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소리의 질감을 갖고 씨름하는 날이 있다. 들꽃잎처럼 여린 소리와 그 꽃의 줄기처럼 강한 소리가 완벽한 비율로 공존해야 하는 슈베르트 판타지를 연습하는 날들이 그렇다. 활 털이 아슬아슬하게 줄을 간질거리는 마찰을 만들어 내려면 팔꿈치의 위치와 오른팔이 열리는 속도와 각도, 그리고 손안에서 느껴지는 활의 밸런스를 1g 단위로 느껴야 한다.이런 날에는 신경이 머리끝까지 곤두선다. 아주 작은 소리까지 들어야 하는 귀에는 날이 선다. 오른팔을 계속 높게 들고 서 있다 보면 어깨에 경련이 온다. 무엇보다 신경질적으로 변하는 마음을 견디기 힘들다. 이런 날엔 섬세하고 우아한 클래식 소리가 정말이지 지겨워 죽을 것 같은 순간이 온다.
RATM의 데뷔 앨범은 반항아적인 사운드가 날것의 느낌으로 표현된 명반이다. ‘니가 하라는 대로는 안 해’란 가사처럼 그들의 사운드는 정제돼 있지 않으며, 분노로 가득 차 있고, 자유를 갈망한다. 이 불량한 반란자들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나도 연주의 관습에서 벗어나 작곡자의 텍스트 자체를 나만의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는 용기와 자유를 얻는 것 같다.
RATM이 음악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건 아마도 상식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세상에 대한 불만이리라.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게 이뤄지지 않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큼 화나는 일은 없으니까. 이런 좌절감을 표현하는 RATM의 음악적 방식은 반복이다. 이 앨범의 모든 곡은 파워풀하고 쫄깃한 기타 리프를 반복·변형·고조시키며 진행된다. 작곡자가 반복을 이용하는 건 같은 틀을 유지하면서도 이야기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나타내는 것이다.
누군가 내 영역을 침범하는 날, 정당하지 않은 일을 감내해야 하는 날, 모든 것이 답답해 다른 세상으로 훌쩍 떠나고 싶은 날에는 RATM이나 슈베르트가 이끄는 판타지의 세계로 나를 맡겨보자. 내 안의 꼬인 감정을 풀어내는 방식은 중요하지 않다. 오늘을 살아내 내일로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까. 나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이라면 그것이 랩이든, 바이올린이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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