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잘라" 적반하장 채용비리 합격자…법원서 '연승'한 이유는 [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입력 2023-05-14 12:30  



채용 비리로 합격한 은행직원이 "몰랐다"고 주장하는 경우 해고할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관련 규정의 공백 탓이다. 그 결과 지난 2017년 적발된 금융권 대규모 채용 비리를 통해 채용된 직원 중 상당수는 해고가 무효라는 소송 등을 내며 여전히 은행 창구를 지키고 있다.

2020년 경 일부 은행들은 "채용 비리 당사자들에 대한 채용취소 절차가 마무리 됐다"고 서둘러 봉합했지만, 법적 근거가 불분명한 해고에 대한 '청구서'가 돌아오고 있다는 평가다.
○채용 비리 사실 확인됐는데"해고 안 된다"
특정 기관에서 장교로 군 생활을 했던 A는 2016년 하반기 B은행 신입 공개채용에 지원해 합격했다. 하지만 2017년 금융감독원 국정감사에서 금융권 기업들의 공채 과정에서 채용 청탁에 따른 대규모 부정 입사 의혹이 제기됐다.

검찰 수사 결과, B은행 채용 업무를 총괄담당한 대표이사, 인사담당 상무, 인사부장 등은 △서류전형 점수 미달로 불합격 지원자를 합격 처리하거나 △면접 불합격권인 지원자의 점수를 조작해 합격 처리한 사실이 적발돼 대법원서 '업무방해죄'로 유죄판결을 받게 됐다.

A의 경우는 군 선배인 B은행 간부 직원이 "A가 B은행의 주요 거래처인 기관에서 군 생활을 했다"고 알렸고, 이에 임원들이 B의 성적을 '조작'하면서 합격하게 된 정황이 밝혀졌다. 재판 과정에서 A는 면접서 '확실한 불합격권'으로 분류가 된 점도 확인됐다.

B은행은 A에 사직을 권고했지만 A는 거부했다. 되레 "(자신을 추천한) 부장에게 연락한 적이 없다"는 소명서까지 제출했다. B 은행은 결국 2021년 2월 A에 퇴직 통지서를 발송했다. 이에 A가 중노위에 '부당해고' 구제심판을 제기했고 중노위가 A의 손을 들어주자 B은행이 중노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

서울행정법원은 지난해 12월, 중노위와 마찬가지로 B은행의 청구를 기각했다.

법원은 "채용 부정에 A가 직접 개입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며 "A의 귀책사유가 인정되지 않으므로 퇴직 사유가 발생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해 A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이어 "A가 행원으로 4년 동안 일하는 동안 근무 능력이 불량하거나 미흡하다는 사정도 발견되지 않는다"라고도 지적했다.

B은행은 이밖에도 같은 취지의 소송에서 '연전연패' 중이다. 지난해 8월에도 부정청탁으로 채용된 직원 C를 해고했다가 패소했다.

형사처벌된 이 은행 인사 상무는 검찰 조사과정에서 "지점장을 할 때 알게 된 거래처 사장이 '딸(C)이 (입사 원서를) 넣었다'고 연락을 줬다"고 진술했다. 채용 팀장도 "(인사상무의 보고를 받은) 은행장의 추천 없이는 (합격이) 힘들었을 것"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C 역시 퇴사를 완강히 거부했다. C는 “채용 과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며, 나름 준비해서 합격했다”며 "혼자 짊어지고 나가라는 것이냐"고 반발했다.

이 사건에서도 법원은 "C가 서류 전형 불합격권이었던 점, (형사처벌 받은) 인사담당 상무가 부정 채용에 개입된 점은 맞다"면서도 "C를 해고하려면 업무상 중대한 고의·과실 등 귀책사유가 있어야 하는데, 아버지가 딸의 지원 사실을 알렸다는 점만으로 C 본인에게 잘못이 있다고 볼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나는 몰랐다" 잡아떼기... 왜 통할까?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금융권 채용 비리 척결을 지시했고, 기재부도 이에 따라 "부정합격자는 검찰 수사 끝에 기소만 되면 즉시 '퇴출'한다"는 지침을 내렸다. 명을 받은 금융기관들은 앞다퉈 해고에 나섰지만, B은행처럼 법원에서 패소해 해당 근로자를 복직시키라는 판결문을 받아드는 사례가 적지 않다.

'사이다'가 없는 이유는 뭘까. 법률상 공백 탓이다.

일각에서는 '채용 과정에서 문제가 있으니 '채용취소'를 하면 되지 않나'라고 의문을 표한다. 하지만 이미 근로계약이 성립된 이후 채용 취소는 사실상 '해고'에 준하는 사유가 필요하다. 혹은 민법상 근로자의 △사기·강박(107조)이나 △채용기업의 중대한 착오(109조)가 있는 등 입증 요건도 까다롭고 아주 예외적으로만 가능하다.

결국 기업들도 울며 겨자 먹기로 '징계 해고'라는 우회로를 선택한다. 하지만 앞서봤듯 해고에는 '근로자의 업무상 중대한 고의·과실' 등 요건이 필요하다. 앞서 두 사건처럼 채용 당사자들이 "제3자가 했고 나는 몰랐다" "업무 능력엔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면 책임을 묻기 어렵다.

2017년 당시 노동법 전문가들도 이를 내다봤다. 일부 민주당 의원들이 이를 인식하고 다수의 법안을 발의했지만 통과는 지지부진했다. 그 결과 국민은행, 대구은행, 우리은행 등에서는 채용비리 합격자의 상당수가 소송을 통해 복직하거나 여전히 은행을 다니고 있다. 지난 3월에는 하나은행 채용비리 관계자들에 대한 형사처벌이 대법원에서 확정됐지만, 이 역시 채용비리 합격자들의 해고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결국 최근 국민의힘 노동개혁특위는 이 문제 해결을 제1과제로 뽑았다. 청년들의 공정성 의식과 일반 국민들의 법감정을 감안한 것이다. 특위는 다음 주 중 '공정채용법' 제정을 통해 '채용 비리'의 결과물은 합격자에 대해 '채용취소'를 할 수 있는 규정을 도입하겠다는 방침이다.

해당 조항에 따르면 채용 비리와 관련해 기업 인사담당자 등에게 ‘유죄 판결‘이 확정된 경우, 합격자의 채용을 취소할 수 있다. 이 경우 A와 C처럼 채용비리가 확인되고 인사담당자들의 형사처벌이 확정된 경우, 당사자가 잡아 떼더라도 해고가 가능하다. 징계해고라는 우회수단도 필요 없다.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채용취소를 통해 근로계약의 효력을 부인한다면 결과의 공정도 어느정도는 확보될 수 있지만, 당분간은 그 해석을 두고 법적 분쟁이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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