022년 프리츠커상의 수상자로 선정된 것이다. 그의 건축은 건물의 단순한 감동을 벗어나 지역민과 함께 그들이 필요로 하는 건축을 만들어 가는데 의미를 뒀다. 나아가 공동체의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관점에서 건물의 재료나 공법, 환경시스템을 선택적으로 적용했다. 건물의 공간이나 형태의 구성적인 모습 속에 사회적 의미가 내재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건물설계에 현실적인 요건을 섬세하게 적용하면서도 인간에게 감동을 주며 인간의 삶의 본질적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는 결과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의 프리츠커상 수상의 이유를, 사회적 의미를 갖는 건축작업이 18년의 기간 동안 정제되어 인간에게 감동을 주는 건축으로 발전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프리츠커상의 성격이 단순한 건축적 완성도에서 벗어나 아가칸 상이 추구하는 사회적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둔, 사회와의 합치된 가치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프리츠커 상이 추구하는 목표가 건축물이 인류에게, 공동체에게 내면적으로 의미있게 다가가는 건축물을 인정하는 새로운 가치관으로 변화되고 있다면, 2023년 데이비드 치퍼필드 역시 그의 건축을 단순한 건축적 성과의 우수성으로 보기 보다는, 그의 건축에서 문화적 사회적 함의가 어떻게 건축에 녹아들어 갔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대중들의 응집된 에너지를 건축가가 올바로 해석하여, 주민들에게 꼭 필요한 건물을 만들어주는 것에 목표를 둔 건축 프로젝트에 시상을 하는 Aga Kahn Award와, 사회가 생활이나 기본질서는 당연히 잘 갖추어져 있다는 가정하에, 건축가의 열정으로 만들어내는, 인류에게 감동을 주는 결과물로서의 건축물에 가치를 두고, 사람들에게 더 나은 기쁨을 주는 것을 목표로 하는 Pritzker Prize가 그 상의 고유한 성격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느 것이 더 사람을 위해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건축인지 확정하기는 힘들지만, award와 prize라는 용어로 구별되어 사용되듯이, 두 상에 대한 접근 태도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삶의 의미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과 능동적으로 쟁취한다는 것의 차이도 보여주는 것 같다.

2017년에 우리나라에서 UIA라는 세계건축대회가 열린 적이 있다. 3년마다 개최되는 건축계의 올림픽인 이 대회를 계기로 우리나라에서도 기존의 건축상과는 달리 인류에게 공헌하는 다른 건축상을 제정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다. 우리나라의 명예건축가회와 DBEW(Design Beyond East West) 재단을 중심으로 진행되었으나, 결과적으로는 여러가지 기술적 난관으로 성사되지 못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결국 어떤 가치를 지닌 작품에 상을 주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공감대가 확정되지 못한 것에 기인하였다고 생각된다.

건축물 또는 건축가가 추구하는 가치는 사람 사는 모습만큼 다양할 수 있다. 오늘날 지구의 기후환경이 변화되고 있고, AI 등 기술 발전이 급박하게 돌아가며, 사람 사는 모습이 급변하는 시대에 기존의 두 건축상이 추구하는 가치를 어떻게 보아야 할지, 우리는 어느 편에 서 있어야 인류에게 진정 유익한 건축이 될 것인지, 제 3의 가치는 있을 수 없는지, 의문을 품고 먼 발짝에서 다시 한번 바라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두 상의 가치가 차별화된 의미가 있을 때 오히려 건축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고, 우리가 건축을 바라보는 눈을 자유롭게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재훈 단국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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