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뿐 아니라 어떤 기업도 현행법을 위반했으면 응당 처벌받아야 한다. 관계당사자 간 이견이 있으면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면 된다. 법치국가의 기본이다. 단 ‘법대로’ ‘법만큼’이어야 법치다. 그의 지적대로 독점적 지위로 시장을 좌지우지했다면 공정거래위원회가 적절히 대응할 수 있다. 한국 공정위는 이 점에서 무소불위라고 할 정도로 세다. 과잉 대처가 자주 논란이 될 정도다. 공정거래법 소비자보호법 외에도 촘촘한 법망에 따라 감독하는 기관이 한둘이 아니다. 고용노동·환경·국토교통·행정안전부도 무섭고, 시·도와 시·군·구까지 기업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한다. 금융당국은 공시 하나라도 빼먹을까 지켜본다. 때로는 징세 기관인 국세청까지 기업 때리기에 나선다. 정치권 하명, ‘특명’이 횡행하던 예전과는 달라졌지만 국세청이 정색하고 나서면 웬만한 기업은 초비상이 걸리는 게 현실이다. 상시 대기하는 검경도 기업엔 단호하다.
그럼에도 감독 법규는 강화 일변도다. 산업안전보건법으로 모자라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졌다. 국회 제1당은 논란 많은 노란봉투법으로 노사관계까지 통제하려 든다. 글로벌 초우량 기업도 정부에는 맞서기 어려운 구조다. 기업 목소리가 큰 미국에서도 ‘Fed(중앙은행)에 맞서지 말라’ ‘트레저리(재무부)에 대항하지 말라’고 하기는 한다. 하지만 한국은 그 정도가 과하다.
요즘은 국민연금공단까지 기업 응징소처럼 변해간다. 지난 정권 때부터 부쩍 경영권이라는 급소를 건드리며 재무적 투자자 이상의 힘을 행사한다. ‘시민’ 간판을 내건 관변·사회단체도 만만찮다. 소비자 차원에선 불매운동이라는 무서운 카드가 있다. 주식 팔아치우기도 무서운 응징이다. 소액이어도 주주 관리(IR)에 실패한 기업은 자본 조달이 어렵고 금융시장 이점도 누릴 수 없게 된다.
이런 판에도 규제·응징이 더 필요하다면 신중하게 법을 제정해 냉철하게 대응해야 한다. 사실 이 점에서도 한국은 유별나다. 한국처럼 법 만들기 쉬운 나라가 없다. 방망이만 두드리면 법이라고 믿는 의원들 천지다. 여야 간 흥정에 따라 독립적 법률안이 몇 건씩 묶음으로 거래되는 게 한국의 법이다. 이런 규제 최강국에 ‘간이 배 밖에!’ 수준의 언어가 국회에서 버젓이 나온 것을 어떻게 봐야 하나. 선비·양반이 ‘다스리던’ 시대로 가자는 건가. 신(新)사농공상·관존민비 질서를 다져 죄형법정주의, 증거주의와는 딴판의 원님재판이라도 획책하나.
이철규 발언은 몇 년 전 최태원 SK 회장 재판을 연상시킨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석을 향해 막말에 가까운 거친 표현으로 장황한 훈계까지 했다. 민주국가의 법관은 특정 법의 구체적 조항에 따라 유무죄를 판단하고, 정해진 기준에 의거해 양형을 정하는 공무원일 뿐이다. 어떤 판사도 개별 인격체에 정제되지 않은 언사를 늘어놓으며 사적 양심을 강요할 권한은 없다. 높은 법대에서 독재자 같은 언어를 쏟아내면 법정의 작은 권력자다. 국회가 전근대 원님 행태를 따라가선 안 된다. 여당 사무총장의 거친 언어가 질시에 편승한 선동적 언사가 아니길 바란다.
거듭, 기업의 명백한 범법과 오류를 봐주자는 게 아니다. 무조건 감싸기는 기업 발전에 도움도 안 된다. 다만 한국의 기업 징계 법률은 과하다고 지적되고 비판받는 현실은 감안할 필요가 있다. 과태료 벌금 자격박탈 형사처벌 등 수단도 다양하다. 갑질 논란의 군림 행정 전통도 남아 있다. 최근에는 ESG 잣대까지, 정부 밖 사회단체 간섭과 압박도 거세진다. 이런 판에 과잉의 언어로 때려대면 기업은 국내에 남아 있을까. 기업 잘못을 혼내도 좀 슬기롭게 할 필요가 있다. 이성적·합리적 책임 추궁이 경제 발전의 길이다. 성숙한 민주사회도 그렇게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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