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의 미술관 속 해부학자] 나르키소스와 마약

입력 2023-04-19 17:44   수정 2023-04-30 11:07

최근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서 벌어진 ‘마약음료’ 사건은 우리에게 큰 충격을 줬다. 학원가를 중심으로 학생들에게 ‘집중력에 좋은 음료 시음 행사’라고 속여서 마약이 든 음료를 마시게 한 뒤 학부모에게 자녀의 마약 혐의를 들며 협박한 사건이다. ‘마약 청정국’은 이미 옛말이 됐고, 심지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마약 범죄가 벌어진 것이다. 최근 마약 유통과 투약의 문턱이 낮아졌는데 10대 마약 사범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더욱 큰 문제다. 마약 청정국의 정의는 인구 10만 명당 마약 사범 수를 나타내는 ‘마약류 범죄 계수’를 기준으로 한 것으로, 20 이하일 때 마약 청정국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마약류 범죄 계수는 2012년 18이었지만 2020년 35, 2021년 31로 크게 올랐다. 이는 겉으로 드러난 수치일 뿐 실제로 밝혀지지 않은 마약 사범까지 고려하면 그 수치는 훨씬 높을 것이다.
'자기애'와 관련 깊은 마약

마약의 사전적 의미는 ‘마취나 환각 등의 작용을 하는 약물’로, 습관적으로 사용하다 보면 중독되는 것이 특징이다. 마약의 영어 표기는 ‘narcotic’과 ‘drug’가 있는데, narcotic은 무감각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narkotikos’에서 유래한 것으로 나르키소스 신화와 연관이 있다. 수다쟁이 님프(요정)인 에코는 친구인 님프와 바람을 피우는 제우스를 잡으러 온 헤라를 방해하고 제우스가 도망가도록 도와줬다. 제우스를 놓치고 성이 난 헤라는 에코가 남의 말을 따라만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에코(echo)는 ‘소리가 반사되어 돌아오는 메아리’라는 뜻이 됐다.

한편 잘생긴 소년인 나르키소스(narcissus)는 많은 님프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에코 또한 나르키소스를 흠모했지만 고백하고 싶어도 먼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잠시 기회를 잡은 에코가 나르키소스에게 고백했지만 단번에 거절당했다. 상심에 빠진 에코는 죽는 순간, 복수의 신 네메시스에게 나르키소스를 향한 복수를 빌었다. 에코의 소원이 이뤄져 나르키소스는 샘에 비친 자기 모습에 반해 자신을 사랑하게 됐고 결국 자기 모습을 따라가다 물에 빠져 죽는다. 그가 죽은 샘에서 수선화(水仙花)가 피어나 수선화를 영어로 narcissus라고 부르게 됐다. 자기애가 강한 사람도 나르시시즘(narcissism)이라 한다. 고대 의학 자료에 따르면 수선화는 진통 효과가 있어 약초처럼 사용했다. 그래서 마약을 narcotic으로 부른다.
삶 속에서 기쁨 얻는 사회 되길
우리 몸의 신경계는 크게 중추신경계와 말초신경계로 구분된다. 중추신경계는 뇌와 척수로 이뤄져 있다. 마약은 주로 중추신경계에 작용하는데, 코카인과 같은 흥분제는 중추신경계를 흥분시켜 일시적으로 감각 및 운동기능을 항진시킨다. 하지만 약효가 떨어지면 상대적으로 엄청난 상실감을 준다.

모르핀이나 펜타닐은 중추신경계를 억제하며, 진통 혹은 수면 효과를 가져온다. 마약은 적응 행동을 조절하는 대뇌의 중격의지핵, 편도핵과 전전두엽피질에 작용한다. 이 부위에서 도파민을 과다하게 분출시키거나 재흡수를 차단해 극도의 쾌감을 불러일으킨다. ‘쾌락 호르몬’이라고도 불리는 도파민은 중추신경계에 존재하는 신경전달물질로 운동, 인지, 동기 부여에 영향을 준다. 마약에 중독되면 도파민이 비정상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일상의 쾌락만으로는 삶의 즐거움이나 만족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 결과 대뇌는 더 많은 양의 도파민을 필요로 하게 되고 결국 더 강한 마약을 찾는 것이다. 자기애와 뜻이 상통하는 마약은 그 의미가 무색하게도 오히려 자기 몸과 정신을 망친다.

최근 정부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마약 수사와 단속에서부터 치료와 재활까지 광범위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마약에 손대지 않아도 자신의 삶과 그 속의 노력에서 만족과 쾌감을 찾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라본다.

이재호 계명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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