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총 앞두고 중대 실수 저질렀다"…주주들 울린 '초유의 사고' [돈앤톡]

입력 2023-05-21 07:18   수정 2023-05-21 14:41

A 외국계 자산운용사가 B 상장사 주주총회를 앞두고 '국민연금 허락을 받지 않은 물량에 대해서도 의결권을 제출(행사)'하는 중대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B 상장사도 주주명부 확인 과정에서 이런 오류를 걸러내지 못했습니다. 문제는 이 실수로 감사위원 당락이 뒤바뀌었단 겁니다. 쉽게 말해 "(애초 표결대로라면) 될 사람이 안 되고 안 될 사람이 된" 셈입니다.

금융소설 속 이야기가 아닙니다. 실제 올 3월 우리나라 주식시장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A는 이스트스프링자산운용, B는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인 KISCO홀딩스(키스코홀딩스)입니다. 이번 일을 두고 당국 관계자들부터 금융권 인사까지 "전무후무한 사고"라며 고개를 내저었죠. 일단 표결이 잘못 집계됐으니 결과를 바로잡아야 할텐데요. 이런 가운데 KISCO홀딩스가 당장은 정정공시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모두가 '잘못된 위임장 행사가 있었다'는 점에 공감하는데도, 막상 결과가 번복되진 않고 있는 겁니다.
KISCO홀딩스 "정정공시 않겠다"…'주총 의결 하자여부' 쟁점
21일 <한경닷컴>이 입수한 내용증명 자료에 따르면 KISCO홀딩스는 지난 16일 이스트스프링 측에 '정정공시를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강경한 입장을 전달했습니다. 이달 초 이스트스프링이 회사에 정정공시를 촉구하는 '정기주총 결의하자 치유 요청의 건'을 보낸 데 대한 답변입니다.

회사는 이 회신에서 "우리 회사가 받은 이스트스프링 명의의 위임장에는 운용사 법인인감이 날인돼 있고, 사업자등록증과 법인인감증명서가 첨부돼 있어서 위임장 기재를 신뢰했던 것"이라며 "국민연금이 행사했어야 할 의결권을 잘못 제출했다는 게 이스트스프링 입장이지만, 실상 우리로선 운용사와 국민연금이 투자일임 계약을 맺었는지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회사는 운용사로부터 제출 받은 주주명부엔 주주가 '국민연금'이 아닌 '이스트스프링액티브퀀트201612'라고 돼 있어서 펀드 운용사인 이스트스프링이 의결권 행사 주체인 것으로 파악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KISCO홀딩스는 "이번 정기주총의 진행과 결의방법과 관련해 어떤 하자도 없다"며 "때문에 정정을 요청하는 이스트스프링의 요청 자체가 부당해 우리가 여기에 응할 이유가 전혀 없다. 의결권 위임과 관련해 법정 분쟁이 발생하면 이는 전적으로 운용사의 책임"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같은 회신에 이스트스프링은 지난 19일 오후 법원에 '주총 결의 취소의 소'를 제기했습니다. 주주연대 측도 오는 22일 중 같은 소송을 제기하기로 했습니다. 주총 결의 취소 소송은 주총 결의일로부터 2개월 내 제기해야 하는데, 이번 건의 경우 그 기한이 이달 24일입니다. 상법에 따르면 주총 결의방법에 하자가 있는 경우 주주나 이사, 감사가 주총 결의취소의 소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즉 KISCO홀딩스는 "주총 결의에 하자가 없어서 정정공시를 못한다"는 입장이고, 이스트스프링과 주주연대 측은 주총 결의에 하자가 있기 때문에 정정공시를 해야한다"는 주장을 펴는 상황이죠. 실상 '1차 원인 제공자인 이스트스프링이 소액주주 측과 함께 KISCO홀딩스에 맞서는' 기묘한 구도가 형성된 건데요. 정정공시 여부는 소송 결과에 따라 결정될 전망입니다.

다만 소송전으로 갈 경우 여느 소송이 그렇듯 이번에도 시간과의 싸움이 될 전망입니다. 정정공시와 다른 점은 주총 결과를 수정하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미지수라는 얘깁니다. "KISCO홀딩스가 가장 쉬운 방법인 정정공시를 안 하겠다니, 어쩔 수 없이 차선책을 택하는 것"이라는 게 운용사와 주주연대 측 입장입니다.
"초등 반장선거도 안 할 실수를"…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났고, 왜 아직까지 해결이 안 되고 있는 걸까요. 지난 3월 24일 공시된 '정기주총결과'와 이달 15일 공시된 '분기보고서'에선 기존 사외이사 선임 결의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공시는 경영 투명성과 직결되는 중요한 요소인데, 돌아가는 상황을 모르는 주주들은 답답하기만 합니다. 국민연금이 운용사에 자금을 맡겼다가 생긴 일이니, KISCO홀딩스 주주뿐 아니라 일반 투자자들도 반발할 대목이죠. 시계를 조금 앞으로 되돌려, 운용사 실수로 주총 결과가 뒤바뀐 이 사고를 다시 짚어보겠습니다.

KISCO홀딩스는 당시 주총을 열고 김월기 씨를 비롯한 3명을 감사위원으로 선임했습니다. 김 씨가 받은 표는 322만6758표로, 소액주주 연대가 추천했던 또 다른 감사위원 후보 심혜섭 변호사보다 2만3696표를 더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감사위원 선출 결과는 KISCO홀딩스 주주연대를 중심으로 반발을 샀습니다. 주주들은 지난 9일 '김 씨가 받은 표 중 이스트스프링자산운용이 던진 2만4507표가 무효'라는 주장을 처음 내놓았습니다.

이스트스프링은 의결권 행사가 가능한 '위탁 운용분'(833주)뿐 아니라, 국민연금으로부터 자금을 일임받아 '액티브퀀트펀드'에 편입해서 운용 중인 주식(2만4507주)까지 포함해 총 2만5340주에 대한 표를 행사했는데요. 이 중 2만4507주는 국민연금으로부터 의결권을 위임받지 않은 '일임 운용분'이었으니, 무효라는 겁니다. 만약 이스트스프링운용이 낸 표가 무효표로 인정될 경우 심 변호사는 김 씨보다 800여표를 더 득표한 게 됩니다.

자산운용사가 의결권 등 주주권을 위임받는 방식은 크게 펀드계약과 일임계약으로 나뉩니다. 펀드계약의 경우, 자산소유자가 자산운용사의 운용에 간섭할 수 없도록 규정돼 있어서 자산운용사가 펀드에 편입된 개별주식들에 대한 주주권을 갖습니다. 하지만 일임계약에선 주주명부에 운용사의 이름을 주주로 올릴 수 없게 합니다. 운용사 대비 자산소유자의 역할이 큰 겁니다. 때문에 운용사가 일임 받은 주식에 대한 권한을 행사하려면 먼저 국민연금으로부터 의결권을 위임받아야 합니다. 이스트스프링도 투자일임업자로서 국민연금 허락 없이 일임 운용분에 대한 의결권을 제출한 게 문제인 거죠.

정확히 같은 경우는 아니겠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어볼게요. 투표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반장선거 시 대리투표를 허용한 한 초등학교가 있다고 가정해 봅니다. 교칙에 따르면 반 학생들은 1명당 1투표권을 가지지만, 교생선생님들의 경우 1명당 5투표권의 효력을 갖습니다. 대신 교생선생님이 여러 반씩 맡다보니, 모든 교실의 반장선거에 참여할 수 없는데요. 때문에 대표학생 한 명이 교생선생님의 사인을 받아오는 대가로 그의 투표지까지 제출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A 교실도 교생선생님 대면 참여 없이 선거를 치러야 하는 곳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이 대표학생이 선생님께 의견을 묻지 않고도, 선생님 투표지 5장과 자신의 투표지 1장 등 총 6장에 자신이 원하는 후보를 적어 냈습니다. 교생선생님 투표지는 다른 학생들과 색깔이 구분돼 있었지만, 표를 집계한 A 교실의 담당 교사도 특별한 검증 없이 집계했습니다. 그 결과 3표차로 대표학생이 찍은 친구가 반장이 됐습니다. 한 학생의 단순 실수가 결과를 뒤집은 겁니다.

이스트스프링 측은 실수로 위임장이 잘못 행사된 것을 인정하고 적극적인 수습에 나선 상태입니다. 운용사는 언론으로 공론화가 된 날 입장문을 내고 "의사를 작성, 제출하는 과정에서 막내 직원의 실수로 5억원 상당의 일임계좌 보유분까지 착오 기재됐다. 명백히 자사 업무처리상의 의도치 않은 실수"라며 "책임감 있게 해결해 나가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소송도 결국 제기했고요.

하지만 결정적인 원인 제공자란 점에서 운용사에 책임을 물어야한다는 목소리가 작지 않습니다. 운용사 실수로 인해 주총 결과가 뒤집혔기 때문에, 고의성을 뺀다고 할지라도 '중대 과실'임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일부에선 국민연금이 계약사항 위반 등으로 투자일임 계약을 해지할 가능성도 거론됩니다. 한 번 계약이 해지되면 2년간 국민연금으로부터 투자를 위임받지 못합니다.

KISCO홀딩스도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순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회사 재무팀은 운용사로부터 위임장을 받으면 주주 정보들을 '크로스 체크'하는 작업을 합니다. '주주명'과 '주주 실명번호'(사업자등록번호), '주소', '보유주식 수' 등을 대조해 가며 주주임을 확인하는 것인데요. 이스트스프링이 제출한 주주명부에서 문제가 됐던 국민연금 일임운용분을 살펴보면, 실명번호와 주소는 국민연금의 것으로 돼 있습니다. 일임운용분과 운용사의 직접 보유분 주식 수도 다르게 써 있고요. 때문에 주주명만으로 자산소유자가 국민연금임을 알기 어려웠다고 해도, 주주 실명번호 등을 대조해 봤더라면 일임분이라는 것을 바로 확인할 수 있었던 거죠. 고의인지 실수인지 여부는 지금 따져보기 어렵지만, 불상사를 막을 기회를 회사도 놓친 겁니다.

더불어 국민의 돈이 부여한 의결권을 엉뚱하게 행사되기까지 감시를 소홀히한 국민연금에도 지적이 이어지고 있고요.
잘잘못 따지기 급급…"주주 신뢰 위해 결과부터 바로잡아야"
잘잘못을 따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시급한 것은 당사자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주주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일 겁니다. 전례를 찾기 힘든 사고였기 때문에, 이해 관계자들의 대응이 추후 선례로 남을 가능성이 큽니다.

운용사·상장사의 황당한 업무 실수로 감사위원 자리를 다른 이에게 내준 심혜섭 변호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각사는 고의여부, 책임소재 등을 갖고 다투고 있는 데 급급하다. 결국 지난 주총에서의 표결이 무효란 점엔 모두 동의하는 것인데, 놀랍게도 결과는 달라진 게 없다"며 "KISCO홀딩스 소액주주 대표로서, 또 감사위원 후보자로서 회사가 잘못된 기존의 결과를 바로잡아주길 촉구한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사방에서 정정공시를 압박 받는 KISCO홀딩스는 "억울하다"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이번 사고 당사자인 이 회사의 재무관리 담당은 기자와 통화에서 "운용사가 보낸 위임장의 펀드명가 실질 주주명부의 주주명이 일치하는 것을 보고 의결권이 행사되도록 한 것"이라며 "운용사 자료를 토대로 결정했으므로 일임 운용분을 집계에 넣은 것을 과실이라 볼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주총은 결의사항이고, 결의가 끝난 부분이 일반 투자자들에게 공시됩니다. 정정공시는 결의 내용과 공시 내용이 다를 때 수정하는 것인데, 이를 단행하면 절차에 하자가 있었다고 회사가 직접 인증하는 셈이 됩니다. 정정공시를 내면 자칫 잘못을 인정하는 모양새로 비칠 것이라는 게 사측 우려인 것으로 보입니다.

법조계 전문가들에 의견을 구해보니 정정공시를 내기보다는 주총을 다시 여는 게 회사 입장에선 안전한 대처라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한 법무법인 전문위원은 "사실관계가 제3자 등을 통해 입증이 안 된 상태에서 섣불리 정정공시부터 내면 오히려 법적인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KISCO홀딩스 재무관리 담당자는 "주주연대뿐 아니라 운용사까지 화살을 우리로 돌리는 가운데 정정공시를 내게 되면, '우리 회사가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밖에 더 되는가. 더군다나 우린 원인 제공자도 아니다"면서 "결론을 내기 조심스러운 만큼 정정공시를 비롯해 여러 선택지를 다각도로 검토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파장이 계속되자 금융감독원도 조사에 들어간 상태입니다. 금감원 관계자는 "해당 상장사나 운용사가 주장하는 바가 서로 다른 지점이 있다"며 "당초 이런 사례가 없었어서 신중히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국민연금 측도 "사정을 파악해 국민연금 차원에서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있는지 검토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직전 거래일인 19일 KISCO홀딩스 주가는 1만9980원에 장을 끝냈습니다. 이번 주총 사고가 알려진 뒤 8거래일간 주가는 6.4% 밀렸습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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