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커 같았던 그시절 '라떼'는 말야

입력 2023-05-03 18:04   수정 2023-05-04 02:39

1999년. 나는 서울예술대 실용음악과를 졸업한 뒤 동기들과 함께 록 밴드를 만들어 실용음악과 최초로 홍대 클럽에서 연주하기 시작했다. 당시 나의 외모를 돌이켜보면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에 사계절 가죽옷을 입고 다니던, 전형적인 로커의 모습이었다. 젊은 독자들은 이 모습이 우습고 낯설게 느껴지겠지만, 그때는 음악을 한다면 그 정도 외모는 갖춰야 어디 가서 명함을 내밀었다. 당시, 홍대 인디씬에서 주목받는 신인 밴드였던 우리 밴드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공연을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그러고는 뜬금없이 뮤지컬 오디션을 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그건 나에게 마치 길에서 만나는 ‘도를 아십니까?’ 같은 제안이었다. 연기도 춤도 춰본 적 없는데 뮤지컬 오디션이라니…. 하지만 노래만 부르면 된다는 말에 호기심이 동해 원서를 접수하고 말았다. 오디션 당일, 분신이었던 가죽바지와 가죽점퍼 그리고 웨스턴 부츠를 신고 오디션장인 호암 아트홀로 향했다. ‘여기 올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듯한 기획사 직원의 묘한 눈초리를 받으며 배우 대기실을 안내받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문을 여는 순간, 소란했던 대기실은 순간 정적이 흘렀다. 오디션장에 있던 배우들은 긴 머리의 가죽옷을 입은 로커의 등장에 놀랐고, 나는 영화에서나 보던 형형색색의 헤어밴드와 무용복을 입은 배우들이 다리 찢고 있는 모습에 놀라 차마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다”고 했지만 노래만 부르면 된다는 말에 용기를 내 다시 대기실에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마치 죄인처럼 대기실 구석에 앉아 긴 머리로 얼굴을 가리고 머리카락 사이로 주변을 살피던 중, 오디션 안무를 배우러 모두 모이라는 말에 얼떨결에 휩쓸려 오디션장에 들어갔다.

배우들은 조 안무가의 시범을 바로 따라 하며 순식간에 어려운 안무를 외워서 해내고 있었다. 나는 제일 구석에 서서 그 모습을 그저 신기하게 바라만 봤다. 잠시 후 다섯 명씩 오디션을 보기 시작했다. 이어진 노래 오디션 시간. 다들 뮤지컬 곡을 부르는데 아는 뮤지컬 곡이 없던 나는 당시 애창곡이었던 록 밴드 이글스의 ‘데스페라도(Desperado)’를 불렀다. 좋은 경험했다고 생각하며 다시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데 1차에 합격했으니 2차 연기 오디션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1차 합격한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연기 오디션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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