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고택, 다시 빛을 내다

입력 2023-05-18 18:06   수정 2023-05-19 02:15


건축은 시대를 담는다. 공간은 생각을 만든다. 집이 그렇다. 서양이 철저히 고립된 산속에 높은 성을 짓는 동안 동양은 땅과 가장 가까이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집을 꿈꿨다. 아파트가 수직이라면 고택(古宅)은 수평이다. 초고층 빌딩이 모험과 욕망의 상징이라면 고택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순응이다. 아파트와 빌딩이 도시를 이루고 장악한 지 수십 년. 우리는 다시 수평의 집을 찾는다. 한국인이 몰랐던 한국의 보물, 고택이 된 한옥 이야기다.

한옥 마루에 앉아 마당의 풍경을 바라본 사람은 안다. 네모난 땅에 사뿐히 내려앉은 한국의 집들은 그 각각이 세상의 모든 계절을 벗 삼아 사는 하나의 우주였다는 것을. 하늘에 맞닿을 것처럼 치솟아 멀리서도 반짝거리는 새 아파트에 나만의 둥지를 트는 것. 여전히 많은 이들의 가슴 속 로망이지만 다른 한편에선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고택에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오래된 집에선 많은 일이 벌어진다. 나무 기둥과 처마를 그대로 둔 채 내부만 모던하게 개조해 근사한 레스토랑과 바가 되기도 하고, 커피를 마시며 느긋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카페가 되기도 한다. 실제 그곳에 살았던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미술관이 되고, 명품 브랜드의 쇼룸으로도 바뀐다. 샤넬도, 구찌도 요즘은 시간이 축적된 한옥과 고택을 찾아다니지 않던가. 고택에 머문다는 것은 단지 장소의 의미를 넘어 오래된 이야기를 앞으로도 이어간다는 의미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 익숙한 것과 낯선 것의 경계를 묘하게 넘나드는 고택은 그렇게 다시 귀한 몸이 됐다. 마치 시간이 지날수록 맛과 향이 응축되는 위스키처럼 사람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고택은 도시인들이 탐내는 대상이 됐다. 한동안 철거의 대상으로만 여겨지던 낡디낡은 고택이 이렇게 우리를 맞이할 줄 누가 알았을까.

고택은 그리 멀지 않다. 서울 대구 부산 등 대도시 도심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별채를 카페로 내주고 손님을 맞이한 500년 전통의 한옥 종갓집부터 골목 속에 숨겨진 프라이빗 호텔까지. 삶의 궤적을 따라 다양한 사람의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고택으로 떠나본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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