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훈 칼럼] 10대 경제강국 좀먹는 악당들

입력 2023-05-24 17:47   수정 2023-05-25 00:35

도둑들이 너무 많다. 대도(大盜) 전성시대다. 개발경제 시대의 신출귀몰, 조세형은 차라리 소박했다. 나랏돈, 회삿돈, 고객돈 가리지 않고 빼먹는다. 얼마 전 감사원에 적발된 시민단체들은 정부 보조금을 골프, 자녀 유학비, 가족·지인 월급으로 착복했다. 윤미향 횡령 건은 특출난 것도 아니었다. 돈에 환장하는 사회다. 회사원 횡령 사고는 금액이 너무 커 현실감이 없을 정도였다. 오스템임플란트에선 직원 한 명이 무려 2215억원을 빼돌렸다. 열받은 대주주는 회사를 팔아버렸다. 우리은행과 계양전기 직원도 수백억원대를 해먹었다. 꼬리가 길어 들킬 가능성이 높은데도 도망치지 않았다. 양심의 통각이 마비되면 나타나는 불감증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권력 주변 인사들의 결탁으로 의심받은 3종 사기 세트(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 펀드)는 투자자들에게 무려 2조원이 넘는 피해를 줬다. 어찌 된 일인지 수사 부진과 재판 지연 등으로 아직도 사건 전모가 규명되지 않고 있다.

권력형 비리나 금융 범죄로 넘어가면 얼굴에 철판 까는 사람들을 본다.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당당함을 넘어 피해자 행세까지 한다. 김남국 의원의 코인 난장은 절망적이다. 국회의원의 금융 거래와 투자가 그렇게 불투명하고 난잡할 수 있을까. 이런 인물이 어떻게 세상사에 호통치게 된 것일까. 속속 드러나는 거짓과 허물에도 검찰 수사의 희생양 행세를 하며 당당한 것일까. 희한하게도 주가조작범 라덕연에게 똑같은 방식의 질문이 가능하다. 무명이나 다름없는 투자자문업자가 어떻게 그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었으며, 무엇을 믿고 체포 직전까지 ‘돈 먹은 사람이 범인’이라며 피해자 행세를 한 것일까. 그리고 이름만큼이나 베팅이 셌던 김만배의 대장동 스캔들을 빼놓을 수 없다. 한때 대선주자였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연루되고 검수완박에서 체포 동의안 부결로 이어지는 방탄정치가 펼쳐지자 국회는 엉망진창이 돼버렸다. 그의 측근 이화영은 쌍방울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돼 한때 호형호제하던 사이비 기업인과 진실게임을 벌이고 있다. 대부분 자신의 과오와 허물을 인정하거나 사과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세계 10대 경제강국이다. 인구, 국민소득, 교육 수준, 기업의 국제화, 첨단 기술과 한류 등은 웬만한 선진국 부럽지 않은 국가적 포트폴리오다. 하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과연 이 나라가 하드웨어에 걸맞은 소프트웨어를 갖고 있는지에 자괴감을 느끼게 된다. 껍데기는 그럴듯한데 안으로는 곪아 터지고 있다. 고위공직자와 사회 지도층 비리는 일반 범죄보다 충격과 파장이 훨씬 크다. 국격을 훼손하고 위신을 추락시킨다. 하지만 그들을 비판하고 제재해야 할 사회의 정의감은 내 편, 네 편을 갈라 선택적으로 작동한다. 이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하고 위중하다. 개인 도덕을 타인으로 확장한 것이 정의감이다. 동물들에겐 없는 것이다. 원숭이들은 무리 속에서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을 참지 못하지만 다른 원숭이들이 당하는 피해는 모른 척한다. 인간은 다르다. 자신이 아니라 타인에게 가해진 불의에 대해서도 기꺼이 분노하고 제재를 요구한다.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만드는 원천인 문명은 도덕과 정의라는 거대한 강물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것이다. 서로 다른 문명에서 가다듬어진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율법이 본질적으로 닮은 이유다.

정의감이 고장 난 사회의 악당들은 갈수록 대담해진다. 원숭이의 약점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터졌다 하면 수천억원에서 조 단위 스캔들이다. 얼마 전에는 또 다른 투자자문업자의 대규모 폰지 사기가 불거졌다. 과거 다단계 사기 피해는 주로 정보가 부족하고 경험도 모자란 서민층에 돌아갔다. 요즘은 거액 자산가들이 많이 걸려든다. 그동안 돈을 어떻게 벌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부나방처럼 뛰어든다.

우리 사회는 탐욕을 절제하는 법을 어느새 잊어버린 듯하다. 코인 광풍 앞에서 2억원, 3억원은 푼돈이 돼버렸다. 빚을 두려워하지 않고 연 5%의 예금이자를 고마워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한 방이다. 테라·루나 사태의 장본인 권도형이 “나는 전혀 잘못한 것이 없다”고 우기는 배경일 것이다. 모두 대박 신드롬으로 빠져든다. 연예인이나 일반인이나 말끝마다 어법에도 없는 ‘대박’을 연호하는 것은 그 신드롬의 연장이다. 권력과 돈 앞에서 우리들의 자화상은 조금씩 일그러져 간다. 허욕에 찌든 눈빛, 도덕과 정의감의 퇴화, 부끄러움을 모르는 말들이 한국의 소프트웨어를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다. 결국 하드웨어도 망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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