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더기 박자·뒤틀린 음정…악보와 반대로 연주하며 시작된 재즈 [오현우의 듣는 사람]

입력 2023-04-27 18:13   수정 2023-04-30 18:09

컴퓨터에 작곡 프로그램을 켜고 마우스 클릭 몇 번으로 작곡하는 시대에 여전히 아날로그를 고집하는 장르가 있다. 재즈와 클래식 이야기다. 두 장르 모두 고전의 반열에 올랐지만 큰 차이가 있다. 클래식은 규칙성을 미덕으로 삼는다. 반면 재즈에는 정해진 규칙이 없다. 되레 클래식처럼 재즈를 연주하면 지루하다고 비판받기 십상이다. 그래서 재즈는 미국과 닮은 장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정해진 틀 없이 다양한 민족이 뒤엉키듯 각국의 민속 음악이 재즈에 안착했다. 블루스, 소울, 탱고, 살사, 컨트리 등 모든 장르를 아우른다.

재즈가 융합의 장르가 된 기반엔 ‘래그타임(Rag time)’이 있다. 래그타임은 1890년대 흑인 피아니스트들의 연주 스타일을 뜻한다. ‘래그(누더기)+타임(박자)’이란 단어처럼 당김음을 활용해 들쑥날쑥한 박자를 조성하는 게 특징이다.

20세기 초 흑인 피아니스트들의 가장 큰 무기였다. 정갈한 백인 피아니스트 연주와 차별점을 둔 것. ‘래그타임의 왕’이라 불리던 스콧 조플린(1868~1917)이 대표적이다.

조플린의 대표곡 ‘엔터테이너’에서 래그타임의 진가가 드러난다. 악보는 클래식과 비슷하다. 하지만 연주 방식에서 큰 차이가 있다. 강한 박자와 여린 박자를 악보와 반대로 쳤다. 엇박자가 나오며 아프리카 민속 음악의 리듬이 형성된다. 악보에 적힌 바를 정확하게 치던 클래식의 틀을 깨트린 셈이다.

조플린은 재즈가 중흥하기 직전인 1917년 숨을 거뒀다. 하지만 래그타임은 뉴올리언스로 넘어가 블루스와 결합했다. 당시 블루스는 미국 남부 소작농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이들은 백인이 남긴 기보법을 전혀 따르지 않았다. 음정을 불안정하게 끄는 연주법인 ‘벤트 노트’를 내세웠던 것. 블루스와 래그타임이 결합하자 박자와 음정 모두 뒤틀린 재즈가 나왔다. 고상하면서도 저속한 음악이 탄생한 순간이다.

왜 뉴올리언스에서 재즈가 창시됐을까. 뉴올리언스의 역사적 배경을 알면 이해가 쉽다. 프랑스, 영국, 스페인, 남미 등 온갖 곳에서 온 이주민들이 한데 엮인 지역이었다. 공존을 위해 개방성은 필수였다.

전염병 가설도 있다. 미국 최고의 음악사학자로 불리는 테드 지오이아는 전염병이 창궐한 지역에서 새로운 문화 양식이 창시됐다고 주장했다. 불안감을 내쫓기 위해 예술에 대한 갈망이 증폭됐다는 설명이다. 14세기 흑사병이 창궐한 뒤 피렌체에서 르네상스가 꽃피웠고, 16세기 런던 인구의 25%가 흑사병으로 사망할 때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나왔다. 19세기 뉴올리언스에도 황열병이 창궐했다.

어떤 이유에서든 뉴올리언스에서 창시된 재즈는 미시시피강 상류를 따라 미국 전역에 퍼졌다. 최종 도착지는 1920년대 뉴욕 클럽. 세계 최고의 도시를 재즈가 지배하면서 세계로 뻗어나갔다. 그렇게 오늘날까지 재즈는 계속 성장해왔다.

재즈가 진화하는 시점마다 등장하는 연주자가 있다. 작곡가 겸 트럼페터 마일스 데이비스(1926~1991) 얘기다. 그는 음반을 낼 때마다 재즈라는 장르의 영역을 확장했다. 끝없이 현세대와 소통한 선구자라고 평가받는다. 펑크, 아프리카 음악도 재즈에 담았다.

데이비스가 낸 음반들처럼 재즈는 그 자체로 포용의 장르였다. 대표적인 일화가 있다. 1959년 8월 뉴욕 공연장 앞에서 담배를 피우던 데이비스를 백인 경찰이 일방적으로 폭행했다. 경찰이 데이비스를 조롱하려고 신분증을 요구하며 집단 린치를 가한 것. 흑인 사회는 들끓었다. 데이비스는 같은 해 백인 피아니스트 빌 에번스와 함께 클래식 작곡법을 재즈에 도입한 ‘카인드 오브 블루’를 선보였다. 당시 흑인 사회에선 “백인스럽다”는 그를 질타했다. 하지만 데이비스는 이 작곡법을 고수하며 모던 재즈를 알렸다. 직설적이고 모난 성격으로 유명한 데이비스도 재즈 앞에선 포용을 택한 것이다.

50여 년이 흐른 2011년 유네스코에선 매년 4월 30일을 ‘세계 재즈의 날’로 지정했다. 인류의 화합과 단결, 평화에 기여하는 재즈의 미덕을 기리려는 의도였다. 이를 두고 지오이아는 “재즈는 개인의 자율성을 강조하면서도 늘 하층계급의 문화에 관심을 기울여왔다”고 평가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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