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편견과 싸우는 중소기업 대표들

입력 2023-04-07 17:40   수정 2023-04-08 00:34

“제 차는 20만㎞ 넘게 탄 2007년식 NF쏘나타입니다. 일하다 다친 까닭에 손가락도 하나 없습니다.”

경기 남부 소재의 한 중소기업 A대표는 ‘중대재해처벌법 1호’ 관련 취재차 인터뷰를 청하자 대뜸 소유 자동차종과 손가락 잃은 얘기부터 꺼냈다. 온라인에서 중소기업 관련 뉴스를 볼 때마다 ‘직원은 쥐어짜면서 중기 대표 본인은 고가 외제차를 탄다’는 댓글을 수도 없이 접한 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인건비를 아끼겠다고 온 가족이 현장에 동원되고, 직원이 다칠까 봐 위험한 작업은 대표가 직접 하는 사례가 많은 게 대다수 중기 현실”이라며 착잡해했다.

“직원 대신 내가 다친 게 다행”이라며 너털웃음을 지을 정도로 여유가 있던 A대표의 얼굴은 중대재해법이 본격적으로 화제에 오르자 순식간에 굳었다. 중대재해법이야말로 경영자를 노동자의 인권을 짓밟는 범죄자로 보는 편견이 모여 만들어진 역차별법이라고 여겨서다. ‘노동자를 괴롭히는 악덕 업주’ ‘직원에겐 10원도 아까워하는 갑질의 대명사’ ‘근로자가 죽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냉혈한’ 같은 세간의 부당한 인식이 법 곳곳에 녹아 있다고 느낀 것이다.

A대표뿐 아니라 다수의 중기 경영자는 “중대재해법이 중기 대표를 범죄자 취급하고 있어 힘이 빠진다”고 이구동성으로 지적한다. 중대재해법은 중기인들에게 현실적인 공포가 됐다.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금리가 거침없이 오른 것에 대처하기도 급급한 상황에서 기업인에게 적대적인 중대재해법까지 부상하면서 한숨 돌릴 곳이 없어졌다. 경남의 한 용접기자재 대표는 중대재해법을 두고 “중기 사장을 근로자의 적으로 규정하고 복수하려는 악법 중의 악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대다수 중기인의 모습은 중대재해법 입법자들이 상정했을 법한 ‘악덕 냉혈한’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중학교밖에 못 나와서 그런지 법이 너무 어렵다”거나 “안전전문가를 채용하려고 해도 영세 업장에는 오려고 하지 않는다”고 호소하는 중기인들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남다르지 않은 존재일 뿐이다.

그런 그들을 언제까지 ‘잠재적 범죄자’라는 색안경을 끼고 바라봐야 할까. 내년부터 ‘5인 이상 50인 미만 기업’으로 중대재해법이 확대 시행된다. 의도치 않은 사고가 발생하면 중기인이 부당한 편견의 희생자로 몰리기 좋은 환경이다. “사장뿐 아니라 직원들도 고급차를 타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는 A대표의 말이 공허한 ‘짝사랑’에 그칠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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