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몸에 노란 얼굴…SPC 빌딩 앞을 지키는 아이언맨 돌탑 [이선아의 걷다가 예술]

입력 2023-06-01 18:01   수정 2023-06-02 02:25


서울 지하철 이태원역과 한강진역 사이, ‘힙스터들의 성지’ SPC 패션파이브 앞에는 사람보다 훌쩍 큰 3m 높이의 ‘돌탑’이 있다. 거대한 형광빛 빨간색 돌 위에 작은 노란색 돌이 아슬아슬하게 올라가 있는 모습이다. 강렬한 색깔 덕분에 이 돌탑을 보고 ‘아이언맨’을 떠올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

‘미술 좀 아는 사람’들은 한눈에 알아챈다. 이 거대한 ‘아이언맨 돌탑’이 바로 스위스 출신의 세계적인 설치예술가 우고 론디노네(59)의 ‘옐로 레드 몽크(Yellow Red Monk)’라는 것을. 론디노네는 현대 미술계에서 가장 ‘핫’한 작가 중 한 명이다. 그의 작품은 글로벌 경매에서 수억원대에 거래된다. 2019년 소더비 경매에선 네 개의 돌로 이뤄진 ‘옐로 레드 화이트 블루 마운틴(Yellow Red White Blue Mountain)’이 110만달러(약 14억원)에 팔렸다. 이쯤에서 드는 궁금증. 형광빛 페인트를 칠한 돌로 론디노네는 어떻게 세계적인 작가가 된 걸까. 도대체 이 돌들은 어떤 의미가 있길래 ‘억대’에 팔리는 걸까.
○RM도 반한 무지개색 돌탑

답을 찾으려면 론디노네의 대표작을 먼저 알아야 한다. 그를 세계적 작가로 만든 건 미국 서부의 대표적 관광지인 ‘세븐 매직 마운틴스’다. 라스베이거스 근처 네바다 사막 한가운데 높이 솟아오른 10m 높이의 형형색색 돌탑이다.

작품을 만드는 데만 꼬박 4년이 걸린 대형 프로젝트였다. 론디노네는 돌 가운데 구멍을 뚫은 뒤 쇠기둥을 넣어 돌들을 연결했다. 어찌나 인기가 많은지, 2016년 설치 후 2년만 전시될 예정이었던 세븐 매직 마운틴스는 2027년까지 전시기간이 연장됐다. 미술 애호가로 소문난 BTS의 리더 RM도 지난해 이곳을 방문해 ‘인증샷’을 남겼다.

론디노네의 돌탑이 ‘핫 플레이스’가 된 건 바로 ‘색깔’ 덕분. 주황색, 노란색, 파란색, 하얀색, 분홍색…. 론디노네는 거칠고 울퉁불퉁한 돌덩어리에 화려한 형광 색깔을 하나하나 입혔다. 모래바람이 부는 황량한 사막과 강렬한 대비를 이루고 있는 형형색색의 돌들은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론디노네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연과 인공, 과거와 현재. 그는 일반적으로 서로 반대되는 개념들을 한데 묶는다. ‘과거’의 시간을 축적한 ‘원시적 자연물’인 돌에 ‘인공적’이고 ‘현대적’인 네온빛 색깔을 입혀 상반되는 개념을 한 작품 안에 조화롭게 녹인 것이다.
○돌로 빚어낸 우주와 사람의 시간
SPC 빌딩 앞 ‘옐로 레드 몽크’는 그 연장선이다. 세븐 매직 마운틴스보다 키가 작고 진짜 돌이 아닌 청동을 사용하긴 했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다르지 않다. 약 1만㎞의 거리를 넘어 사막 위 돌탑과 한남동 돌탑을 연결해주는 건 그 안에 담겨 있는 ‘자연과 인공의 조화’라는 메시지다. 또 하나. ‘몽크(monk·수도승)’라는 제목처럼 작품은 마치 사람이 서 있는 형상이다. 거대한 돌 위에 작은 돌을 얹어놓은 모습이 품이 넉넉한 옷을 입은 수도승을 연상시킨다.

그렇다고 그의 작품이 종교적인 의미만 담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론디노네는 그보다 더 근원적인 메시지를 담았다. 바로 ‘우주와 인간의 시간’이다. 억겁의 시간을 응축해놓은 듯한 무거운 돌덩어리, 그 위에 한 겹씩 얹은 화려하고 강렬한 색채가 만들어내는 건 결국 사람이다. 수백만년의 시간을 거쳐 ‘자연의 시대’와 ‘인공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역사를 그는 돌로 기록한 것이다. 그는 말한다.

“나는 마치 일기를 쓰듯 살아 있는 우주를 기록한다. 지금 내가 느끼는 태양, 구름, 비, 나무, 동물, 계절, 하루, 시간, 바람, 흙, 물, 풀잎 소리, 바람 소리, 고요함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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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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